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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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는 힘
      사람들은 말하기는 좋아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혜자가 되려면 말하기 훈련을 하기 전에 반드시 듣는 훈련을 해야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란 야고보서 1장 19절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기기만 해도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상담의 제1원리는 경청하는 것이다. 잘 들어주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결론을 다 내리고 털어놓고 나서 ‘시원하다’고 말하며 일어난다. 그런데 가르치려 하고, 훈계하려고 하면 기분이 나빠 마음을 열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이렇게 사람의 말을 들어 줄 때 성공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한국 기독교가 열심히 모여 예배하고 날마다 말씀을 듣는데, 세상을 향한 영향력은 점점 떨어지는가? 그것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 속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시온성이 나오고, 소원의 항구에 도달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강한 것이 이기고 오래간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혀와 치아를 비교해 보라. 부드러운 혀가 딱딱한 치아보다 훨씬 오래간다. 잠언 25장 15절에서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말한다. 노자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고 말한다. 물방울은 부드러우나 계속 떨어지면 돌을 뚫는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약한 사람 같으나 강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은 충돌하고, 부러지고, 상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감싸고, 덮어 주고, 위로자가 된다.   세상에 생명이 왕성한 것은 모두 부드럽다. 어린아이는 부드럽다. 그러나 숨이 끊어진 시체는 한 시간만 지나면 돌덩어리가 되고 만다. 부드러운 것에 생명이 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사람이란 별명을 가졌던 요한도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구약에서 한 성질 하는 것으로 유명한 모세도 ‘온유함이 세상사람들 중에 최고’란 칭찬을 받았다.   한국교회가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다시 굳게 일어서길 기대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성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깨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말씀의 힘을 회복해 말로 새로운 생명들을 얻길 소원한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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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12-02
  • 노숙인의 자활을 위한 사역활동 앞장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목사) 서울·용산역서 무료로 급식제공,  목욕과 생필품 등 지원   주민등록 회복시켜주는 작업과 취업 연계등 자활활동도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목사(사진)는 27년간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 시절 서원을 하고 목회자가 된 그는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으로 ‘노숙인의 대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2년 전 후암로 인근에 개설된 이 센터는 서울역과 용산역 일대에서 무료급식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들을 위한 숙소제공을 비롯한 사역을 하며, 궁극적으로 자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목사가 노숙인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IMF사태와 연관이 있다. IMF사태 당시 대우빌딩 앞 지하도에서 수백명의 노숙인들을 본 최목사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목사는 “이들을 볼 때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웠던 과거가 떠올렸다. 내가 저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진짜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목회를 했지만, 갈등이 있었다. 진짜 목회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이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매주 서울역과 용산역 일대에서 200명 가량의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해서 잠바, 양말, 수건, 칫솔, 치약 등 생필품등도 나누어주고 있다. 그리고 무료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하고 있다.   ◇ 서울역노숙인 자활센터는 노숙인들을 위해 급식배식과 취업연계 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가 노숙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하는 사역은 ‘신분의 회복’이다. 많은 수의 노숙인이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최목사는 말소된 이들의 주민등록을 회복시켜주는 행정상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또 노숙인들이 지원 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시켜주는 일도 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지원비로 노숙인들을 위한 숙소를 연결해 준다.   그의 사역에 핵심은 노숙인들의 자활이다. 지금까지 최목사를 통해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취업해서 자활에 성공했다. 최목사는 “자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터가 있어야 한다. 노숙인들이 취직하기 위해서는 보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보증을 서준다”면서. “청소부, 목욕탕 때밀이, 건설 신호수, 주차관리원 등으로 취업을 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목사는 노숙인의 취업에 앞서 그들이 금연과 금주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의 마음과 몸이 회복되면 각자의 여건에 따라서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있다. 특히 출소 후 자립하도록 주거를 지원하는 등 출소자에게 미래를 꿈꾸도록 집중하여 사례관리도 하고 있다. 또 그는 현재 센터에서 5명의 노숙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들은 최목사의 사역을 함께 도우면서 자활에 나서고 있다.   최목사는 ‘노숙인의 자활’을 이 사역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최목사는 “군인장교 출신이 이혼당해 노숙자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자활에 성공하고 재혼까지 해서 잘살고 있다”면서, “또한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 출신이 고맙다면서 노숙인들에게 수박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가장 큰 보람이다”고 말했다.   한편 월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그는 베트남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사역도 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 중 한국에서 결혼을 원하는 이들에게 100불씩 지원하여 한국어를 가르치고, 결혼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고 있다.   ◇ 노숙인 자활센터, 목욕지원과 노숙인들과 숙식을 하고있다.  마지막으로 최목사는 사역을 위한 후원을 요청했다. “사회복지 안전망 바깥에서 자활을 지원하는 노숙인 사역은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사태로 시민후원금이 끊어지면서 센터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센터 운영을 위해 본인의 기초생활수급자비와 월남참전 용사 국가유공자 수당까지 보태는 중이다.      현재는 전기세 미납으로 인해 센터에 전기가 끊겨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가 끊기니 목욕지원과 부식보존, 식사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잠자리에까지 밀려들어오는 겨울 추위는 센타가 겪는 어려움, 이중고이다. 최목사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성탄되도록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도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 전기가 끊긴 노숙인 자활센터, 식재료보관과 목욕지원, 난방이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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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11-29
  • 한국교회여, 젊은이들 빼앗긴 죄악을 참회하고 통회하라
      이태원 사고는 그것을 당한 분들의 부모와 가족과 친지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과 놀람과 고통을 준 불행한 사건이다. 왜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반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철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사고를 성경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여기에 담긴 영적 차원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진단하며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할로윈 데이'라는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전해온 축제를 맞이하여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도로에 한꺼번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압사를 일으킬만한 정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가? 아마 사고를 당한 분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는, 많은 젊은들이 호기심으로 그들의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갔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특히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현실에서 초등부와 중고등부는 물론 대학청년부에 이르기까지 출석하는 인원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주일학교 자체가 없어진 교회들이 대단히 많다고 듣고 있다. 기독교적 정신과 가치와 이념을 따라 세워진 대학들에서조차 기독교인 대학생들의 숫자가 전체 학생의 5% 이하이며 그래서 오늘날 대학생들을 가리켜 '미전도 종족'이라고 말하는 어느 대학교 교수의 말을 들은 것이 최근이다. 자라나는 세대가 이렇게 점점 더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반면, 교회와 상관없는 모임과 나아가 교회를 거부하고 반대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일어난 젊은이들의 ‘탈-교회’ 현상이다. 한국의 손흥민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 중계 화면을 보면, 그렇게 큰 축구 경기장에 관중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연로하신 소수의 신자들이 크고 웅장한 영국 교회의 예배당에 모여 쓸쓸하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왜 젊은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오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과 상관없는 것에 정신이 팔리도록 만들어 왔는가? 우리는 왜 젊은이들의 영혼을 그들의 주인이 되신 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인가? 이태원 사고를 놓고 우리는 외면만 화려하고 풍성하게 보이지, 영적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무능하고, 무력하며, 무책임한 한국교회의 영적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주 하나님 앞에서 젊은이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 빼앗긴 우리의영적인 무능력과, 무책임과, 무관심을 애통하며 통곡하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버리고 떠나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내버려 둔 죄악을 참회하고 통회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호 6:1).   젊은이들의 영혼을 복음으로 붙잡기 위해 지금 눈물로 기도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도 유럽과 북미 교회들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다. 사탄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세속의 물결과 죄악의 물결과 사탄의 물결(계 12:15)에 우리도 다 휩쓸리고 마귀의 밥이 되어 배교의 벼랑 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마겟돈으로 부르는 영적인 최후 전쟁(계 16:16)을 앞두고 있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종말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벼랑 끝에 서있는 절박하고 위급한 마음으로 독수리의 두 날개를 보내주시도록(계 12:14) 절박하게 급박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영적 위기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대행·대전 늘사랑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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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11-21
  •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하박국이 예언한 시기는 주전 600년경으로 포로 전 유다 왕 요시야가 죽는 때와 겹치는 시기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종교개혁과 사회개혁을 일으켰던 요시야 왕이 죽게 되자 유다는 점차 국가적인 혼란, 도덕적인 부패, 종교적인 타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유다 백성들이 점점 악해져 가고 망국적인 행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의로운 사람이 핍박당하고 악인들이 득세하고, 잘못된 행동과 주장이 정의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다를 징벌하려 행동을 개시한다.   하나님께서 채찍으로 쓰시고자 세운 바벨론 왕국은 무력의 왕국이다. 군마와 무기와 돈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해 나가는 그들에게는 도덕이나 윤리가 없다. 오직 힘이 정의이다. 여기에 이집트는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이미 3000년 동안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지만 힘이 약화되고 있다.   헬라는 도시국가를 형성하면서 이제 점점 인본주의 철학으로 무장하며 제국의 기운을 모아가고 있었다. 로마 역시 절치부심하며 나라의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이 강대한 제국들 가운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있었다. 이후 바벨론은 페르시아에게 정복을 당한다.   유다를 중심으로 제국들이 힘을 겨루는 험난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도 유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다. 이것이 하박국의 눈에는 멸망으로 가는 자신들의 운명으로 보였다.   국가와 사회는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 우리시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야 지혜롭다고 한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모아야 성공한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으면 우리가 취하는 태도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유치한 행동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보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그래야 산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다시 부흥하는 길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예장 합동측 증경총회장·익산 동산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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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11-14
  • 함께 슬퍼하며 기도합시다
        이태원 압사사고로 귀한 생명을 잃어버린 일이 일어났다.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들이다. 상상할 수 없는 참상 앞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 대부분이 10대, 20대의 우리 자녀들이라고 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갔다고 했는데 밤에 비보를 들은 가정들은 청천벼락을 맞은 것이다. 어떤 말로 위로하며 아픔을 대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함께 슬퍼할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낸다.    대부분의 피해자인 그들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만남도 있고 위로도 필요하며 쉼과 놀이도 누려야 했기에 그 공간을 빌린 것이다. 그런데 그 곳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아버린 공간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 비극의 자리에 슬퍼할 뿐이다 . 슬픔과 애도의 자리에서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는가?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생명을 주는 진리인데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느냐는 것이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 사회를 건강한 문화로 이끌고 섬겼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자인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 다음세대를 주안에서 미래세대로 세웠느냐는 것이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붙잡아야 한다. 샬롬부흥의 직분자로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 함께 슬퍼하며 기도하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린도후서 1:4~7)”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예장 합동측 총회장 · 주다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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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11-14
  • 꼭 필요한 인생을 살자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인생(人生)과 인간(人間)은 그 의미가 다르게 쓰인다. 인생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가’란 것이고, 인간이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란 말이다.   사람을 두고 쓰는 이 두 말은 사람에게 가장 값지고 엄숙한 말이다. 왜냐하면 이 두 단어는 사람의 생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는 저마다 목적이 있는 것이기에 엄숙하고 보람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서로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면서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일생이라야 한다고,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요 수필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곤충에 비유하여 인간의 세 종류를 말하였다.   그는 첫째의 인간으로 거미처럼 인생을 사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거미는 그늘진 곳에 거미줄을 쳐놓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생명이 걸리면 슬그머니 나와서 피를 빨아먹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의 삶을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그는 또 두 번째의 인간으로 개미형의 인생을 사는 사람을 지적했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조직력도 강하지만 누구에게 유익을 주거나 헌신함 없이 오직 자기들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이 세상엔 공동체 정신없이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이웃에게 유익도 끼치지 않고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음을 꼬집었다.   베이컨은 세 번째로 꿀벌형의 인생을 사는,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꿀벌은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조직력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꿀벌은 질서있게 활동하여 많은 꿀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지만 상당한 꿀을 생산해주는 이타주의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 타입의 인생을 사는 인간들을 곤충에 비유한 프란시스 베이컨은 거미형의 인간은 이 세상에 있어선 아니 될 사람이라 했고, 개미형의 인간을 가리키면서 그런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즉 있으나 마나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세상, 사회 곳곳에 꼭 필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꿀벌과 같은 인간이라고 칭찬했다. 없어선 아니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 인생철학이 뚜렷하고 이웃을 위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인간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철학자 룻소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살 수 없다. 구경꾼처럼 따라가는 인생이 아니라, 목적이 분명하여 귀한 생명의 존엄을 꼭 인식하고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사는 멋진 인간이 돼야 한다. /경천교회 원로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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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09-30
  • 약자와의 동행
      요즘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얼마나 좋은 말이면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애용하는 구호가 될 정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도 결국은 약자와의 동행으로 귀결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이라는 행위도 마지막에는 약자와의 동행에 이르게 된다. 약자와의 동행은 동물에게는 없는 우리 인간만이 가진 고귀한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인류의 덕목이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도 약자에게 기울일 때 귀한 것이 된다. 약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이지만 강자를 사랑하면 아부가 된다.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애정어린 관심이 되지만 강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자기 욕심의 성취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고귀하고 가치있는 약자와의 동행이라고 해도 그것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나 구호에 머물거나 유명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것은 한낱 화려하고 현란한 언어의 유희에 그칠 뿐이다. 행동화, 실천화가 안되면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바로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이다.   목사님들이 설교예화로 즐겨 사용하는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눈덮인 산고갯길을 친구와 함께 넘다가 추위에 얼어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는 어차피 살기 어려우니 그냥 지나쳐가자고 했고 썬 다싱은 그래도 같이 데리고 가야한다고 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친구는 홀로 먼저 떠났고 썬다 싱은 그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등에 업고 고갯길을 넘는다. 땀과 열기가 등에 업힌 사람에게 전해져 마침내 살아나게 된다. 함께 눈보라 산길을 넘던 두 사람은 추위에 이미 얼어 죽은 또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앞서 먼저 떠났던 그 친구였다. 약자와의 동행은 약자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내가 사는 길이다. 아니 모두 함께 사는 길이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쉬운 말로 하면 이 땅의 약자와 동행하기기 위해서 오신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종교적 약자, 경제적 약자, 육체적 약자,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약자를 위해 오셨고 그들을 위해 살다가 그 약자들에게 생명까지 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곧 약자와의 동행을 의미하며 그 약자를 위한 사랑이 행동화한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행동으로 표출되는 약자와의 동행이 단순히 사회복지라는 제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넘쳐나기를 소망해본다./기독교한국루터회 전임총회장·베델성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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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09-15
  • 행복의 조건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기본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이다. 평화가 깨지면 행복은 없다. 우리가 폭력을 증오하고 전쟁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도 평화가 해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간이 추구해 온 낙원 그것은 바로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끊임없이 수양하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다. 옳지 않은 길을 갈 때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평화라는 낙원을 만들기는 쉽지 않고 인간 사회 속에서 거의 불가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잠잠하고자 하나 바람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불안해하며 원치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상황에 갈등하고, 피를 나눈 가족간에도 서로간의 상처로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혼자 산다면 이런 갈등들과 만나지 않을 테지만 인간인 이상 혼자 살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숱한 선택과 갈등의 상황들을 해쳐나가 마음의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보면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는 뱀의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부모의 마음을 찌른다”란 구절이 나온다. 감사가 없이는 모든 것이 해가 된다는 말이다.   행복의 기본은 감사이다.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커다란 문제일지라도 그것의 비중은 아주 작아지고 만다. 예를 들어보면 한밤중에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났는데 그 강도가 나에게 칼을 들이대며 위협해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고 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도에게 지갑만 뺏기고 목숨이 온전한 것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저렇게 다 잘 사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힘든 상황과 억울한 상황들이 일어나는지 불평과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처럼 가지려고 노력해 보자.  /예장(합동한신)증경총회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22-08-23
  •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수해지역은 일년내 복구하고 다음해 또 물난리를 만난다. 수재민돕기 성금보다, 수해대비 성금을 잊어버리고 당한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은가. 그런데 긴 장마철인데 뜨겁게 태양 마저 내려 쪼이는 날이다. 올 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으니,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인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나 나는 좀 짜증스럽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철면피라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나 하는 말을 하게 된다.   맹자는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는 척도로써 사람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진 마음 곧 ‘인(仁)’이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창피하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의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랑하는 마음과 남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예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시비(是非)를 가릴 줄 아는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이며, 인간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까닭이라 했다. 이러한 희미를 가진 인의예지의 인생을 최대로 실현하는 것을 맹자는 ‘군자도’라고 했다.   이 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직이란 대인관계에 있어서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기에 대해서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남의 눈과 남의 마음을 속이려면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자신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8절에는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한다. 사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남이 숨겨진 내 마음을 모르니, 속일 수도 있지만 자신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기상대의 일기예보가 오보인가 아니면 하늘이 사람을 속이는가. 이 시대 사람들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정직한 사회 같은데 어찌 보면 전부가 다 거짓말이고 속이는 세상이 되었는지 한탄스러울 뿐이다.    사람이 악한 꾀를 부리면 더 악해지고 솔직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도태된다. 정직한 사랑을 가진 자 만이 승리할 수 있다./엘림교회 목사·예장 개혁 혁신측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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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2-08-08
  • 코로나19 이후를 묻는다
       요즘 목회자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예배의 정상화를 묻곤 한다. 회복 여부를 따지기에는 아직 이른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다. 물론 모든 교회는 빠르면 부활주일부터 시작해 일제히 예배시간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려 복귀하였다.물론 예배형식은 여전히 팬데믹 시절의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5월부터 예배인원을 제한하지 않으며, 음식도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가 코로나19 상황변화에 따라 뉴노멀을 적용하는 것은 때 이른 듯하다. 예를 들어 아직 애찬을 나누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데, 지극히 조심스런 까닭은 안전에 대한 신중함이 아니었다. 지난 2년 이상 긴 휴지기가 교회의 주방봉사자들을 음식준비에 소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고 푸념한다.    사실 누구나 코로나 탓으로 돌리지만, 교회 안팎에서 자발적 봉사는 점점 쉽지 않은 일이다. 감염병 상황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일찌감치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였다.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은 교회가 부인하고 싶은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실토하게 했을 뿐이다. 대형교회든 중소교회든 상가교회든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임기응변 능력의 차이일 뿐이다.   돌아보면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대부분 종교는 사회적 재난 앞에서 참으로 무기력하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당국의 일방적 통제에 순종 또는 미세하게 반발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특히 재난 중에도 기존 예배형식에 집착했던 일부 교회의 행태는 사회적 비난을 불러왔다. 이 역시 초조함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교회는 ‘위드 코로나’를 말하지만, 방역당국은 ‘단계적 일상회복’을 주장한다. 이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한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이후를 맞아 어떤 ‘뉴 노멀’을 만들어 갈 것인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가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다.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여 버릴 것과 지킬 것을 분별하여 변화와 개혁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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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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