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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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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 작가의 중편소설 〈피해자〉(1958)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학촌 이범선(1920~82)은 〈학마을 사람들〉과 〈오발탄〉 등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이다. 〈피해자〉는 남녀 크리스천이 주인공들로 설정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 남녀가 최요한과 양명숙이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최 장로의 아들이 요한이고, 그 고아원에서 원생으로 살아온 여자 고아가 명숙이다.

 

요한은 서너 살 위였고 명숙은 그만큼 나이가 어렸다. 그러나 둘이 너무도 다정하게 학교엘 함께 다녔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은 그 둘이 오누이인 줄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장인 최 장로가 외아들이었던 요한을 장가보내려 하면서 아들 요한의 짝으로 명숙이가 아닌, 그 고아원의 후원자였던 어느 교회 목사의 딸을 지목해 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 장로와 아들 요한 사이엔 상당 기간 냉기가 흘렀다. 요한은 자기가 명숙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아버지 최 장로가 모르지도 않으면서 다른 처녀를 들여 밀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아원 운영이 어려웠던 때 그 목사 교회의 재정 지원이 매우 컸기 때문에 원장 최 장로는 그 목사의 딸을 마다할 처지가 못 되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이런 기미를 알아차린 명숙이 온다간다 말도 없이 고아원을 박차고 떠나버리고 말았으니, 요한으로서는 무슨 묘책을 찾을 수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세월이 약이라고,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명숙이만을 기다릴 수가 없게 된 요한이 현실타협책으로 아버지의 요구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목사의 딸과 결혼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이 화기애애하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한은 어느 기독교계 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교회 출석을 잘 하는 모범적인 크리스천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남편(요한)이 옛날의 고아 애인(명숙)을 잊지 못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한 방편이라고나 할까,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회심하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들 내외는 그렇게 한 이십 년여의 세월을 사는 동안 어느새 40대 중년의 나이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40대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요한과 명숙이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도 학교 동창들의 회식 자리였던 어느 한식 요릿집(흔히 술집이라고도 불리는)에서였다. 거기서 참으로 기적적으로 그 둘은 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4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던 그 둘이 서로 동기 동창일 리는 만무하니까 정말이지 이해될 리 없는 운명적 만남이었다고 할 수밖에…. 요한은 손님, 명숙은 그 요릿집의 마담 신분으로였으니 말이다.

 

요한이 다음날 아침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 불국사에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숙이 무조건 옛 애인 요한을 따라붙어 경주에까지 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경유하여 다음날 새벽의 해돋이 구경을 하는 언덕에까지 마치 구경 온 학생이기라도 한 것처럼 동행하다가, 요한이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명숙은 그곳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그녀의 짧은 한 생애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사건이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문학평론가·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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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끝낸 고아 명숙의 짧은 한 생애(상) - 유재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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