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 해의 결산으로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계절이다. 전통적으로 11월이 오면 교회는 추수감사절을 기다리며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돌아본다. 길었던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고, 일상을 회복한 것은 특별한 감사의 제목이다. 우리 사회도 여러 분야에서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고 있지만, 정치와 경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범사에 감사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받고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감사할 수 없는 조건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쉽지 않다. 현대 인류가 마주한 위기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내용들이다. 코로나는 물론이고, 날로 심화되는 기후변화는 지구촌 곳곳에서 유례없는 자연재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기상이변이 인류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 환경파괴의 결과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급격하게 나타나는 자연재해는 그동안 누려온 일상의 평화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
국지적인 무력충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 두 나라에서 이미 10만 이상의 사망자와 3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도 6백 만 명에 달하고 있다. 21세기에 어떻게 이러한 전쟁이 가능한 것인지 물을 여유도 없이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공격으로 발발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3주 만에 8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다. 사망자들 가운데 어린 아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뉴스에 많은 이들이 커다란 애도와 염려를 표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권의 오래 된 대립과 갈등을 풀어갈 길은 요원해 보인다.
국내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뉴스들이 날마다 들려온다. 이해할 수 없는 범죄와 사건,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제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행복하고 감사의 제목이 많다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어쩌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믿음
믿음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할 수 있는 힘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의무이며 특권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힘들고 참혹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다. 새로운 날과 무한한 은총을 주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눈에 보이는 환경은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의 근거가 되는 다니엘서 3장의 고백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고 경배하라 한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따를 수 없었다. 왕은 그들을 불러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불타는 풀무불에 넣겠다고 경고한다. 왕의 위협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굴하지 않고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장 18절의 말씀은 찬양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의 모범이다. 이 모습을 그려보며 믿음이 감사의 내용이고 감사가 믿음의 형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1600년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며 빛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들 중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머리가 하얗게 된 늙은 노인이 검소한 식탁위에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 노인의 식탁 위에는 검소하고 투박한 그릇에 담겨진 스프 한 그릇과 접시 없이 마른 빵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노인이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빵 한 덩어리, 스프 한 그릇을 놓고 감사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노인의 감사 기도가 가능한 것은 그 옆에 놓인 성경책과 안경에 있을 것이다. 흐려지는 시력을 감수하며 날마다 성경을 읽어가는 노인의 모습을 그려보면 거룩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소박한 그림은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와 환경파괴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는 말씀도 자주 듣지만 가장 고귀한 감사는 자발적인 감사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는 진정한 감사이다. 이 감사의 계절에 교회 안팎의 어렵고 힘든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한국교회가 되기 소망한다./WCC중앙위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