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6-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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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크리스천과 애국운동
         6월은 애국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과 6·25사변 75주년을 맞으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는 국경을 초월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겐 자신들이 속한 국가가 있기에 애국 애족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에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과 충성을 다 해야만 한다. 크리스천의 애국운동은 교회 역사를 보면 늘 헌신적으로 함께 해왔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는 「금주·금연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매우 가난하였다. 그런데도 술과 담배로 낭비하는 생활로 절제하지를 못했다.교회가 앞장 서서 근검 절제하는 생활운동은 지금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교단별로 경건 절제운동으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와 기타 생활 전반에 걸쳐 낭비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애국운동임이 분명하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되라』시는 분부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풍족한 생활을 하는 뒷면에서 어두운 음지에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을 돕는 교회의 실천은 역시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크리스천은 모두 일어나 애국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 6·25사변을 생각하면 그때, 우리의 힘만으론 감당키 어려웠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엔(UN)군 16개국이 동참하여 준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도 이 땅에는 평화가 요구되고 있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삼고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깨려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솔선 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운동이다. 평화가 제일이다. 신곡(神曲)을 쓴 유명한 시인 단테는 이 세상의 최고 단어는 「평화」라고 했다. 그가 한번은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밤, 위안을 얻기위해 산타크로채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저녁 기도를 드리다가 나온 힐라리오라는 수도사가 “무엇을 구하러 왔소?”라고 물어, 단테가 “평화요”라고 해서 남겨진 말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해 관계가 얽힌 국가 간에도 평화이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계층간의 평화와 정치적 혼란 역시 평화가 우선이고 이 사회 곳곳에, 가정마다에도 서로간의 평화가 제일이다. 애국의 달, 6월이 평화의 기쁨이 있기를 기원한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4~19)”/예장 통합측 증경총회장·경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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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6-13
  • [정론] 애국하는 길
      세계최대 평택 주한 미군사령부 영내에 들어가면 「포 채플린즈 메모리얼 채플」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라틴어 격언이 눈에 띈다. “PRO DEO ET PATRIA”,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는 애국심에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격언이다. 이 채플의 4명의 성직자는 두 명의 개신교 목사, 한 분의 유대교 랍비, 한 분의 로마카톨릭 신부들로 ‘불멸의 성직자’ 또는 ‘도체스터 성직자’라고도 불린다. 1943년 2월 3일 미군 수송선 SS 도체스터호가 침몰하면서 민간인과 군인을 구출하다 사망한 성직자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최악의 해상 참사 중 하나였다. 민간 여객선인 도체스터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선박 관리국의 병력 수송선으로 군용으로 개조되었다. 1943년 1월 23일 뉴욕을 출발하여 그린란드로 향했으며 해안 경비대의 호위를 받는 3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호송대의 일원으로 약 900명을 태웠다.     2월 3일 이른 아침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앞바다에서 독일 잠수함 U-223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다. 목사들은 다른 군인들이 구명보트에 탑승하도록 도왔고 구명조끼가 떨어지자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포기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으면서 팔짱을 끼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이 네 명의 군목들의 이야기는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추모비가 세워지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사후에 수훈 십자 훈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군목들은 명예훈장(미국최고의 훈장)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기에 수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의회는 명예훈장과 동일한 무게와 가치를 지닌 훈장을 제정했다.    군인이 전장에서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군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기독교신자를 포함하여 국민 모두는 군인들과 같은 무게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애국’이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될 때 공산혁명이나 나치독재,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정당화되고 만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모든 국민의 애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와 시대 앞에서 “나 몰라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하루살이’ 일상은 애국이 아니라 망국의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다.    오늘 탄핵정국과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 앞에 무관심과 체념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을 내팽개치는 범죄다. 대선 정국 앞에서 골치 아픈 정치 어젠다요 세상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이후에 닥쳐올 뻔한 미래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폭행위가 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개인적 희생과 사랑만으로 멈추지 말고 공동체적 행복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양보하는 희생이 일반화되는 나라와 국민이 되길 위해 분노 게이지는 의지로 낮추고 조절하며, 필요한 적과 상대를 인정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며 화합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실천하는 ‘애국’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오직 하나님만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골방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지키시고 세우시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군대를 모아 국경선을 지키지만 교회는 성도를 모아 새벽기도, 철야기도 군대를 비롯한 영적군대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과 싸우며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사실은 통치자와 국민 사이에는 분명 인격과 성품의 연결이 있다. 지도자의 나쁜 정책과 성품은 전염성을 가지고 국민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지도자의 인격적 부패와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성품은 사회 전반을 파괴하고 만다. 그러기에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애국하는 길은 선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국가와 교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권선징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전국기독교수연합회 회장·칼빈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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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5-23
  • [정론]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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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5-20
  •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루는 축복공간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를 성별로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이에 때를 맞추어서 유럽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별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뉴스에서 회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력한 로비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확산시키려는 퀴어(queer/괴상한) 단체들의 활동 때문이다. 이들 동성애 단체는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매스컴과 정치를 장악하고, 이미 학교와 문화까지도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까지 동성애 이념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윤여정배우까지 동성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손가락질받고 있다.     이혼녀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며 배우 활동한 것을 필자도 한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잠잠해도 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큰 파문을 불러왔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사위가 자랑스럽다’라는 투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며느리로 상대집안과 결혼한 것이라는 해괴한 일로 추정된다. 윤여정의 이런 발언은 소수 동성애 단체에는 환영받았겠지만, 대부분 일반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정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배우도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공인의 발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윤여정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하고, 취소하여야 한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3남매를 둔 다둥이 가정의 부모인데, 셋째에게는 국가가 국민건강보험도 제외했다. 내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생할 때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실시하였다. 그 한 예로 예비군 훈련을 가면 정관수술을 간호사들이 시행할 정도였다. 집안에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관과 난관수술의 인원이 의료인들에게 할당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망국적인 일을 행한 지난 정부의 의료인들은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의료분쟁으로 환자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정부 시책을 대할 때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생명도 죽이는 불임과 낙태뿐만 아니라, 환자를 방치하고 데모하는 의료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애자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망국적인 동성애와 무분별한 낙태로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는 시대에 초저출산 문제로 대한민국이 소멸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라는 통계가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나는 다둥이 자녀를 둔 신학생들과 농어촌 미자립 개척교회를 돕는 사역을 위해 벌써 24차례나 예수학교로 모였다. 그랬더니 2명 이상 8명까지 자녀를 낳은 다둥이 가정이 모이는 집회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여름에 홍천 시냇가의 숲 펜션에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의 어린이들을 불러서 2박3일 국제영어성경캠프를 무료로 진행한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들은 다둥이 가정의 행사를 자주 소개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해야 한다.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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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5-20
  • [정론]차기 대통령,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 결정을 하면서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차기 대통령은 경제, 외교안보, 남북관계 등 총체적 위기의 상황을 극복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 1997년 11월 IMF국가경제부도사태로 대한민국이 휘청거렸을 때 이듬해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IMF사태를 조기에 극복하고 하락한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끌어 올렸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금 각 당은 대통령 예비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12.3비상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구속과 파면으로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혐의로 제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6.3대선은 IMF를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탁월한 리더십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첫째는 경청(敬聽))하는 지도자여야 한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의 의견 제시는 물론 각계 각 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60분 중 55분을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은 국가를 이끌 지도자로는 부적합하다. 마음과 귀를 크게 열어 쓴소리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고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국정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헌법 제1조는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독재자가 되고, 권력을 남용하여 국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은 국민이 부여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겸손하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는 극보수와 갈등하고 있다. 노사,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된 초갈등사회다. 이를 극복할 역량과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통일 이전에 남남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반대파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의 굴곡을 지나면서도 퇴행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하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 국민이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처럼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것이다. 희망을 갖고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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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9
  • [정론] 오직 십자가를 따르라! -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성대곡(放聲代哭)
     올해 2025년도는 기독교적으로 선교 140주년(1885년 기점)이 되는 해이며, 정치적으로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나 뜻깊고 가슴 벅찬 해인가. 그리하여 전국에서 환희의 잔치를 벌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기류가 희안하다. 140주년, 80주년이라는 세월은 성숙을 넘어, 안정과 부흥의 역사에 접맥되어야 하리라 믿는데,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는데, 신앙, 정치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기독교 신앙인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이며, 정치적으로 탄핵 연발, 계엄 발동, 대통령 파면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맞으며, 6월 3일 조기대선까지 숨가쁘게 가야한다. 대한민국의 대전환기라 아니할 수 없고, 위기라면 위기라 판단해야할 시점이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예서 말수는 없다”(이은상).        “위기는 기회다.” 언제 들어도 위안과 희망이 되는 명제이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지혜와 실천이다. 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실천이 작동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데 방해 요소는 무엇보다 양극화이다. 세대간, 남녀 성별간, 지역 간, 빈부 계층간, 그리고 진보와 보수 간에 극명하게 갈리어 이념, 이데올로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 현상이 색깔론으로 포장되어 은근히 갈등을 조장한다. 가히 문화전쟁(Culture War)을 넘어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국에서 관찰되는 양극화는 또 있다. 예를 들면 진보와 보수가 공히 본회퍼(Bonhoeffer)를 인용한다. 나치 독재와 만행에 저항하다 순교한 목회자인 본회퍼를 진보와 보수가 서로 끌어다 시대적 대안으로 앞세운다. 본회퍼는 우리나라 현 혼란 정국에서 좌우로 쪼개지기 직전이다. 본회퍼 목사가 이곳에 오신다면 스스로도 당황할 것이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의이며 진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극단적 대치 앞에서 본회퍼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위기는 기회다.” 이 명제를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본회퍼 목사가 가르치는 <제자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해답을 얻는 길이다.(혹 “나를 따르라”로 번역). 본회퍼의 대안은 이미 종교개혁에서부터 출원한다. 루터, 칼뱅이 새롭게 발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곧 십자가 신학, Theology of the Cross)에 시대적 혼란에 대한 해답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사(빌 2:7,8), 모욕, 멸시, 상처, 고통, 고난을 마다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거룩한 모방(holy imitation)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의 한 수”이다. 우리의 대한민국이 기회의 파도를 타고 다시 비상하기를 기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양극화의 비인간적 세파를 극복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다./이레문화연구소 소장·전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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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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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어날 사람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
      2020년 10월 7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낙태죄 개정안은 여론이 자연법칙을 이기고 정치가 생명과학을 이긴, 후대에 수치스러운 시도가 될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였다.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의 보호이며, 민법에서도 생명의 시기는 수태한 때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법 정신이나 실정법이 태아가 생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태어날 사람의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국가가 법으로 허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결정인가! 낙태 허용과 다름없는 이 개정안의 어디에서도 태아 생명권 보호를 위한 고려와 최소한의 법적장치를 찾아볼 수 없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는 낙태에 대한 책임이 남성과 사회는 빠진 채, 여성에게만 부과되어 온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오늘 입법 예고된 법무부 낙태죄 개정안은 임신의 공동 주체인 남성은 합법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하고, 수많은 여성은 피임의 수단으로 낙태를 강요당하게 만들며,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태아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그동안 지속해서 제기되었던 임신의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 책임을 묻는 법안 마련 등의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채, 임신 14주까지 사유를 불문한 낙태 허용 입법 예고는 태아의 생명 보호의 최소한 장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엄연한 차별이며, 생명침해이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생명과학 전문가 그룹인 의학계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했는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는 남성의 양육책임법을 제정했는가? 여성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낙태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어떤 해를 입히는지에 관해 충분한 연구와 의견수렴을 했는가?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 없이 법무부의 낙태죄 개정안 입법 예고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대한민국의 정부는 태어난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악법을 예고하였다. 과학과 의학은 생명의 시작에 대한 진실을 계속 증명해내고 있고, 사회는 모든 생명이 조건과 상관없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하는 중대한 차별을 입법 예고하였다. 우리는 어느 순간까지는 생명이 아니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생명으로 변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주까지의 태아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무엇인지 대한민국 정부에게 묻는다. 97%의 낙태 시술이 임신 14주 이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법조문의 실제 내용은, 앞으로는 모든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한다는 뜻이 아닌가! 의학계와 생명과학계, 그리고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의 의견만을 편들어 14주라는 생사의 구분선을 마련한 정부의 편의주의적 태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제적 조화를 이뤄 개정안을 발표하였다고 하였으나, 낙태 허용과 다름없는 이 개정안의 어디에서도 태아 생명권을 보호하는 고려와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찾아볼 수 없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생명을 타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반인권적 시도를 정부는 당장 철회하기를 요구한다. 태아는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우리 모두 경험한 과거이다. /사단법인 프로라이프 회장
    • 오피니언
    • 정론
    2020-10-27
  • 정도를 걷는 개혁의 정신 회복하자
      두 번째 밀레니엄을 앞두고 라이프지는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100가지와 인물 100인을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쿠텐베르크의 성경인쇄와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에 이어 세 번째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순위에 들어있다. 미국 문화권에서 선정한 것이기에 다른 문화권의 시각에서 보면 선정과 순위에 다소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조사하던지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이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사건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종교개혁은 어느새 우리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천 년의 사건이 되어 있는 것이다.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이다. 종교개혁은 과거에 지나간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진행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어야 한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아 종교개혁의 본질과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 오늘의 개혁을 이어갈 우리의 마음을 되짚어 보자.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본질에로의 회복이다. 개혁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은 원래로의 회복, 원래적 진리에로의 회귀가 종교개혁의 본질이다. 15세기 가톨릭은 기독교의 본질을 무수히 왜곡시켜 놓았다. 루터의 외침은 이 왜곡으로부터 개혁하여 원래의 본질적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15세기 로마 교황권은 어떻게 기독교 진리를 왜곡시켜 놓았는가?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장 유명한 것이 면죄부이다. 루터의 95개 논제 중 27조는 이렇게 말한다. ‘헌금함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면죄부란 간단히 말해서 세속적 돈으로 신앙적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구속의 사건은 아무 의미없는 것이 되고 만다. 또 95개 논제의 79조는 말한다. ‘교황이 사용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모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 교황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모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한참이나 왜곡하고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95개 논제 10조에는 이런 언급까지 있다. ‘임종을 맞은 자에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교황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돈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대리했다. 이런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고 참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바른 정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세계는 어떠한가? 인간적인 것들이, 세속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이 교리, 신학, 목사, 사람, 돈, 권세, 교권일지라도 하나님보다 상위 개념에 둔다면 그곳이 개혁의 자리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사회를 개혁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비난받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혁의 정신을 망각하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자기의 이익추구에만 골몰하고 있을 때 이제는 교회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부단스런 짐이 되고있지는 않는지 우리 교계가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무장하고 새로운 교회 공동체 형성을 통해 한국교회가 상실했던 사회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은 어떤가? 참 진리의 가치관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가? 정도가 아닌 꼼수와 술수가 지혜로운 처세술로 용납되고 있지는 않은가?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참 진리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많은 이익이 있더라도 사도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참 진리가 있는 정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제의 종교개혁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이다. /루터회 전 총회장, 새길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정론
    2020-10-22
  • 추석을 맞는 기독교의 효정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자유자가 되었다. 우리는 죄와 문제와 우리 육체를 이기기 위해서 자유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유자가 되었다. 그래서 자유자는 예배자이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고린도전서10:20)라고 했을 때의 제사는 제사가 아니라 고사이다. 제사와 고사는 다르다. “이방인의 고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라고 성경에 번역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와 고사를 구분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사와 고사를 구분한다. 부모님과 조상에게 하는 것은 고사가 아니라 제사라고 구분이 되어 있다.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도 한국에는 무당집에 점치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그 중에는 교회의 제직자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축복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영혼구원 받기 위해서이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도 잘되는 것이다. 신앙생활 잘하면 그 다음에 복이 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도 예배하는 것도 복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면, 나라를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나라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머슴은 주인을 위해 살면 주인이 책임져줘서 영양 있는 것 맛있는 것을 다 먹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격체이시고 완전한 분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심판주가 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온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영적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한 고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성경적 효는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어른을 공경하며,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성실과 열심으로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부모님과 상의하고 결정하자고 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어른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존중하고, 스승은 제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린이·청소년·제자를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로 봐야 한다. 그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겸손과 온유로 인내하며 가르쳐서, 신앙과 삶을 바르게 전수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나라, 가족, 교회는 밝은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천국은 가족이고 가족은 작은 천국이다. 하나님은 가족공동체를 귀하게 여기신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 주신 공동체다. 가족이 행복해야 한다. 우리의 가족이 바로 설 때 신앙천대, 축복천대, 자손천대가 이루어진다.   나라 사랑은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와 더불어 대한민국에 속한 백성이다. 최고의 나라 사랑은 대한민국을 복음화하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가 제물이었다면 신약의 예배는 감사를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가 물질을 드릴지라도 감사하며 드려야 한다. 물질을 아무리 드려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물질은 하나님이 안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외에는 어느 누구도 직접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은 부모님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버금가는 은혜가 부모님의 은혜인 것이다. 올 추석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심을 담아 가정예배를 드릴 때 참다운 기독교의 효 정신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
    • 오피니언
    • 정론
    2020-09-25
  • 생산적인 장로교 총회를 기대한다
      매년 9월이 오면 장로교회는 총회를 맞이한다. 총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고 거창하게 취임식을 하지만, 그것을 모든 것이 끝이 나고 매년 한국교회가 새로워졌다는 말을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은 나 한 사람의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장로교 총회에 관해 기대해본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곧바로 절망이기 때문이다. 위기는 위험하는 뜻도 있지만,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로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모든 교회 지도자들의 공통된 의식은 한국교회가 이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장로교 총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산적인 총회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세계적 코로나19의 재난 속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확직자들이 생기고 수많은 귀한 생명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몇 개월씩 교회 문을 닫아야 되고 온라인 예배가 일상적인 예배가 되고 있다. 얼마 전 CTS에서 어느 대형교회에서 텅 빈 예배당 앞에 온라인 설교를 시작하는데 설교자가 기도하면서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함께 울었던 일이 있었다. 어쩌면 울고 있는 이 설교자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닐까! 필자가 생산적인 총회를 기대하는 것은 지난날에 수없이 치러진 총회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대로 좀 더 생산적이고 실제적인 변화와 개혁의 총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쓴다. 첫 번째로 이번 장로교 총회는 개혁적인 인물을 찾아서 지도자를 세우는 총회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천사를 통해 일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기에 개혁적인 지도자가 세워져야 한국교회는 개혁되고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깊고 대형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보다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개혁적인 목회철학으로 목회하는 지도자를 세워야 교단도 교회도 개혁될 것이다. 40대나 50대의 지도자를 한국교회 총회장으로 세우는 일은 무리한 기대일까? 한번 다시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두 번째로 한국교회는 그동안 모이는 교회 위주의 목회였다면 코로나 재난 이후에는 흩어지는 교회의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온라인 예배와 함께 온라인 교인이 더욱 많아질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앞으로 흩어지는 교회의 사명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위한 교단적인 정책과 신학이 바로 서도록 총회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지도자도 훈련해야 하며 교육 받은 지도자가 전력으로 사역에 매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정책도 세워가도록 총회 차원에서 연구하고 토의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교회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오늘의 교회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동참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문제들이 자살예방 문제요 저출산 문제요 빠르게 가고 있는 고령화 문제이며 최근에 중요한 이슈가 되는 동성애 문제나 차별금지법 문제도 총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도 하고 반대도 해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을 개교회 문제로만 돌리지 말고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고 총회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이나 입법화를 위해 생산적으로 숙의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이번 장로교 총회야말로 오늘날 위기의 시대에서 한국교회가 기대하는 비전과 메시지를 줄 수 있는 희망찬 성총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감 전 감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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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0-09-11
  • ‘사랑제일교회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
      사랑제일교회 사태는 극우적 정치이념과 근본주의적 믿음이 결합해서 일으킨 국가적 재앙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안전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몰상식의 끝판’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막말과 폭언이 횡횡하고, 그 어디에도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들어설 곳은 없다. 이론 인해 한국교회는 코로나 재유행의 진원지가 되었고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제일교회 이외에도 교회감염이 지속되고 있지만, 사랑제일교회 발 감염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어서 우리 사회의 일상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고 한국교회에도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이 좋지 않았는데, 그 추락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신천지보다 더 하다’는 표현은 의료진들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신천지 교인들은 그래도 치료에는 순종적이었는데, 이번 교회발 감염자들은 병상에서 의료진들에게 폭언을 하고 생떼를 쓰는 등 그 태도가 불량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결국 식당이나 마트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공고가 붙을 정도가 되었다.    필자의 교회도 버스정류장에 ‘교회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붙여놓았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계속 찢는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심각하고 비상한 상황이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광훈 현상’의 구조는 간단치 않다. 교계의 문제를 넘어 여러 사회·정치적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전광훈목사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을 역임하며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광범위한 관계를 맺었고, 보수 정치인들과의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며, ‘보수기독교의 아이콘’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막무가내다. 국가적 재앙을 일으키고도 ‘바이러스 테러다’, ‘확진자 조작이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여기에 사랑제일교회 교인들은 검사를 거부하고, 병원을 탈출하는 등 반사회적 일탈행위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국민생명안전을 위한 국가의 방역활동을 정치방역으로 몰고 가며 방역당국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교계원로 몇 분이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의외로 한국교회의 각 교단은 침묵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의 침묵도 계속되고 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전목사와 함께 한 사안들이 있고, 무엇보다 교인들 중에서 그의 입장을 지지하고 따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상황일수록 교회지도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예’할 것을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사랑제일교회 사태’에 대해서 용기 있게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랑제일교회 사태’가 우리사회에 끼친 해악과 그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세상의 등불인 교회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이미 여러 교단들에서 이번 가을총회에서 전목사를 이단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공교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가 될 것이다.    ‘전광훈 사태’는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분단된 나라에 살아가는 아픔으로 인해, 사랑과 용서라는 복음의 가치와 정반대되는 증오와 대결을 키워 온 한국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상식과 합리에 기초하여 시민사회에 소통하지 못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교회에게 이 일은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뼈를 깎는 아픔의 시간이 왔다는 말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실로 그렇다. /기장 총회장·성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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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0-09-01
  • 한국교회 신학교육의 미래위한 제언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게다가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마이너스 성장과 사회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요소들이 복음전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신학교육, 즉 목회자 양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긴박한 요청은 당면한 과제이다. 해방이후 여러 가지 요인과 함께 한국교회가 급격한 성장을 하면서 지도자 수급을 위한 대처를 해야 했을 때 미래를 위한 교육이 아닌 당장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기에 급급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부작용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발전함께 그 이면에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신학교 지망생이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신학교가 돈벌이 수단이나 교단과 학교의 외양을 키우는 도구가 됨으로써 신학대학들의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보니, 신학교육의 내실과 목적에 충실하지 못함으로 바르게 준비된 일꾼을 양성하지 못한 책임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루에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기에 하루라도 빨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족지만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첫째 진정한 소명자를 발굴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직업인으로서, 내지는 은퇴 이후의 제2의 의미 있는 직업정도로 생각하는 신학교 지망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신학교들은 정원을 채우기에 급급한 상황인지라 이들을 후보생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다. 진정한 소명자, 목회자로서 소양이 갖춰진 자는 지교회 담임목사와 당회가 가장 일선에서 발굴해야 한다. 둘째 종교적 기능인이 아닌 복음의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단순한 종교적인 기능인을 양성해서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 급급한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목회는 단순히 설정한 목표를 향한 성과를 위해서 기능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는 전인적 차원의 인간관계와 삶의 나눔과 섬김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목회자 역시 그 공동체의 일원이면서 지도자이다. 따라서 단순한 종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지체들과 동행하는 삶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목회자는 결코 기업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셋째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는 헌신자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참 성장할 때 신학교에 추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신학교에 가도록 했다. 어쩌면 그러한 일들이 오늘날 비판의 대상이 된 한국교회의 모습이 있게 된 원인들 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더 이상 한국교회가 우민화되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양과 충분한 신학적 의식이 준비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경건한 신앙인격자로 양성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신학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관계에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자신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경성하는 자의 모습으로 깨어있어, 그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격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철저하게 신앙과 인격을 하나로 드러낼 수 있는 지도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신학교육을 해오는 필자로서 한국교회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어진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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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1
  • 한국교회 신학교육의 미래를 위한 제언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게다가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마이너스 성장과 사회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요소들이 복음전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신학교육, 즉 목회자 양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긴박한 요청은 당면한 과제이다.   해방이후 여러 가지 요인과 함께 한국교회가 급격한 성장을 하면서 지도자 수급을 위한 대처를 해야 했을 때 미래를 위한 교육이 아닌 당장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기에 급급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부작용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발전함께 그 이면에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신학교 지망생이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신학교가 돈벌이 수단이나 교단과 학교의 외양을 키우는 도구가 됨으로써 신학대학들의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보니, 신학교육의 내실과 목적에 충실하지 못함으로 바르게 준비된 일꾼을 양성하지 못한 책임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루에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기에 하루라도 빨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족지만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첫째, 진정한 소명자를 발굴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직업인으로서, 내지는 은퇴 이후의 제2의 의미 있는 직업정도로 생각하는 신학교 지망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신학교들은 정원을 채우기에 급급한 상황인지라 이들을 후보생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다. 진정한 소명자, 목회자로서 소양이 갖춰진 자는 지교회 담임목사와 당회가 가장 일선에서 발굴해야 한다.   둘째, 종교적 기능인이 아닌 복음의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단순한 종교적인 기능인을 양성해서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 급급한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목회는 단순히 설정한 목표를 향한 성과를 위해서 기능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는 전인적 차원의 인간관계와 삶의 나눔과 섬김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목회자 역시 그 공동체의 일원이면서 지도자이다. 따라서 단순한 종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지체들과 동행하는 삶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목회자는 결코 기업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셋째,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는 헌신자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참 성장할 때 신학교에 추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신학교에 가도록 했다. 어쩌면 그러한 일들이 오늘날 비판의 대상이 된 한국교회의 모습이 있게 된 원인들 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더 이상 한국교회가 우민화되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양과 충분한 신학적 의식이 준비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경건한 신앙인격자로 양성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신학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관계에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자신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경성하는 자의 모습으로 깨어있어, 그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격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철저하게 신앙과 인격을 하나로 드러낼 수 있는 지도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신학교육을 해오는 필자로서 한국교회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어진내교회 담임목사
    • 오피니언
    • 정론
    2020-08-19
  • 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법적인 이유 없이 차별이 생기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 즉, 구별되어야 할 인권이 차별로 규정되고 보호받아야 할 인권으로 포장되어 법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첫째, 삶을 존귀하게 만드는 인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법은 윤리(도덕)의 최소한의 규범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지식이나 가문, 학력, 경제와 사회문화적 영역의 차이가 인권을 침해하거나 차별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자유민주주의의 인권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둘째, 자연적 질서와 인간의 윤리는 태생적 동질성을 갖는다. 즉, 자연적 질서에 위배되는 것은 윤리의 파괴이다. 성경은 자연적 질서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다. 종교적 가치를 넘어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하게 되며 서로가 배려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말로 자연적 질서를 위배하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 윤리의 파괴이다.   자연과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하고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자연적인 윤리가 무너질때 인간의 기본적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자연적 질서가 무너지게 하는 차별금지법은반대한다.   셋째, 쾌락만을 위한 인권은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지도의 대상이다. 교회는 한 사람을 천하보다 존귀하게 여기므로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적 인권의 보호를 반대하지 않는다.사회에 악을 끼치고, 윤리를파괴하는 사람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아니라 지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삶을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동성애, 성평등은 법률적 차원에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지도해야 할인권인 것이다. 더불어 파생적 성을 통한 동성애와 성평등으로 일어나는 결과는 무서운 질병(예: 에이즈)이 생성되고 전파되어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마저 무너지게 하고 파멸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와 성평등은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아니므로 법으로 제정하지말고 스스로 윤리적 가치를 평가받게 해야 한다. 동성애자와 성평등우호자들을 잘 지도하여 인간의 잘못된 성윤리에 의한 차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적 성에 맞는 삶이 되도록 정부와 인권위원회는 지도하여야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나 동성애와 성평등의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넷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변경하여 역차별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자연질서, 즉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적 질서에 위배되는 것을 제외한 차별금지법은 기본 평등권에서 보호되어야할 인권이므로 반대하지 않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기본평등권의 충돌로 인한 인권 탄압이 생기는 것이므로, 개별적차별금지법으로 변경하여 모든 국민에게 인권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와 인권위원회는 윤리와 창조질서를 파생적 성으로 파괴하여 무서운 질병을 발병케 하는 동성애와 성평등을 코로나19의 확산을 잘 방지한 지혜로 그들을 지도하여 일반 사람들의 행복추구권 또는 평등권이 역차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윤리는 타협과 포용이 있지만, 법이 생기면 다툼이 생기므로, 정부와 인권위원회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추구권에 역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라는 교회의 외침에 귀 기울이길 촉구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대행
    • 오피니언
    • 정론
    2020-08-06
  • 좋은 교회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
      기윤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10명 중 7명은 ‘한국 교회’와 ‘목사’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교회가 신뢰받기 위해선 25.9%가 ‘불투명한 재정사용 개선’을 꼽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삶의 변화’(22.8%), ‘타 종교에 대한 태도 고치기’ (19.9%) 순으로 나타났다.   목회자 신뢰 제고 방안으로도 ‘윤리 및 도덕성’ 개선이 51.5%로 가장 높았으며, 개신교인이 신뢰를 받기위해 개선해야 할 문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 부족’(26.6%), ‘정직하지 못함’(23.7%), ‘배타성’(22.7%) 등이 지목됐다.   신도수의 급감, 대 국민 신뢰도의 추락은 그대로 한국교회의 위기이다. 코로나 19 사태 국면에서 예배 등 소모임이 소원해지면서 교회 출석률이 낮아지고 신앙과 봉사의 강도도 낮아지면서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나 자정 능력의 한계가 드러났고, 지나친 양적 성장과 성직, 성공주의가 기독교적 가치와 정신, 영성과 신앙의 내실화를 가로 막았다. 이런 상황을 총체적 위기로 인식하고 위기관리를 넘어 국면 전환 및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   초대 한국교회는 서민대중의 친구가 되었고, 고단한 시민들의 기댈 언덕이 되었다. 나아가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독립운동, 농촌계몽운동, 교육운동, 의료복지운동, 시민사회운동 등 다양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우리 사회는 교회의 은덕을 많이 입었고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개신교신도가 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한축은 한국전쟁과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자본의 자양분 덕에 양적 성장을 이뤘고 다른 한축은 독재와 맞서 산업선교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성장주의 교회들이 교권을 장악하면서 기독교 정신과 내면의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자본과 시장 원리의 한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거기에 생태계위기까지 겹쳐 사면초과에 놓이게 되면서 교회는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성직자의 윤리의식과 성감수성의 퇴락과 재정 유용은 교회의 근본을 묻게 했고, 지나친 근본주의 신앙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보편적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복음을 정죄와 심판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교회는 독선적 사고로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나아가 시대정신을 거역함으로 시대의 핀잔을 사고 있다. 자신의 전부를 바쳐 사회를 섬겼던 교회는 이익집단이 되었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였던 교회는 부자를 대변하고 약자들을 비판함으로 그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교회는 변화지 않으면 결국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개선하는 길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의 원인인 ‘불투명한 재정사용을 투명하게 개선’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삶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보내는데 있다. 아울러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의 윤리 및 도덕성을 높이고 배타성을 극복하며 남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공동체로 거듭나 균형 잡힌 신학과 신앙을 형성하고 대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사회책임위원회 및 생태환경문제를 다룰 생태선교위원회를 구성하고 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면 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교정할 수 있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는데 앞장선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거기에 한국교회의 근본적 가치인 영성을 회복하고 사랑의 섬김을 활성화한다면 개신교회는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사람은 이미 좋은 세상이란 한 시인의 말처럼 좋은 교회는 이미 좋은 세상이다.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전국총무·가재울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정론
    2020-07-31
  • 생명존중의 사회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
      또 충격이다. 박원순시장이 자살을 하였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자살이 아니라 충동 자살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었다. 그를 자살로 이끈 동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자살 그 자체만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분명 자살은 죄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리고 자살은 살인죄이다. 타인만 죽이는 것이 살인죄가 아니다. 하나님의 생명인 나를 내가 죽이는 것도 살인죄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자살율 1위 이라는 것을. 그리고 매년 일만 5천여명 이상이 자살이라는 살인죄로 스스로 생명을 거두고 있다.    특별히 대통령 다음으로 영향력과 인지도가 높은 서울 시장의 자살은 연쇄 자살을 염려하게 만든다. 바로 베르테르 효과 이론 때문이다. 독일이 나은 세계적인 문호 괴테가 1774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라는 책을 쓴다. 그 책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연인 로테에게 실연을 당하자,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이 자살을 모방한 자살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이름으로 붙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최진실이라는 유명 탤런트 자살 이후 많이 이들이 따라 자살을 하였다. 바로 베르테르의 효과인 것이다.  이번 박 시장의 자살로 자살 유혹이나 충동을 받는 이들이 없기를 기도해 본다.    자살하는 동기가 다양하겠지만, 단순하다 힘들다는 것과 절망한다는 것과 결국 도피이다.    최근에 젊은 여자 청년을 만났다. 20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순간, 속으로 내내 눈물을 뿌렸다. 들려 준 이야기 정리하면 이렇다.    자신이 두 살 때, 아버지가 뺑소니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결과로 아버지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기를 버리고 가출했다 한다. 지금까지도 그 어머니 소식을 모른다고 한다. 그 이후 자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워 주셨다고 한다. 대학교까지 졸업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다 하시더니 그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이후 급격하게 더 큰 어려움이 불어 닥쳤단다. 할머니 돌연사로 할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이내 눕게 되셨다고 한다. 한순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20대 중반이라는 정말 젊은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단다. 나를 사랑해 주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스스로 돌보기 위해서, 요양 보호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자살한 박시장과 이 여자 청년의 얼굴이 겹쳐 지나간다. 누가 더 힘들까? 아무리 보아도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혼자 몸으로 돌보아야 하는 이 여자 청년이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도 이 여자 청년은 인생 운명을 이겨 내려고 한다. 그 어려움을 헤쳐 내려고 용기를 내려고 한다. 자살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청년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예수’였다. ‘신앙’이었다. 예수님이 주시는 희망 한 줄 잡고, 삶을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이 영웅적 삶이 아닐까? 신앙 영웅이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속으로 웃었다. 이 여자 청년에게 이 삶의 무게를 잘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 줄 수 있는 남자 기독 청년 만나, 반려자가 되어, 인생이 꼭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고 들려주는 행복 고백을 듣고 싶다. 그렇게 기도했다.  /루터회 전 총회장, 작은예수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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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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