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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
      역사학계와 기독교 역사학계의 거장 이만열교수(사진)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코로나19’ 광풍 속에서 지난 달 15일에 300명의 의원이 선출됐다”며, “높은 투표율은 20대 국회가 보여준 무능과 갈등을 넘어서라는 격려일 것이다. 20대 국회는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로 표현되는 싸움판과 나태함을 겸했으나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는 강고했다. 새로 시작되는 국회는 20대 국회와 차별화하면서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다면 자신을 부각시킬 ‘한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한마디였으면 한다”며, “지금까지 의원들은 밖에서 들으면 ‘깜짝 놀랄 특권들을 스스로 만들고 누려’왔다. 국회의원이 국민과 동고동락하는 존재가 아니라 특권층으로 치부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특권이 합리적으로 차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에 관해 이교수는 “국회의원의 특권 중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며,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리면서 이 특권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또한 국회의 생산성이 저 모양인데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다한 급부는 의원직을 타락시키는 요인이라 지적된다. 특권내리기 작업이 21대에서 완성된다면 이는 새 국회를 탄생시킨 국민의 염원에도 부응,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려놓으면 국민을 감동시킨다”며, “21대 국회는 다수를 점한 여당이 국회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한 데서 출발한다. 국회운영 책임을 진 여당은 수십 년간 지적돼 온 ‘불필요하고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고 했다. 21대의 출발에 즈음하여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린다면, 국회의 품격은 올라갈 것이고, 국민은 존경과 찬사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만열교수는 최근에도 다양한 학술연구 발표와 강연활동을 비롯해 칼럼을 기고하고, 이교수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사회에 깊은 통찰력을 전하고 있다. 이에 한국사회와 한국교계 전반에서 이교수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06-04
  • 이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2019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제 7차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총회가 진행되었었다. 이 총회의 참석자들은 ‘지구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 평가에 대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지구 생태계의 생명다양성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는 인간의 농지 확대와 도시 개발, 해안 매립으로 인한 생물의 서식공간의 분절과 감소, 야생 동물의 밀렵과 희귀식물의 채취 등 불법 포획과 남획의 증가,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확산,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외래종의 침입, 그리고 기후변화를 지목하였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생명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여러 원인들의 영향을 더욱 심화시키는 가장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요인이라고 분석을 했다. 기후변화는 가뭄, 홍수, 폭염 등과 같은 기상 이변을 발생시키고, 해양의 산성도를 높이며, 해수면을 상승시켜 해안 토지의 침수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물들의 이동을 촉진시켜 새로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출현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우한시를 시작으로 전 세계 185개 국가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었고, 현재는 600만 명에 이르는 확진 환자가 발생하여 이 가운데 37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의 보고서가 미래의 상황에 대한 예측 보고서가 아니라 현재의 팬데믹의 현실을 정확히 기술한 보고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현재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위기는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더 큰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19년에 발표한 ‘전 지구 기후 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지난 5년을 인류의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시기’로 분석을 하였다. 이 보고서는 2019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후에 200여 년 동안 1.1도 상승하였는데 최근 5년 사이에 무려 0.2도가 상승하는 급격한 기후변화가 현재 진행되고 있으니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 기후변화 회의’에서는 세계 각국의 정부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나가자는 내용의 기후변화 협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2018년에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하며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을 현재의 45% 수준으로 감축해야한다는 IPCC의 특별보고서가 제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후변화의 시급성과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정부의 노력은 아직도 미진하기만 하다.   한국교회는 6월 첫째주일을 창조세계의 보전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환경주일로 정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제 37회를 맞는 2020년 환경주일의 주제를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 - 기후위기시대, 생명다양성을 지키는 교회’로 정하고 환경주일 연합예배를 드리며 ‘기후위기 비상사태, 한국교회는 작은 생명 하나까지 돌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선언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과 기후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볼 것을 요청하고, 한국교회가 창조세계를 온전히 돌보지 못한 괴오를 참회하며 생태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생태환경선교에 온 힘을 다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목소리에 한국교회는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목사
    • 오피니언
    • 정론
    2020-06-04
  • 사회에 본이 되는 교회가 되자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은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된 모양새다. 하지만 여전히 쿠팡 물류창고에서 다수 확진자가 발생했고, 한 교회의 성경강독 모임에서 다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다시금 교회를 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위기감이 사회적으로 조성되고 있고,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교계의 노력이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우리 한국교계는 교인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예배나 모임을 진행할 시 방역당국이 제시하는 위생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해야만 할 것이다. 최근 코로나 형국이 지속되면서 시민들의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때 우리 기독교인들이 솔선수범해서 방역에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유익이 아닌 죽음 이후의 영광까지 고려하며 인내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는 만큼 이런 위기 시에 기독교의 덕목이 사회에 본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해 자신의 이동 경로를 감추는 이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쿠팡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근로자들이 자가 격리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발생하게 될 금전적 손해로 인해 방역 당국에 협조를 하는 것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사회적 방역에 협조하지 못하는 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우리 교계는 이 두 경우에서 자유롭다. 우리 교계는 개인의 사생활 정보 유출로 인해 겪는 곤란한 점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은 세속문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므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 해 방역에 협조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이번 기회로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중심에 서길 기도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0-06-04
  • 환경 보호에 교회가 앞장 서자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부에서도 6월 5일 UN환경의 날과 궤를 같이하여 국민의 환경보전 의식 함양과 실천의 생활화를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환경문제는 특정 정부나 시민단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행성에서 사는 모든 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팬데믹 상태는 이 시대가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징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는 오늘의 환경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책임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인간은 자연과도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하나님은 진선미가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벽하고 가장 아름답게 만드셨다. 모든 피조물의 처음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으며, 특히 창조질서를 회복은 교회가 앞장서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로마서 8장 19~21절). 그렇기에 교회는 피조물을 위하여 환경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첫째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 한다. 아담이 죄를 범했으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어린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혀주심으로 말미암아 어린양과 하나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양이셨다. 이것이 최우선하는 창조질서 회복이 된다. 둘째 하나님은 이 일에 근거하여 믿는 이들을 의인이라 하셨다. 이 땅에 의인들이 많아질 때에 모든 피조물이 회복되는 그날이 가까워질 것이다. 셋째 마지막 때일수록 세월을 아껴야 한다. 이 말씀은 기회를 사라는 의미다.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이 땅에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질서 회복 곧 영혼의 회복과 함께 환경보호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0-06-04
  • 새로운 인간상을 위한 교육적 과제
      입시를 통하여 미래를 담당할 준재들을 받아들이는 대학이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서도 인간성 회복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산업 사회 건설을 위한 지도자·기술자·경제인·공무원 등등을 훈련하여 공급하며, 산업에 필요한 조사·연구·자료수집·구상·발명 등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 인간의 문제가 등한시되며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인간 상실의 상황에까지 밀려가게 된다. 그래서 근년에는 대학에서의 인간 형성의 문제가 대학 교육의 중요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어떠한 인간상을 지향할 것이냐의 문제도 함께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현대 문명 안에서는 인간이 전인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기계의 부품처럼 되어 개성이 없는 기능으로만 행동하고 있다는 것, 윤리적으로 중성화하여 다만 효능이나 이해관계로만 행동 기준을 찾는다는 것 등일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독자적인 초월성을 되찾지 못한다면 인간은 물욕에 사로잡힌 꼴이 되고 기계의 종이 되어 인간 상실의 비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중세의 인간상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지나간 일이어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성 상실의 현대를 솔직하게 시인함과 동시에 그 상황 안에서 살출 될 수 있는 최선의 인간상을 모색하고 그런 인간상의 창출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은 과학의 혜택에서 동떨어져 살 수가 없다. 그런데 과학이란 인종도, 국가도, 사상도, 종교도 편파적인 행위를 할 수 없는 공통 또는 초월된 보편성을 지닌다. 과학의 기본 법칙이나 그 활용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성도 진실과 정직의 토대 위에서 인간성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모색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기술의 세계에 있어서는 효능이 매우 중요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   현대 인간이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그 지식이 세밀한 분과적 성질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 이외의 모든 다른 인간들이 공동체적으로 나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지킬 수 잇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학에서도 현대의 인간 소외와 인간 상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형성’과 ‘새 인간상’ 모색에 진지한 관심을 지녀야 할 줄로 안다.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20-06-0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1]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 - 헤밍웨이의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
      창세기 2장 10~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을 이루고 사방으로 흘러가게 함으로써 인간이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셨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요 소설가 헤밍웨이(1899~1961)는 단편소설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 1~2부에서 닉 아담스가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정신적 쇼크로 쇠약해졌지만, 자연 가운데 강에서, 흥미 있게도, 송어잡이를 함으로써 심신이 회복되고 삶의 구원을 누리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기(송어)는 초기 교회에서 기독교의 상징이었다. 예수님께서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내용과 관계가 있다. “두개의 큰 심장 가진 강”은 상징적으로 고기(음식)의 형태로 생명(삶)을 주고 그리고 구속(치유)을 해주기 때문이다.   닉 아담스는 제일차 세계대전에서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환멸을 느껴, 집으로 돌아와서 북 미시간으로 캠프여행을 떠난다. 그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서, 자연(숲속)속에서 천막을 치고, 고기를 잡을 준비를 함으로써, 부상(어떤 부상인지 말하지 않음)과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헤어 나와 평화와 균현감각을 회복하려고 한다.    숲으로 가는 도중에, 닉은 폐허가 되고, 파괴되고, 잿더미가 된 미시간 주의 “세니” 도시를 통과하게 된다. 도시는 없어지고, 남은 것은 철로와 황폐한 풍경뿐이었다. 황폐한 세니 도시는 닉으로 하여금 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 입게 된 육체적 부상과 파괴된 황폐함과 전쟁 이후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정신적인 갈등과 연결 지어 생각게 한다.   닉은 “내가 만일 부상을 당하여 미쳐버려서 충격적인 악몽에 사로잡히면 어떡하지?”하고 생각한다. 허리까지 오는 습지에서 공격당하고 공격하는 전투에서, 닉은 부상을 당한 후 신고 있는 두 장화가 따뜻한 피로 채워져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기억한다. 닉은 황폐해진 땅에서 메뚜기들이 검댕이로 덥혀 있는 것을 보고서, 닉은 자기 자신이 전쟁에서 검댕으로 덥혀져 있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검게 타버려 검댕이 투성의 세니 도시는 전쟁의 흉악함과 닉의 정신과 정서에 끼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나타낸다.   닉은 타버리고 파괴된 세니 도시를 뒤로하고서,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의 풍요롭고 푸르고 기름진 강둑을 바라보았다. 도시를 지나 강위의 다리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강은 시간과 무시간을 상징하고, 치료와 삶과 죽음의 자연적인 순환을 상징한다.   닉은 다리위에 멈추어 서서, 다리 저 아래 있는 강과 송어를 바라보았다. 닉은 송어가 빠르게 흐르는 깊은 강물 속에서 건실하게 떠 있는 것을 보고서,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의기양양함을 느꼈으며 심장이 강해짐을 느꼈다. 숲속에서, 닉은 예배처소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늘어선 작은 숲속에서 잠을 잤다. 그 숲에서 닉은 전쟁 이후 처음으로 잠을 잘 잤다. 그 곳에서 닉은 치료받기 시작한 것이다. 예배처소처럼 보이는 숲속은 종교적인 차원의 평화와 안정을 상징한다.   닉은 푸른 초장이 있는 곳에 캠프를 세웠다. 땅을 고르고, 말뚝을 박고, 천으로 덮었다. 이 모든 것은 닉을 행복하게 했다. 닉은 돼지고기, 콩, 스파게티가 혼합된 깡통음식으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단순한 캠프의 삶은 닉으로 하여금 스트레스와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했다.    시편 23편 2절에서 다윗은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오피니언
    • 칼럼
    2020-06-04
  • 루터대 전 총장 박영일목사
      “지난 2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회관을 방문하고, 목회자·평신도 교육원 사역에 관한 조언을 받았다”며, “이번 방문은 동 교단에서 총회교육원 사역 활성화를 목표로 구체적인 교육원 운영 사례와 계획안 설립에 앞서 모범적으로 교육원을 운영 중인 예장 통합측 총회 훈련원원장 박기철목사의 운영 방법과 과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준비됐다”고 말하는 루터대 전 총장 박영일목사(사진).   이날 방문을 통해 발족 단계에 있는 동 교단의 총회교육원 사역 활성화 방향 설정을 위한 조언을 받은 박목사는 “건설적인 교육원 운영을 통한 체계적인 목회자·교역자 역량 강화를 꾀하기로 했다”며, “중앙교회 최주훈목사와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이근복원장 등이 예장 통합측 총회훈련원 김명옥원감을 만나 총회훈련원 사역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총회 차원의 지원과 이를 통한 지역 단위의 체계적인 네트워크 교육망 등을 이야기 나누었다. 또한 목회자·장로·전도사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계속교육 운영 방법 등을 소개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박목사는 “교단에서 목회자들 재충전의 필요성을 느껴 총회 차원의 지원을 받아 독립적인 교육원을 출발하게 됐다”며, “교단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지도자 계속교육은 모두의 과제이자 제일 중요한 부분인 듯하다. 우리 교단에서 발족한 총회교육원은 이제 걸음마를 떼는 단계에 있다. 성공적으로 교육원을 운영 중인 다른 교단의 현황을 알아보고 건설적인 교육원 운영을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06-01
  • [실로암] 뉴 노멀 시대의 놀이 인식
      네덜란드의 역사가 겸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코앞에 둔 1938년 인간의 정신적 창조 행위로서 나타나는 유희 활동과 인간 본질의 연결성을 고찰한 명저 〈호모 루덴스〉를 공개했다. 그가 이야기하길 예부터 인간의 정신은 동물을 사냥하고 씨를 뿌리며 철을 두드리는 생산 활동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이루는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아이들처럼 뛰놀며 몸과 마음을 소진하는, 물리 세계에 아무런 생산성을 지니지 않는 잉여 활동 속에서 창발적 사고를 성취하는 힘을 얻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데에만 치중하기보다 순간순간 유희 활동을 통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저미는 즐거움이란 감정을 사고의 확장을 이끄는 중요한 동인으로 여긴 것이다.   전 세계가 전쟁의 암운으로 드리우던 시절 발표된 하위징아의 저서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짚어볼 수 있는 유익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런 연유였는지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나, 로베르토 베니니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 타이카 와이티티감독의 「조조 래빗」 등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미디어 콘텐츠를 보면 마냥 우울하거나 비참함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작지만 아름다운 선행과 유머,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자그만 미소와 웃음 그리고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간간이 보여 준다. 이를 통해 거스를 수 없을 듯한 거대한 힘 앞에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 의지를 우리에게 비친다.   이렇듯 비극의 역사 안에는 인간은 거기에 절망하지 않고 웃음으로서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무수한 시도가 기록됐다. 그러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시지 않은 지금 WHO에서 집 안에 머물길 권하면서 독서와 음악, 영화와 함께 비디오 게임을 권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본다.   코로나19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생활상이 더는 존재할 수 없으리라 예측하고 있다. 오프라인을 통해 누군가 실제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된 지금 자택 근무가 사회적으로 큰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듯, 놀거리를 향유하기 위한 인간 본연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라도 비디오 게임을 중심으로 하는 놀거리에 관한 사회적 인식의 재고가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회사와 학교, 음식점과 클럽, 심지어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오프라인 모임을 탈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온라인 환경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유희를 제공하며 젊은이들에게 위기를 극복할 힘을 주는 비디오 게임계를 향한 따가운 눈초리를 코로나19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을 사회적으로 한 명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부모나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경제적 생산 활동의 도구로 키워내는 데에 혈안을 내는 우리네 사회에서 타인의 인격을 인정하고 드높이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할 모임인 교회가 이를  선도해야 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의 것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며 존중하셨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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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6-01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3)
      여러분 !!!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평가는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평가와 우리가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상처받은 말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라고 평가해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평가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본문 43장 7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해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로 하십니다. 나의 나된 존재의 목적은 영광에서 우리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1) 주님이 오신 목적을 이루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0 : 10 “ ...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운동 / 구령운동 / 치유운동입니다.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운동 예수 믿는 백성이 거의 다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을 퇴치하는 길은 예수 운동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잘 살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는 일입니다. 살전 5:23 “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네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것은 정신건강을 영적건강과 똑같이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건강과 마음과 정신 건강, 몸의 건강을 위해 사역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배롭고 존귀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생명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치유운동이요, 정신건강의 회복도 치유운동입니다. 이 말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창조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너의 영광을 위한 치유상담사역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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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1
  • [목회자 칼럼] ‘실언’의 위기에서
      “권사님 때문일지도 몰라요, 아니 권사님 때문이에요” 이렇게 속으로 뇌까리고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밖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속회가 잘 모이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권사님의 푸념은 그 속의 교인님들의 근황을 지나 당신의 근황을 들러 어느덧 끝이 보이지 않는 자랑으로 이어진다. 긴 얘기 끝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그 많은 내용들을 형식적으로나마 간증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누군가의 자랑이 내 자랑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속이 좁은 탓도 있겠지만 자랑하는 사람의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몇몇 자랑거리를 움켜쥐고 힘겹게 생을 견뎌내는 중이시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니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 나는 내가 비껴지나온 그 어떤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수님이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이나 죄를 사해 주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주었고 예수님을 죽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로 가르쳐주셨다. 같이 죽자는 말씀이신가? 주기도문은 놀라운 선언이 담긴 부름으로 시작한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불렀기 때문에 족보가 이상하다는 그야말로 이상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교인들이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처럼 여겼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형제고 자매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가족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이만큼 잘 드러내주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 좋은 말이 지금의 교회에서는 직분을 받지 못한 대상을 부르는 어색한 부름이 되어버린 게 애석하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까지도 예수님은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이 바알세불, 귀신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는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나라도, 사탄도 스스로 분쟁하면 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던 예수님의 가족이 밖에서 예수님을 불렀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가족이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성경에서 미쳤거나 바알세불을 지폈다는, 예수님에 대한 지독한 오해를 만들고 전달하는 자들로 강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   자본주의의 산업사회에서 가족은 부와 그 대물림을 꿈꾸는 집단이기주의의 단위가 되어버렸다. 성직자들은 잘못된 축복관 등으로 그 흐름을 부추기는 무리가 되고 있다. 부가 축복과 신앙의 척도가 되니 힘겨운 여염집 살림을 꾸려나가는 대부분의 교인님들은 누군가의 간증 같은 자랑을 듣고만 있어야한다. 비교가 강제되는 순간은 교회가 스스로 분쟁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선포되어야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고, 가족으로서의 사명도 감당 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교인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선포할 수 있어야한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은 많은 오해에 노출된다. 개독교 정도 얘기 나왔으면 더 이상 어떠한 설명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개교회들이 그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만 온 정신과 시간과 물질을 쏟는 형국이라면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결코 걷어낼 수 없다. 소멸해갈 뿐이다. 아무리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온갖 노력을 쏟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와 내 가족에게 그리고 교회와 세계에 더 좋다는 것을 믿는다면, 더 믿자. /산돌교회 교육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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