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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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향한 복음의 사명
      기독교신문 창간 54주년을 축하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한결같이 한국 기독언론의 중심을 지킬 뿐 아니라 교계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지면을 통한 한국 선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지난 추석을 앞둔 9월 초에 중형급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해마다 추석 한주 전에 지역주민을 위한 이웃사랑나눔바자회를 개최해 왔는데 금 번 바자회는 태풍 때문에 실내에서 실시했다. 밤새 태풍으로 인한 강한 바람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교회 앞 공원 나무들이 여기 저기 쓰러진 것을 보았다. 쓰러진 나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은 자기가 심겨진 곳에서 살다가 생을 다하는구나’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소개한 지혜시편이다. 복 있는 사람은 후반부에 소개되는 의인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의인’으로 봐도 된다. 이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라고 한다. 나무의 특성은 자기가 심겨진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강풍에 뿌리가 뽑혀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나무이다.   히브리어 단어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의미의 ‘아멘’이 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일 것이다. 혹 설교를 듣다가 성도가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제가 주신 말씀을 가지고 험난한 세상에서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독언론의 문서선교 사명은 나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명은 세상언론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수집하고 전달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말씀을 통해 사건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된 메시지를 교회와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언자적인 사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 시대사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치 않는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나무와 같이 묵묵히 자리매김하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언론의 사명은 세상언론보다 결코 쉽지 않다. 시대를 주도하는 언론이 제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교계의 부패를 방지하고 성도들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또 복음의 문서선교 사역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두 배 혹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가치가 있는 일이다. 소중한 일이다. 지금 당장 열매를 얻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다음 반세기도 묵묵히 자리매김하는 기독교신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사렛 감독·상암동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2-04
  • 거룩한 삶이 함께하는 감사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은 ‘기독교 신자들이 한 해에 한 번씩 가을 곡식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올리는 날, 1620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다음 해 가을에 처음으로 거둔 수확으로 감사제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고 정의된다. 한 해 동안 거둔 수확물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감사하는 시간인 추수감사절은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자비를 뒤돌아보며 타락한 인간에게 주시는 값진 은혜에 감격을 표하는 시간이다.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무고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감사를 표해야 할 사건이다. 2천 년 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가장 비참한 죽음을 겪은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의 삶에 가치가 부여됐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를 표하며 이웃에게 나누는 중요한 의무를 진다. 이 의무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뤄나가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표해야 할 감사는 무엇인가. 마르틴 루터는 감사를 근본적인 기독교인의 태도라고 정의했다. 루터가 이야기하는 감사의 개념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를 전하는 행동 저변에는 이 세상 속에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무런 사심 없이 베푸시는 분이라는 개념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관용 안에서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외적으로 표현해 값진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며 사는 실천을 보이게 된다.   감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점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날 주님께서 실재적으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현재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 향유할 수 있도록 베푸시는 자비로 가득 찬 은총이다. 다만 우리가 감사로 표현하는 이 은총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함께 공유해야 하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재림이 완전히 도래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주님의 자비를 알고 깨달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실천을 보이게 된다. 이를 통해 나누는 주님의 사랑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와 온 우주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활동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추수를 통해 상기할 수 있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힘입어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섬기며 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감사로 표현하는 날이 되길 희망한다./서울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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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1-14
  • 무엇을 감사할까?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구약 적 유래를 찾으려면 어쩌면 초막절로부터 찾을 수 있다. 초막절 또는 수장절로 불리어지는 이 절기는 레위기 23장 34~43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이스라엘 자손대대로 알게 하실 목적으로 초막절을 제정하여 지킬 것을 소개하고 있다.   백성들은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휴식을 취하며 일주간을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며 초막에서 지내며 음식으로 제사를 드린다. 히브리어로 숙콧이라고 불리는 초막절은 유대인들이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40년 광야 여정 속에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섭리를 기억하고 상기한다.   광야의 고달픔과 지루한 행로 가운데 목마름을 적셔 주었던 하나님의 생수의 은혜, 불기둥으로 갈 길을 밝혀 주셨던 은혜, 구름기둥으로 광야의 뜨거운 열기로부터 지켜주셨던 은혜를 생각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되자 오곡백과가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스스로 광야의 초막에서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영국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국교도 들에 의한 종교 박해를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했다. 그 중에서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 대륙을 찾은 102명의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스피드웰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지만 배가 고장 나 귀환하고 다시 1620년 9월 6일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케이퍼 카드해안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5일간 주위를 답사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공격, 야생맹수들의 위험, 주거할 집의 부재 등 최악의 상황에서 버텨야 했다. 결국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52명이 동사 또는 병사를 하고 생존자는 50명뿐이었고 남은 자들은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는 말씀을 의지하며 1661년 가을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근대적 추수감사절의 배경에는 화해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올해의 감사절에는 이웃 또는 누군가와 평화롭고 친밀하게 지내고 있음에 감사드려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감사절을 기하여 어색하고 불편하게 지냈던 이웃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갖게되는 감사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글로벌선진학교이사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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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1-07
  • 종교인은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종교는 인간 역사에 있어서 지극히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성의 ‘아비스’라고 할 수 있는 죄악성을 파헤치며 동시에 인간성의 면류관인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 기술화의 시대여서 종교는 과거의 유물로밖에 남지 않는다고 속단하는 사람이 많다. 거기에는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사장되어 과거의 골동품으로 자처하는 경우에는 그런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다원종교사회이기 때문에 서구와는 다른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 역사에 대한 종교의 사명은 서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종교는 다원 사회의 분산된 분야들을 하나의 중심에 통합하며 화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종교는 각인각색의 윤리적 혼란이나 도덕의 부패, 타락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앙양시키고 인간을 죄악성에서 구출하는 구실을 담당한다. 종교는 자아중심, 현세주의, 이득 본위 등의 평면적인 생활에 신에 대한 책임, 영원,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수직적인 관계를 갖게 하여 인간을 실존적인 불안과 절망에서 구출한다. 그러한 종교의 본질은 인간이 역사에서 스스로를 유리시켜 타계적인 신비 경험에 몰입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무대로 신의 사랑을 가르치고 살고 지키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우리 한국에는 역사적인 종교로서 불교·유교·기독교 등이 있으며 각기 수백만 명의 신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의 역사에 남긴 실적을 살펴볼 때 그 본연의 의미를 유감 없이 수행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우선 통합과 화해를 그 중심 메시지로 삼는 종교가 배타 또는 타분야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자체 내에 분열과 분쟁과 상호 배격을 일삼는 일이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둘째로는 옛날에는 파계라는 것이 지대한 관심사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의 종교에서는 그 개인 윤리 면이 해이됐을 뿐 아니라 가장 고조되어야 할 사회·윤리 면에서 냉담 무관하기 그지없다.    한국종교는 같은 신도끼리만 유대를 가지며 안으로 오그라드는 경향을 증대시키고 있다. 종교가 자기 발전을 기대하려면 언제나 밖으로 마음과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예수도 ‘가서 모든 민족에게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최후의 분부를 남겼다.    종교인들은 이제부터라도 문을 열고 선교와 온갖 사회봉사와 사회사업을 해야 할 것이며 아직도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한 접촉 등을 종교인의 본직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모름지기 마음과 문을 열고 선교와 지역 사회에의 봉사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 안으로 오그라드는 종교는 자멸할 뿐이다.   /본지 전 발행인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30
  • 목회자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어렵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엇인가 어려움에 봉착한 느낌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부족하기에 한국교회가 어렵다는 느낌이 작금의 시대에 퍼져있는가.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실천이다.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교회에 차고 넘쳐야만 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 사랑 아니었던가. 자신을 내어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사랑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교회가 언제나 기억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역사를 통해서도 사랑의 한 예를 볼 수 있다. 바로 감리교인으로서 종교교회에 출석했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남궁 억선생과 같은 분들이 우리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랑의 덕목을 잘 보여준다.   남선생은 자신의 온 삶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 남선생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나라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는 대한제국 조선 황조 말기의 교육자이자 계몽 운동가였으며,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 사회운동가, 시인, 저술가, 작사가, 작곡가, 언론인으로서 폭넓게 활동하면서도 늘 기독교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삶은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것을 위해 헌신됐다.   그의 삶은 마치 이사야의 삶과 유사했다. 그의 신앙은 예언자의 그 강인함을 닮아 있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특히 우리 한국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것인가.    남궁억선생의 나라를 사랑하는 큰 마음을 배우길 기도한다. 이사야의 예언자 정신을 회복하길 기도한다. 믿지 않아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길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목회자다운 마음가짐을 회복하길 기도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들 한국교회의 위기가 아닌 부흥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기감 서울연회 감독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23
  • 건전한 사회분위기를 만들자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스스로와 이웃을 염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럴 때 개인의 삶도 더욱 보람차며 우리 사회는 개혁되고 발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나라의 문제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언제나 개인의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야망이 늘 충돌하는 사회는 결국 이익집단을 양산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만연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허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덕목을 신장할 때 우리 사회에 정의와 사랑과 용서, 평등, 자유가 자라나게 될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고 그 분위기에 따라 좋고 그름을 분간하면서 국민의식이 생겨난다. 지도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그 분위기에 따라 선악을 판단한다. 사회의 올바른 분위기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본을 보일 때 실현 가능하다.    만일 우리나라에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없거나, 혹 있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시대적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가치들을 창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본받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한결 좋아질 것이다.   정치인이나 사회적 지도자들이 자기들만 옳다고 이념적 갈등을 만들어 내서는 결코 안 된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꾼이 되려고 노력해야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해서 멸사봉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경륜과 실천을 통해서 이웃에게 참된 모습을 보일 때 진정으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진정한 리더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더 큰 인물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인정하며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예장 개혁혁신측 총회장·엘림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17
  • 이웃사랑의 정체성 확립하자
      한국사회는 현재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퍼지면서 절대적 기준이 붕괴하고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으로 절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은 물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까지 허물어지고 있다. 이는 바벨탑을 쌓으며 자신의 일만 묵묵히 수행했던 이들과 비슷하게 보인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가치관이 팽배해지면서 기존의 절대가치가 모두 상대화되었고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쓰다 버리는 도구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다. IMF 이후 이러한 경향을 매서울 정도로 가속화되어 황금만능주의 사회로 한국을 변질시켰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교회 또한 방황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언론에서 조명되는 유명 목회자들의 언행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답지 못한 모습에서 교회다운 교회가 실종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구원보다 교인을 늘리고 헌금을 걷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는 천민자본주의적 사고로 이어져 교회 크기를 키우는 데에 온 힘을 쏟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기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핵심을 찌르는 논리에 기반하여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인류사랑이라는 대원칙 아래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해답을 깨닫고 그분께서 진정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자이심을 확인하게 된다.   급격한 가치변동의 시대 속에서 지금 자신의 정체성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버리고 간 제사장과 바리새인 같은 위선이 마음속에 있는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웃을 구했던 사마리아인 같은 신앙이 있는지 돌이켜보자.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비우자.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이 지녀야 할 참된 기준이다. 재산과 명예, 권력으로 인해 그리스도인 된 가치를 저버리지 말고 목사답고 교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교회가 이 사회의 등대가 되어 빛을 비추고 화평과 안식의 기수가 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정체성을 마음에 확립할 수 있다. /나사렛 증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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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0-11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위대한 문화건설을 위한 제언
      종종 우리는 우리나라가 문화의 나라요, 우리 국민이 문화 민족이라는 것을 자부하고 있다. 찬란한 과거의 유물과 유적들은 이것을 증명해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진위를 따져 보면  그 범위가 동아시아에 국한되었고 그 시대가 중세적인 데 머물고 말았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에게는 커다란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금 돌이켜볼 때 우리는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계 수준의 문화에 도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추월할 것을 목표로 매진해야 한다.   우선 문화의 건설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경제적 조건이 맞아야 하고 지리적으로 너무 춥거나 덥다는 악조건이 없어야 하며 전승이 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외부 조건에 너무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가장 주체적인 인간 문제가 망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문화의 운명은 인간의 사람됨에 달려 있다. 결국 문화란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품격은 나라를 만드는 인간의 품격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문화 건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문화를 건설하려면 먼저 인간들의 비전이 크고 그 생각의 규모가 커야 한다. 종래의 우리의 문화 현태는 그 스케일이 크지 못했다. 정치에서도 소국으로 자처하여 명맥을 유지했으니 큼직한 기백을 기약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위대하고 숭고한 비전에 불타는 일이 매우 적다. 근시안적으로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급급하여 천박한 잔재주를 부리기 일쑤인데 이것도 또한 소국민적인 소치에서 기인하단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남을 위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는 한 큰 인간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의 인격이란 남을 위해 주는 것만큼 그 영역이 커지게 마련이다. 내가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벌써 그 남이라는 사람이 남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내 인격은 이미 거기에 퍼진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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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0-02
  • 한국교단이 하나 되려면
      바벨론 포로 시절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네 개의 종파로 발전하였다. 대사제와 장로와 같은 귀족으로 이루어진 사두개파와 서기관과 율법학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바리새파,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졌다 생각하고 사막으로 나아가 분리된 삶을 살며 율법 연구에 몰두했던 에세네파, 그리고 폭력을 통해서라도 이방인을 몰아내고 유대 땅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열성당파가 있었다. 네 종파는 서로 자신들만이 의로운 공동체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각 종파는 예수님의 심판과 책망을 피할 수 없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많은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교단은 다양한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과 다툼으로 분리되었다. 분리의 원인은 신학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다양하지만 결국 자기주장으로 인해 화목하지 못한데 있다. 낮아짐을 통해 섬김의 도를 실현해야할 지도자들이 서로 높아지려는 명예욕도 분리의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결국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각 교단이 서로 독특한 신학과 사상을 주장하며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공동체라고 주장하지만 그 모든 주장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분열의 역사와 그것을 지켜보며 인내하던 주님께서 심판하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종파주의 역사는 그 성격에서 한국교회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열의 형식은 교단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네 종파로 이루어진 유대교가 주님의 심판의 받은 것처럼 각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교회도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면하기 위해서는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자기주장과 자기 명예를 내려놓고 용서와 화목의 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 어떤 이유도 교회의 분열과 다툼을 합리화할 수 없다. 오늘도 주님은 피 값으로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는 자를 찾고 계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한영대 총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9-25
  • 그리스도의 사랑 나눔사역을 추진 - 모리아교회의 윤요셉목사
    ▲추석을 맞이하여 모리아교회는 쪽방촌을 찾아가 생필품을 나누고 음식을 대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했다.   생필품 전달·음식나눔 등 쪽방촌 독거노인 사역을 전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모리아교회의 윤요셉목사(사진)는 지난 11일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열고,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보듬는 사역을 진행했다.   이번 나눔행사는 추석 연휴를 맞아 쪽방에서 홀로 사는 500여명의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식자재를 비롯한 생필품을 전달하며 교회가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웃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윤목사는 “민족의 명절인 추석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사랑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미처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는 쪽방촌 독거노인들에게 추석은 고독한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며, “쪽방촌은 거주하는 이들은 재개발이 되지 않고 노후 된 건물이 밀집된 좁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사는 이들 대다수는 가족 없이 홀로 사는 70세 이상 노인이 많고 이외에도 가족 간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연으로 인해 사회 최하계층으로 떨어진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반 평짜리 작은 쪽방에 있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가족을 대신할 이웃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다”며,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밥 한 끼 먹기 힘든 삶을 사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보듬고자 15년째 매년 명절(설, 추석)과 때마다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통해 쪽방촌 독거노인의 삶에 그리스도의 희망을 심어주는 데에 주력했다고 밝힌 윤목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쪽방촌 가정마다 생닭과 생만두, 과일, 쌀, 라면 등을 제공하고 교회에 함께 모여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이 외에도 매달 생일을 맞아하는 어른들을 함께 모아 합동으로 이들을 축하하고 생일선물 전달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뇌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본질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영혼구원에 목표로 쪽방촌 돌봄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한 윤목사는 “복음과 복지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계시는 70세 이상 쪽방촌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적으로는 의식주를 제공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며, “매해 성탄절과 신년, 부활, 추수감사절 등 교회절기와 더불어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을 맞이하면 독거노인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직접 찾아가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쪽방촌에서 홀로 사는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권면하면서 주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만큼 반드시 되돌려 주는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나아가고 있다”며,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오직 천국의 소망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소외계층인 이웃을 돌보고 인도하면서 이들 모두가 주님 앞에 서는 마지막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각지에 쪽방촌이 650여 곳이 있다고 말한 윤목사는 “전국에서 쪽방촌 사역에 함께하는 단체와 조사한 결과 쪽방촌에 있는 독거노인만 65만 명이 집계됐다”며, “반 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발을 모두 뻗지 못한 채 새우잠을 자는 이들이 많으며 많은 나이와 비위생적인 환경, 고르지 못한 식생활로 인해 병에 걸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위험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국교회가 이 사회가 하지 못하는 사랑 나눔사역에 힘을 모아 실천하기를 희망한다”며,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부여잡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함께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셨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됨으로서 이 사회가 복음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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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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