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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류적인 ‘사랑’의 실천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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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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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고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했듯이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항상 기독교에 가까이 접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기독교 사상이 나에게 영향을 끼친 면이 크기도 했지만, 실천보다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비판적인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지금도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신이라고 하는데 신(神) 대신에 성령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정신과 어떻게 다른가. 이 점에 대해서 나는 항상 의문을 가진다. 기독교에서 성령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라는 것과 상통한다. 즉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에게로 간다고 하는데 이때 성령은 영혼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이것을 기독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건전한 정신만 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해도 될 것이다. 나쁜 정신이 아닌 훌륭한 정신이란 게 분명히 있으며 그 훌륭한 정신을 가져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기독교계에서 외치는 사랑이 있고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치는 사랑이 있지 않은가? 즉 부자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또는 나라 사랑. 이런 사랑은 우리가 다 편히 쓰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신, 여기서 신을 빼고 성령이라고 말하는데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을 보면 항상 사랑을 외치지 정신은 외치지 않는다. 그러면 보통 사람, 즉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얘기하는 사랑, 어디든지 언제든지 외치는 그 사랑과 기독교의 사랑 혹은 정신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 점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회의에 들게 하는 부분이다.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선량하고 착하게 살더라도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는 편협하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사랑의 실천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범인류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사랑과는 다르다. 내가 주장하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이란 내세의 구원사적인 전제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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