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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과잉시대
      유통이나 서비스업계에는 ‘진상’이라는 속어가 있다. 진상은 임금님께 지방특산물을 바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진상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 워낙 패악이 심해 백성들이 ‘원망’의 뜻을 담아 ‘진상’을 회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례한 말과 태도로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행위, 또 그런 사람”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진상’은 감정과잉사회의 특징으로 감정조절 불능의 ‘또라이’를 말한다. 진상에는 양대 법칙이 있다. 하나는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줄 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진상은 주로 유통업계에서 만나는 고객들의 갑질을 비유하면서 유행했지만 이제는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형태로 번지면서 우리 모두 너나없이 진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이루어낸 역사를 통해 70년 전 같은 출발선에 있던 국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높은 민주, 권리, 평등의식과 정의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진상들이 판을 치는 감정과잉사회에서 살아야 하나. 혹시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집단 ‘진상’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구촌은 냉정한 사회다. 자칫 우리들의 감정과잉사회가 지구촌에서 ‘진상’이 되지 않도록 할 때가 됐다.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배려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진상 짓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하고, 비용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정치판의 싸움질은 이런 진상의 모범답안 같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진상의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우리 모두는 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옳기만 한가?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한 것은 ‘진상’일까? 정상일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진상’일까? 정상일까? 감정과잉시대는 진상들의 갑질시대다. 기독교인은 예수의 피 앞에 사랑의 빚진 자다. 이 빚진 자의 겸손이 감정과잉시대의 치유가 될 것이다.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명예회장·서울성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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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6-19
  • “화합되는 민족혼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크신 은총을 온 누리에 펼치자 이 땅 위에서 삶이 의미를 갖게 하셨나이다. 보이는 산과 바다 흐르는 계곡 속에서,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하늘의 섭리를 보게 하셨나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이 이웃이 사촌이었던 선인들이 고수해 왔던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아끼고 가꾸며 사랑을 나누어 먹고 살게 하셨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땅이 둘로 나눠져 있나이다. 새도 날아다니고 하늘의 흰구름도 하나로 보이건만 땅은 둘로 나눠져 버렸나이다. 역사의 주가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천지의 주재가 되셔서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구원의 은총을 선포하셨기에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리나이다.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 형제가 되는 내 핏줄 혈육에게 의심과 미움, 증오의 칼날을 갈고 형제된 내 핏줄을 적으로 삼았나이다. 남과 북이 한 동포인데도 온 강산이 피로 물들게 되었고 그 핏빛이 온 산야에 적셔 스며듦으로 인하여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그어 놓았나이다. 주여 우리의 우매함을 포용해 주셔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새 삶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시옵소서. 형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형제의 심장에 칼을 꽂고 져 하는 생각과 이념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여 이 민족의 심장부에 성령의 역사로 태동하셔서 먼저 남북의 교회가 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그 다음 겨레가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셔서 통일의 새 날과 평화의 잔을 마시게 하옵소서. 예정하신 그 날에 휴전선 철망이 새 조국의 건설 자재로 쓰여지게 하시고 육중한 무기들이 농기구가 되며 가공할 핵무기가 어둠을 밝히는 새빛되어 민족의 서광이 환하게 비쳐오게 하옵소서 하늘에는 영광의 노래가 퍼지고 땅에는 통일을 껴안는 평화의 기쁨이 충만케 하시며 땅 아래 불 밑에서 도도히 정의의 물줄기가 강산을 휘감게 하옵소서. 한라산 정상에서 백두산 정상으로 서로가 화답하는 순결한 민족혼이 정기되어 서리게 하옵소서. 즐거운 환희와 꽃향기가 강산으로 평화되어 퍼지게 하옵소서. /예장 합동한신측 증경총회장, 목포중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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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6-11
  • 개척정신을 지닌 국민이 되자
      역사는 도약과 정체의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전진한다. 여기서 정체는 한 차례의 벅찬 도약 끝에 다음 보다 더욱 큰 도약을 위한 힘의 축적일 경우도 있으나, 대개 안일을 위한 현실 답보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은 과연 어떠했던가. 근대에 들어와서만도 쇄국과 이민족의 지배 속에서 자의 혹은 타의로 현실 답보가 너무도 길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후진권으로 뒤떨어지고 말았다. 소위 ‘은자의 나라’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뒤늦게 근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해서 이제야 겨우 우리는 중진권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급변전하는 국제 조류와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불가피하게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시련 앞에 놓여 있다. 자칫하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흥정의 대상이 되는 약소국의 비애를 다시금 맛보게도 되고, 국제적 경제전쟁 속에서 혼전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시련을 이겨내고 안정과 번영을 정립시켜서 우리 세대가 더욱 잘 살게 될 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 평화와 복지의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훌륭한 개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척자의 길이란 언제나 험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지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듯 진지하기 마음먹어서 되지 않는 일이란 없다. 그것은 선진 민족들의 개척사에서도 얼마든지 그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눈물나는 개척사에서도 세기의 기적적인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방이 아랍으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 충남 정도의 좁은 국토에 2백20만에 불과한 적은 인구로, 연 7백49마일의 기다란 국경선을 방위하면서도 강한 개척 투혼으로 오늘의 번영하는 이스라엘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모든 국민은 저마다 개척자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에 투철해야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체성 있게 자기의 할 일에 대하여 스스로 능률을 극대화해서 그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마치 큰 기계와도 같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우리 국민 각자가 자기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때, 그 힘이 전체의 힘으로 위대한 나라를 만들게 될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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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6-04
  • 자녀 출산과 양육의 가치
    ▲ 김국경목사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 인근에 ‘어린이집’이 있어서 조석으로 유모차에 어린 자녀들을 태우고 교회 앞을 왕래하는 아기 엄마들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결혼기피와 저출산현상으로 민족의 혈통이 송두리째 사라지게 될 위기 상황에서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을 위해 열심히 뛰는 엄마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처럼 귀하고도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최초로 주신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선포하신 것이다. 과거 애굽에 거주하던 히브리민족에 대한 애굽 왕의 인구 억제 정책은 ‘히브리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강물에 던져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요게벳은 목숨을 걸고 모세를 낳아 끝까지 기르다가 생후 3개월이 되자 더는 숨어서 키울 수 없어서 갈대상자에 아들을 담아서 강물에 띄웠다, 이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극적으로 물에서 구조하신 후, 장차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자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칠 것을 서원하며 기도한 결과 사무엘을 그 가정에 선물로 주셨고, 사무엘은 정치와 영적인 지도자로 크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은 사명이자 축복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머니 낸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맹자의 어머니 맹모 등 많은 어머니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위인들이었다. 결혼이나 출산기피 현상이 나타난 것과 때를 같이해서 한국교회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원인은 극단적인 쾌락주의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은 경쟁시대에 부부가 함께 뛰어도 생활비와 자녀양육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원인이 있다. 그러나 자녀 출산을 사명으로 여기고 자녀 양육을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 한 우리 국가는 1세기 이내에 몰락하고 말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자녀 출산과 양육을 사명으로 여기며 솔선함으로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시대를 열어가도록 힘쓰자.  /예장 합동선목측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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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5-21
  • 한국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
    ▲ 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는 자살예방을 위한 포럼 등 생명정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이재성참령   구세군의 사명은 영혼구원, 성도로 자라게함, 섬김으로 요약인간존엄성 회복과 옹호, 사회정의 구현 위한 정책 대안제시 ‘한손에는 성경, 한손에는 빵’ 구세군의 사역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슬로건이다. 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 이재성참령(사진)은 “구세군의 사명은 영혼을 구원함, 성도로 자라게함, 고통받는 사람을 섬김 등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구원, 성화, 섬김은 여러 메뉴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구세군 복합선교의 중요한 요소이다”고 설명했다. 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는 이런 정신과 가치를 사회 속에서 완성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재성사관은 “성결의 완성은 ‘섬김’이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로 오셨다. 대접을 받기보다는 먼저 대접을 해야 한다. 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는 이러한 섬김과 봉사를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사회정의위원회는 궁극적으로 ‘사랑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이사관은 “구세군이 이러한 정신을 Soup, Soap, Salvation의 3S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먹여 주고, 닦아 주고, 구원해 주는 정신이다. 도움이 필요한 고통당하는 이웃을 데려다 음식으로 먹여주고, 다음에는 그들의 상처받은 몸을 깨끗하게 해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복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준다. 이러한 정신과 실천을 위해 사회정의위원회는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의 구세군 300여 교회에 250개의 전문시설과 병설시설을 운영 중에 있다. 이사관은 “적은 소자 한명에까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위해 도울 것이다”며, “우리 구세군이 제복을 입는 이유는 이런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서비스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다”고 밝혔다. 그래서 “구세군은 ‘오라는 교회’가 아닌 세상 속으로 ‘가라는 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사회정의위원회는 이를 위해 인간존엄성 회복과 옹호 그리고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정책 대안제시와 행동, 국가 정부기관 및 사회단체의 활동에 대한 감시, 자살예방을 비롯한 생명정의 구현운동 등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사회정의위원회는 보건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쉽게 말해 에이즈 감염인들을 위한 활동이다. 이사관은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에이즈 감염인들을 먼저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들은 사회 속에서 충분히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처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사람은 충격을 받고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지만 그러나 지금은 꾸준히 약을 먹고 치료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며, “사회정의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상담과 예배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에이즈예방을 위해 여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정의위원회는 또 자살예방을 위한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사관은 “자살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아주 불행한 일로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살예방, 유족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구세군은 또 인신매매반대운동에 깊게 전념하고 있는데 이러한 실행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차별 없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구세군의 2가지 미션에서 나온다. 이러한 활동은 구세군 초기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윌리엄 부스, 캐서린 부스 부부가 빈곤한 부랑자들을 대상으로 더럽고 위험한 거리에서 시작했다. 그들의 노력은 성착취 인신매매의 공포로부터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으로 발전되었다. 상업적인 성착취에 강요되거나 위험을 가진 여성과 아동들을 돕기위해 구세군 사회정의위원회는 집중적인 구호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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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6
  • 변화에 발맞추는 목회자
    ▲ 이정익목사   오늘 우리 사회의 단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급변하는 사회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변화는 이집트 시대의 12년이 오늘의 5분에 해당할 만큼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현기증 나듯 돌아가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해 가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중들을 주일마다 교회에 모아놓고 오늘의 목회자들이 설교한다. 그런데 그 변화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설교하는 오늘의 설교자들은 불행하게도 그 변화의 주류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에서 뒤떨어진 오늘날 목회자들의 설교가 변화에 익숙한 삶의 형태를 가진 청중들에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게 먹혀들고 그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때로 전혀 마음이 통하지 않는 동문서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과 삶의 채널이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공감성이나 이해력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교회마다 젊은이들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목회자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양상과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변화의 심장부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청중들을 앞에 놓고 효과 있고 설득력 있게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목회자들은 누구보다도 세상을 알고 공부하기 위해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목회자들은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우선 목회자들은 재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해야 한다. 목회를 하는 데 한번 타성에 젖으면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자신을 위해서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면 효과가 있는 설교를 쏟아낼 수가 없다. 그것은 곧 목회의 부진으로 이어질 것이다. 목회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나 대학에서 제공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는 인스턴트식 목회자 세미나를 전전하기보다는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서 오늘의 목회자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알고 자신의 성장을 도모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신촌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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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5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전계현목사   기독교는 효를 중요시하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진리와 윤리가 집약된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이다.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수직적인 조항이다. 5계명부터 10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수평적인 조항인데, 여기서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경이 효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구약 레위기에서는 더 강력하게 효에 대해서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한다. 물론 구약 출애굽시대의 율법적 조항이기에 문자 그대로 지금 우리의 현대시대에 적용할 수는 없다. 저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구약의 의식적 율법은 지금의 성도들에게는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율법이 강조하는 ‘정신’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그만큼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다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도 효의 정신은 중요하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생명이 다하기 전에 육신의 어머니를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이루셨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적인 도리도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성경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신적인 계명으로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로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의 삶에서 도덕과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오늘 우리 시대는 성경이 강조하는 효의 윤리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자녀는 부모를 거역하는 인륜이 무너지는 일들이 너무나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별로 효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 효에 대한 가치를 점점 상실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교회 외에는 없게 됐다. 교회는 설교와 실천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강조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예장 합동측 증경총회장·익산동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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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8
  •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 김연준박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형식적인 이야기나 하고 행사나 치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자녀 문제는 가정에서 1차적으로 먼저 다루어져야 하겠다. 대체로 모든 행사는 가정과 떨어진 행사를 위한 행사 같은 인상을 주고 있지만, 자녀문제는 각 가정의 내 자녀에 대한 문제이므로 각 가정이 청소년에 대해서는 먼저 모든 일에 앞장서야 하고 참되게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정이 병들면 자녀의 마음도 병이 든다. 아무리 학교에서 좋은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가정이 불안정하면 모든 것이 흔들이며 인생의 바른 방향을 잡아 나가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가장은 먼저 선한 마음이 자라는 사람의 터전이 되어야 하겠다. 가정불화가 자녀에게 모든 선한 생각을 버리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가 지켜야 할 가정은 자녀들의 인격성장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곳이다. 가정은 지식을 더하는 곳이기보다는 생활을 중시하는 곳이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르고 생활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공동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과, 내 생각과는 다를지라도 조화를 이룩하며 협동하는 모든 생활의 기본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가정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은 가정에 있어서 생활의 가치관설정이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옛사람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는 효도를 하며, 타인에게 덕을 베푸는 것을 가치 있는 생활로 정하였으나, 현대생활은 물질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부모들의 마음은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 주겠다는 것을 가정의 가치관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가정에는 자녀와 대화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정에서도 인생을 논하는 대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가정에서부터 단절이 되어 있는 셈이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민족의 참다운 얼을 심어주고 가치관을 대화로써 길러 주어야 하겠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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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5-01
  • 함께 복음 이루고 증거하자
    ▲ 엄정묵목사  인간은 하루 23,000번의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호흡의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진행하도록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 속에서 호흡을 잊듯 하나님의 은혜마저 잊고 살아간다. 창조주의 은혜를 잊고 사는 우리는 내가 낫니 네가 낫니 서로 아웅다웅 다투어 가며 세상을 온통 전쟁터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은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언젠가 불현듯 닥쳐올 그 흉흉한 죽음을 잊고 살기에 참으로 어리석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장 14절) 인생사 부질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심으로 그 인생의 덧없음을 이겨내셨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덤을 통해 망자를 기린다지만 그리스도는 무덤이 없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임을 우리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다. 육신은 죽고 영이 살아야 생명이 있고 부활이 있다. 우리가 육신을 살리고자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주권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행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위기라고들 말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랑의 실천은 외면하고 서로들 높아지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듯 서로 높아지기 위해 삶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죽음 이후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들의 육신을 이겨내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교계, 교파, 교단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함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서로들 다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랑은 희생이고 희생은 죽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만이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의 사랑만이 온건할 수 있다.  /엘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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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04-25
  • [부활절메시지] 부활은 온 우주에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
    ▲ 길자연목사  성경이 증거하는 최고의 사건 두 가지를 고른다면 그것은 단연 창조와 부활이다. 창조가 우주의 기원이라면, 부활은 사탄으로 인하여 타락한 창조 질서를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회복은 단순회복이 아니라 종말론적 회복이다. 종말론적 완성을 그리스도께서 보증하신 것이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다시 있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이번 부활절에는 영혼구원에 그치지 말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취하신 새로운 회복의 의미를 새겨 보면 좋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부활의 소식이 절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가정이 해체되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강원도에서 일어난 큰 산불은 많은 분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런 일을 보면서 인간의 도모가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 깨닫게 되고, 정의와 평등 인류애를 외치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또한 날로 황폐해가는 지구 생태계에도 부활의 소식이 전해져야 한다. 환경문제는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조만간에 총체적 황폐로 인간의 생존환경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타락이 우주적 사건이듯이 부활 또한 우주적 사건이다. 환경도 부활의 새질서로 거듭나길 기도해보자. 부활의 소식은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전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교단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고 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한다. 남을 보기 전에 자기를 먼저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참된 용기와 혁명적인 사고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부활은 축하할 일일 뿐만 아니라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부활이란 그리스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나와 온 우주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기총 증경총회장. 왕성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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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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