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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2.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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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험(누가복음 4:9-12)에서 “마귀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너 스스로 뛰어내려 보아라.”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예수말씀에 있어서 율법과 제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종교적 중심지이다. 최초의 복음서인 예수말씀을 복원하면서 학자들은 누가복음 4:9에 “성전”이란 단어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란 단어를 복원할 수 있었다. 갈릴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갈릴리 공동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된 공동체이었지만, 바리새인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대 율법에 대해서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보수적인 경향성이 갈릴리 공동체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강한 향수를 갖게 하였다.

원래 예수의 시험이야기는 마태복음의 순서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누가는 예루살렘의 중요성 때문에 둘째와 셋째를 뒤바꾸어 예루살렘 중심성의 신학을 확립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는 복음 선교의 확장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마지막(24:47-49)과 사도행전의 시작(1:8)이 서로 상응하면서 초기교회에서 예루살렘이 지닌 지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누가는 예수의 공생애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여정이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마지막 한 주간 동안에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내러티브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마가복음이 예수의 승천이야기를 2세기에 추가된 또 하나의 결론부(마가복음 16;9 이하)에서 전해주고 있지만, 사실상 예수의 승천이야기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기록되어 있던 이야기이다. 예수의 승천에 관한 가장 최초의 기록에 관해서 누가복음 24장과 사도행전 1장을 읽어보라. 예수 승천의 장소도 예루살렘의 황금 문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 인근이다. 이곳에 유대인의 무덤이 상당수가 놓여 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예루살렘 동쪽에서 오신다는 신앙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성지를 가면 황금사원을 중앙에 놓고 흔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현재 황금사원은 이슬람 모스크이다. 기독교인의 성지는 황금사원 오른쪽 뒤에 있는 검은색 지붕인 성묘교회이다. 골고다에서 예수께서 죽으신 갈보리 언덕이다. 감람산의 눈물교회 예배당 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신 것을 기념하는 바로 그 위치에 검은 십자가가 있는데 유리창 너머로 그 눈물교회의 십자가가 가리키는 정중앙에 성묘교회가 위치하도록 사진을 찍으면 은혜가 된다.

마귀의 시험은 계속된다. “기록된바, 그가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 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기록된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이슬람교는 엉뚱하게 이 구절을 가지고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꿈에 천사 지브랄(가브리엘)과 함께 말을 타고 예루살렘에 갔다고 하면서 희한한 전승을 꾸며내고, 급기야는 예루살렘의 황금 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하니까 두려워서 돌로 막았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거짓된 신앙인가? 마귀에게도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마호메트에게도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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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예수말씀 연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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