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8(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실시간뉴스

실시간 사랑의 실천 기사

  • 건전한 사회분위기를 만들자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스스로와 이웃을 염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럴 때 개인의 삶도 더욱 보람차며 우리 사회는 개혁되고 발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나라의 문제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언제나 개인의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야망이 늘 충돌하는 사회는 결국 이익집단을 양산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만연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허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덕목을 신장할 때 우리 사회에 정의와 사랑과 용서, 평등, 자유가 자라나게 될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고 그 분위기에 따라 좋고 그름을 분간하면서 국민의식이 생겨난다. 지도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그 분위기에 따라 선악을 판단한다. 사회의 올바른 분위기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본을 보일 때 실현 가능하다.    만일 우리나라에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없거나, 혹 있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시대적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가치들을 창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본받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한결 좋아질 것이다.   정치인이나 사회적 지도자들이 자기들만 옳다고 이념적 갈등을 만들어 내서는 결코 안 된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꾼이 되려고 노력해야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해서 멸사봉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경륜과 실천을 통해서 이웃에게 참된 모습을 보일 때 진정으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진정한 리더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더 큰 인물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인정하며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예장 개혁혁신측 총회장·엘림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17
  • 이웃사랑의 정체성 확립하자
      한국사회는 현재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퍼지면서 절대적 기준이 붕괴하고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으로 절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은 물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까지 허물어지고 있다. 이는 바벨탑을 쌓으며 자신의 일만 묵묵히 수행했던 이들과 비슷하게 보인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가치관이 팽배해지면서 기존의 절대가치가 모두 상대화되었고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쓰다 버리는 도구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다. IMF 이후 이러한 경향을 매서울 정도로 가속화되어 황금만능주의 사회로 한국을 변질시켰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교회 또한 방황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언론에서 조명되는 유명 목회자들의 언행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답지 못한 모습에서 교회다운 교회가 실종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구원보다 교인을 늘리고 헌금을 걷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는 천민자본주의적 사고로 이어져 교회 크기를 키우는 데에 온 힘을 쏟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기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핵심을 찌르는 논리에 기반하여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인류사랑이라는 대원칙 아래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해답을 깨닫고 그분께서 진정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자이심을 확인하게 된다.   급격한 가치변동의 시대 속에서 지금 자신의 정체성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버리고 간 제사장과 바리새인 같은 위선이 마음속에 있는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웃을 구했던 사마리아인 같은 신앙이 있는지 돌이켜보자.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비우자.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이 지녀야 할 참된 기준이다. 재산과 명예, 권력으로 인해 그리스도인 된 가치를 저버리지 말고 목사답고 교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교회가 이 사회의 등대가 되어 빛을 비추고 화평과 안식의 기수가 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정체성을 마음에 확립할 수 있다. /나사렛 증경 감독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11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위대한 문화건설을 위한 제언
      종종 우리는 우리나라가 문화의 나라요, 우리 국민이 문화 민족이라는 것을 자부하고 있다. 찬란한 과거의 유물과 유적들은 이것을 증명해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진위를 따져 보면  그 범위가 동아시아에 국한되었고 그 시대가 중세적인 데 머물고 말았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에게는 커다란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금 돌이켜볼 때 우리는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계 수준의 문화에 도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추월할 것을 목표로 매진해야 한다.   우선 문화의 건설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경제적 조건이 맞아야 하고 지리적으로 너무 춥거나 덥다는 악조건이 없어야 하며 전승이 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외부 조건에 너무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가장 주체적인 인간 문제가 망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문화의 운명은 인간의 사람됨에 달려 있다. 결국 문화란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품격은 나라를 만드는 인간의 품격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문화 건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문화를 건설하려면 먼저 인간들의 비전이 크고 그 생각의 규모가 커야 한다. 종래의 우리의 문화 현태는 그 스케일이 크지 못했다. 정치에서도 소국으로 자처하여 명맥을 유지했으니 큼직한 기백을 기약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위대하고 숭고한 비전에 불타는 일이 매우 적다. 근시안적으로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급급하여 천박한 잔재주를 부리기 일쑤인데 이것도 또한 소국민적인 소치에서 기인하단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남을 위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는 한 큰 인간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의 인격이란 남을 위해 주는 것만큼 그 영역이 커지게 마련이다. 내가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벌써 그 남이라는 사람이 남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내 인격은 이미 거기에 퍼진 것이다. /본지 전 발행인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0-02
  • 한국교단이 하나 되려면
      바벨론 포로 시절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네 개의 종파로 발전하였다. 대사제와 장로와 같은 귀족으로 이루어진 사두개파와 서기관과 율법학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바리새파,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졌다 생각하고 사막으로 나아가 분리된 삶을 살며 율법 연구에 몰두했던 에세네파, 그리고 폭력을 통해서라도 이방인을 몰아내고 유대 땅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열성당파가 있었다. 네 종파는 서로 자신들만이 의로운 공동체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각 종파는 예수님의 심판과 책망을 피할 수 없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많은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교단은 다양한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과 다툼으로 분리되었다. 분리의 원인은 신학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다양하지만 결국 자기주장으로 인해 화목하지 못한데 있다. 낮아짐을 통해 섬김의 도를 실현해야할 지도자들이 서로 높아지려는 명예욕도 분리의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결국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각 교단이 서로 독특한 신학과 사상을 주장하며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공동체라고 주장하지만 그 모든 주장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분열의 역사와 그것을 지켜보며 인내하던 주님께서 심판하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종파주의 역사는 그 성격에서 한국교회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열의 형식은 교단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네 종파로 이루어진 유대교가 주님의 심판의 받은 것처럼 각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교회도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면하기 위해서는 각 교단의 지도자들이 자기주장과 자기 명예를 내려놓고 용서와 화목의 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 어떤 이유도 교회의 분열과 다툼을 합리화할 수 없다. 오늘도 주님은 피 값으로 세운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는 자를 찾고 계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한영대 총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9-25
  • 그리스도의 사랑 나눔사역을 추진 - 모리아교회의 윤요셉목사
    ▲추석을 맞이하여 모리아교회는 쪽방촌을 찾아가 생필품을 나누고 음식을 대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했다.   생필품 전달·음식나눔 등 쪽방촌 독거노인 사역을 전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모리아교회의 윤요셉목사(사진)는 지난 11일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열고,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보듬는 사역을 진행했다.   이번 나눔행사는 추석 연휴를 맞아 쪽방에서 홀로 사는 500여명의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식자재를 비롯한 생필품을 전달하며 교회가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웃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윤목사는 “민족의 명절인 추석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사랑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미처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는 쪽방촌 독거노인들에게 추석은 고독한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며, “쪽방촌은 거주하는 이들은 재개발이 되지 않고 노후 된 건물이 밀집된 좁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사는 이들 대다수는 가족 없이 홀로 사는 70세 이상 노인이 많고 이외에도 가족 간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연으로 인해 사회 최하계층으로 떨어진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어 “반 평짜리 작은 쪽방에 있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가족을 대신할 이웃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다”며,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밥 한 끼 먹기 힘든 삶을 사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보듬고자 15년째 매년 명절(설, 추석)과 때마다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랑의 선물 나눔행사를 통해 쪽방촌 독거노인의 삶에 그리스도의 희망을 심어주는 데에 주력했다고 밝힌 윤목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쪽방촌 가정마다 생닭과 생만두, 과일, 쌀, 라면 등을 제공하고 교회에 함께 모여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이 외에도 매달 생일을 맞아하는 어른들을 함께 모아 합동으로 이들을 축하하고 생일선물 전달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뇌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본질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영혼구원에 목표로 쪽방촌 돌봄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한 윤목사는 “복음과 복지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계시는 70세 이상 쪽방촌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적으로는 의식주를 제공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며, “매해 성탄절과 신년, 부활, 추수감사절 등 교회절기와 더불어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을 맞이하면 독거노인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직접 찾아가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쪽방촌에서 홀로 사는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권면하면서 주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만큼 반드시 되돌려 주는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나아가고 있다”며,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오직 천국의 소망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소외계층인 이웃을 돌보고 인도하면서 이들 모두가 주님 앞에 서는 마지막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각지에 쪽방촌이 650여 곳이 있다고 말한 윤목사는 “전국에서 쪽방촌 사역에 함께하는 단체와 조사한 결과 쪽방촌에 있는 독거노인만 65만 명이 집계됐다”며, “반 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발을 모두 뻗지 못한 채 새우잠을 자는 이들이 많으며 많은 나이와 비위생적인 환경, 고르지 못한 식생활로 인해 병에 걸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위험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국교회가 이 사회가 하지 못하는 사랑 나눔사역에 힘을 모아 실천하기를 희망한다”며,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부여잡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함께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셨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됨으로서 이 사회가 복음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9-24
  •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신념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이 생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동물의 차원이고 인격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은 인간의 차원이다.    철학에서는 타 동물에 비교해서 인간을 다섯 가지로 정의를 했는데 그중에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즉 생각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에는 성경과 성령이 지배하며 상상할 수 없는 창의력과 영력이 문명과 역사를 이끌어 간다. 다음 인간을 호모 네간스 즉 무력과 권력, 재력과 패륜성의 유혹 앞에서 ‘아니오’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호모 네간스이다. 다음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 즉 희망하는 존재라고 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산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거듭나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라고 했다(베드로후서 1장 4절). 피타고라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가르쳐 주는 일’이라 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 아우렐리우스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아동문학가이자 교육가, 철학자인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양심은 영혼의 소리이고 탐욕은 육신의 소리’라고 했다. 다윗은 목동이었으나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따랐다. 다시 말해서 그는 세상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무릇 자기 자신의 재능과 경험, 지식으로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완전한 인간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타인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값없는 은총 그리고 누구보다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의 삶을 우리 모두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예장 합동선목총회 증경총회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9-09
  • 가족모임 기도가 필요하다
      내가 짐작하기에 주님기도 봉송한 분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을 맞아 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의미에서 작은 경험이나마 나누어서 서로 덕이 되게 하며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이랴란 의미에서 이글을 쓰는 것이다.   먼저 처음에 만 번 주님의 기도를 봉송한다고 할 때에 막연하였다. 어떻게 어느 세월에 만 번을 봉송한단 말인가? 그러나 해보니까 벌써 열 번을 넘고 백 번을 바라본다. 그렇구나 별것도 아닌 것을 하고 계속해서 봉송을 한다. 한 500번하였을 때 마음속에 확신이 왔다. 한가지 기도만 계속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내용은 생각지 않고 말만 외어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님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입으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했다 시원찮게 한 기도도 다 받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도를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주님의 마음을 느껴야 했다. 첫째는 창세 전에 하나님의 본체와 함께 가지셨던 그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들이 하나님 안에 있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의 첫마디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 그것뿐이었다. 이것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실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   다음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빨리 속히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귀신의 세계가 박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귀신들의 유혹 때문에 시험에 드는가? 시험이란 귀신의 유혹으로 우리가 끌려들어가서 잘못된 길로 행한다는 것이다. 이 땅은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주장되고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담아 놓기 위함이다. 주기도는 예수님을 여러분과 내 마음에 품고 인격화하는 매일의 작업이다.    /기독교학술원 명예이사장·반도중앙교회 원로목사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9-05
  •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 어록]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내려온 종교가 기독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탕자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 몰두하며 살았지만 그런 인간을 참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와서 진력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그리스도만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찾아온 도의 화신이라고 요한은 증언했다. 또한 그리스도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인간 중에서도 버림받고 소외된 인간들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환자·병자·빈자·창기·죄인·세금원 등 세간의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을 때, 그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가 종교 교사로서의 체면 유지도 못 한다고 비판했었다. 그때 그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으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죄인을 부르려고 세상에 왔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무관심할 수 없었지만, 자칭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사람들만은 구태여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기원 313년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 국가가 권력 구조의 주요한 부분이 되면서부터 이 방향은 흐려지고 스스로 귀족화하는 경향이 늘어 갔다. 그러나 바라건대 기독교회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방향을 되찾아 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은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우며 또 얼마나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는가. 살아야 하고 살고 싶어 발버둥치면서도 스스로 죽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이 극에 이른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그들을 한번 찾아 주지도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 고통의 얼마라도 분담하겠다는 마음도 없이 교회당 안에서 스스로 거룩하고 고고한 체하며 방관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광명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는 왔노라’고 그리스도 자신이 나사렛 회에서 첫 증언을 외쳤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면 기독교 무용론이 나올 까닭이 있을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무관심할 인사도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기독교가 진실로 세상을 구한다는 근본적인 뜻을 갖고 있다면, 구세주의 길을 역행하는 어리석음을 떠나 바른 방향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세간의 의혹과 방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요, 우리 기독교인이 걸어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본지 전 발행인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8-27
  • 사랑만이 인공지능을 이긴다
    ▲ 김철환목사   교회에는 두 기능이 있다. 제사장의 기능과 예언자의 기능이다. 제사장의 기능은 예배와 백성 돌봄이다. 그리고 예언자의 기능은 공의이다. 미래를 미리 보면서, 바르고 행복한 길로 이끌어 가는 기능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공부해야 한다. 미래를 공부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겉으로는 말하지 못해도, 속으로 불안해 하는 것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과연 교회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A.I. 즉 인공지능이 이끌어가는 가까운 미래에 교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몇 해 전 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다. 그리고 빠르게 프로 기사는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교회와 우리 인간은 4차 산업 속에서 설 공간은 있는가?  이 짧은 지면에 교회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다 말할 수는 없다. 교회가 더 성장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차 산업 속에서 교회는 더 필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채우지 못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째가 창의성이며 둘째는 감정의 공유이다. 감정의 공유란 사랑의 함께 나눔의 공간이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진정한 사랑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는 필요할 것이고, 다시금 부흥의 선물도 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교회가 물어야 하는 심각하고도 진지한 질문이 있다. 지금 교회는 ‘사랑이 넘쳐나는 사랑 공동체인가’라는 질문을 혹독하게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본질인 사랑의 회복 없이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가짜 사랑 아닌 진정한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자신이 죽고 남을 살리는 사랑, 철저하게 타자를 위해 존재하겠다는 결단적 사랑이 필요하다. 또다시 말해서 교회는 이 사랑 본질을 찾고 실천하는 노력을 늦지 않게 지금 해야 한다.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섬김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 좋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시대 4차 산업을 이기는 비밀은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인 교회는 분명 4차 산업도 이길 수 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드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장 34~35절)  이 말씀이 2,0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흔들림 없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요, 4차 산업 속에서도 진리이다.  본 필자는 시골에서 이 사랑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바로 스데반돌봄사역이다. 주제는 「우돌하치」이다. ‘우리가 돌보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신다’ 나 죽어 너 살리는 사랑의 돌봄만이 오는 교회의 희망이기에 외치고 있다. 또 이렇게 외친다. “예수님을 만나 작은 예수가 되어 예수를 돌본다” 사랑을 회복하여 4차 산업이 오히려 교회의 성장기회로 삼자. 사랑만이 인공지능, 4차 산업을 이긴다.  /작은예수들교회 목사·루터교 증경 총회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8-12
  •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 한영훈목사 최근에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로 인해 주변 국가들과 다양한 측면에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미 사드 문제로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여 관광을 비롯한 경제 제제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적대 국가인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하여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여 한국 경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군용기는 중국과 함께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들어와 독도 영공을 침범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불안정한 국제정세는 한국 사회를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하였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도전과 위협이 증가하는 시기에 한국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한국교회는 점증되는 강대국의 영향력에 직면하여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군사적 지배와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세금 납부를 강요한 로마의 경제적 압박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로마를 물리치려는 열성 당파의 과격한 정치, 군사적인 방식을 거절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여 로마의 경제적인 세금 정책에 면죄부를 주었다.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질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죄로부터 영혼을 구원하여 사단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 창조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국가의 백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 백성을 창조하는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열강들의 움직임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처럼 세상의 흐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유익한 방향으로 국제질서가 형성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기독교 복음이 세상에 확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혼 구원이 최우선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본질적인 문제인 만큼 선교적인 마인드로 세계 질서의 재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광복절이 열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해방을 넘어 죄와 사단의 영향 아래 고통받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출애굽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해 본다. 여기에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의 나아갈 영적인 길이 있다. /서울한영대 총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08-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