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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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학교 학원선교사 권요한선교사
      “서울대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발표된 서울대 인권헌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매우 유사해 동성애 인권독재에 서울대가 앞장선다는 점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권요한선교사(사진).   대한민국 지성인의 요람이라 불리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는 학원 선교사 사역에 매진하고 있는 권선교사는 기독교 윤리를 기반으로 이웃사랑 실천과 복음 가치 전파를 위한 활동에 나서며 신앙과 실천을 아우르는 자세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최근 인권헌장이 발표됨에 따라 젠더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왜곡된 윤리관이 서울대를 시작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계한 권선교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을 명목으로 성해방의 젠더이데올로기 확산에 깊이 개입하는 등 서울대 인권센터의 과도한 정치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며, “그간 서울대 인권센터는 총학생회를 앞세워 동성성애 인권가이드라인을 학칙화하려다가 학내외 구성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대 인권헌장에서 주장하는 바 젠더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가 국제인권규범과 선진국의 법규범으로 확립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유엔 총회는 젠더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보편적 가치화하는 사회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20호를 거부하였고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라는 것도 유엔 회원국의 대표성도 없으며 국내 법적 구속력도 없는데 이를 국제법 규범으로 사실화하는 것은 사실을 기만하려드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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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10-23
  • 다큐멘터리 ‘이감’ 이관택감독
      “비전향 장기수란 한국전쟁 때부터 사상범으로 옥살이를 하면서도 강요된 사상 전환 요구에 응하지 않은 분들을 지칭한다”며, “군부독재시절부터 존재하던 ‘사회안전법’이 1989년에 폐지되자, 이때부터 비전향 장기수들이 출소하기 시작했다. ‘사회안전법’이란 비전향 장기수들이 자신들의 형량을 모두 채워도 청주보호감호소에 2년간 투옥시킬 수 있는 법으로, 이 법은 2년의 연장 수감기간을 또다시 무기한 연장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고 말하는 비전향 장기수 관련 다큐멘터리 ‘이감’ 이관택감독(사진).   이감독은 “이분들이 김대중대통령 시절인 1999년 모두 출소하게 됐다. 하지만 이분들은 출소 후에도 여전히 감옥과 같은 삶을 사시게 된다. 즉 좁은 감옥에서 넓은 감옥으로 이감된 것이다”면서 “이분들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 이분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보안관찰법’에 따라 2명의 보호관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한다. 평생을 당사자만이 아니라 연좌제로 인해 모든 가족들까지 함께 고통받았는데, 이들의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감독은 “이제 비전향 장기수분들의 연세가 매우 많으셔서 살아생전에 이들과 관련된 역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고 싶었다”며, “다큐멘터리 ‘이감’은 43년간 옥살이를 하며 현존하는 최장기수이신 안학섭선생을 비롯해 3분의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이분들이 겪었던 극심한 고통과 여전히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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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10-23
  • [실로암] 코로나19와 신앙인의 삶의 현장
      어느 날 갑자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균이 번지기 시작하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구촌 만백성이 몸살을 앓고 있다. 14~17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이 유럽인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한다. 그 후 50년대 전후에는 가난과 불결한 위생상태에서 마마, 한센병, 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대개 역병이나 자연재해, 재앙은 자연발생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성경에서는 이런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역병을 보내시니 이스라엘 중에서 칠만 명이 쓰러지니라”(역대상 21장 14절) “그들의 강들과 큰물을 피로 변하게 하셔서 그들이 마실 수 없게 하셨으며”(시편 78편 44절). 이를 두고 설교자마다 그 해석을 달리하고 있으니 평신도로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인과응보의 징계나 하나님의 심판이라기보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뜻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깨달음을 주신 말씀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은 죄대로 벌하시면 살아남을 수 없지 않은가. 신앙인이든 불신자이든 이런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요, 창조주 하나님 뜻과 무관하지도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쟁 풍우 우주운행 생태계 형성 생사화복 등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도 이를 조절할 능력이 없다. 결국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말씀이 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장 13~14절)고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여러 재앙이 유행할 때라도 겸손히 하나님만 바라보면 세상을 원상회복 시켜주신다는 말씀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 결국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함이 해결책이요 안정을 되찾는 길이다.   코로나19가 지구촌 전 세계에 창궐하였으니 어디로 피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병상에 누었을 때 쾌유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병마에 아파하는 같은 병실의 불신자도 중보기도를 원한다. 기도가 양약이다. 의인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일으켜 주신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 병든 자가 있느냐 너희는 기도할 것이라 알려주셨다.   온라인 예배는 은혜가 안 된다고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할 순 없다.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시가지를 볼 수 있다. 좌절하거나 될 대로 되라 살면 안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9장 23절) 하셨다.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든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이 말씀을 상고함이 유익하리라. 코로나 역병에 시달리고 있는 전 세계인에게 향한 소망을 주는 말씀이다.   의학계에서는 예방 백신,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연구의 결실로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해 본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기필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멸절되어 세계 만민이 할렐루야 승리의 개선가를 높이 부를 날이 속히 찾아올 것을 믿는다. 누구의 지시 명령에 따른다기보다 내 생명 내 가족 내 이웃 내 나라의 건강을 위하여 스스로 방역활동 안전수칙 지키기에 협심 노력하면 곧 이 역병도 종식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부르실 때까지 활기차게 나다니고 싶다. 병들어 쓰라린 몸이 안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기독교인은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곧 복이다. 신실한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세워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숭의교회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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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0-23
  • [목회자 칼럼] ‘씸하트 토라’, ‘토라의 기쁨’
      초막절 축제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신신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매 칠 년째 되는 해는 면제년(쉐미타)이다. 빚을 면제해주는 해라는 뜻이다. 빚에 몰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7년마다 새로운 기회를 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율법은 가난한 이들의 곤경을 모른 척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들을 냉대하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아야 하고,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7년이 지나도 갚지 못하면 면제해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세상의 불공정과 불공평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 보더라도 아주 급진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품고 살 때 그들의 산업에 복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나는 득실을 따지지 말고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살았으면 좋겠다.   면제년의 초막절이 되면 제사장들은 온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해야 했다. 외국인들도 그 말씀을 들어야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을 낭독하는 것을 ‘씸하트 토라’라고 하는 데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축제 기간 중에 그들은 오경을 한 번 다 읽고, 다시 한번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당에 보관된 토라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고, 토라와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언약의 백성이라는 기쁨의 표현이다.   여러 해 전 제가 처음 이스라엘에 갔던 날이 마침 초막절 마지막 날이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있던 타바 국경 검문소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되어 이스라엘 입국이 예정보다 여러 시간 지체되었다. 그 때문에 11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긴장 속에 시간을 보냈던 터라 몹시 고단했다. 그런데 바깥이 너무 소란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원형을 이룬 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때가 초막절 축제의 끝자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토라의 기쁨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의식이 거행됨에도 불구하고 초막절 축제의 원뜻은 곤고했던 시기 곧 광야를 떠돌던 때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 힘겨웠던 시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그 시간을 돌아보며 삶을 성찰하라는 것이다.   삶의 형편이 나아지면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고,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삶의 도구를 바꾸는 순간 하나님조차 바꾸는 게 인간이라는 말도 경험에 바탕을 둔 진실임을 우리는 잘 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옛말도 똑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구질구질하던 기억들을 어떻게든 지우려 한다. 그러나 그런 기억을 말끔히 지우는 순간 우리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보본반시’ 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도 오만의 강물에 떠밀리지 않으려면 가끔 초막을 지어야 한다. 뒷마당에는 짓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슴에 초막을 짓고 그 속에 가끔 머물러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작은지 자꾸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머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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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0-23
  • [향유옥합] 생명에 깃든 주님의 사랑 (1)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늘날만큼 물질과 문화의 풍요를 많은 이들이 누리는 시대는 흔치 않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나 서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재즈 시대 등 특정 시대와 지역에선 지금보다 더욱 화려하게 인류 문화의 빛을 발한 듯한 사례가 간혹 존재한다. 하지만 그믐달 은하수로 가득 찬 밤하늘보다 찬란하게 반짝이던 무대 뒤편엔 누구도 보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피 흘리는 이들의 아픔이 서려 있었다. 이러한 아픔은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도 정도와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고통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은 채 더더욱 음지에 숨어들어 있다. 그리고 고통과 절망에 절규하는 이들의 손을 붙잡는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양 떼, 기독교인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노예를 자유롭게 하고 아동 노동 반대를 외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이들을 찾아가 위로를 나누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역사 속에서 켜켜이 실천해 주님의 사랑을 현실에서 꽃피우며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시고 어여쁘게 여기신 생명의 고결함을 드높였다.   비록 교회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비극의 반복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복음을 붙잡으며 바른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들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말씀을 머리로만, 지성으로만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그저 앞에 고개를 조아리지만 않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경고하고 이 속에서 임재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했다. 순종함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한 사무엘의 신앙고백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참된 의미가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도 순종의 자세일 테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도 순종의 방법 중 하나일 터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순종에 있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고된 채찍질로 살갗이 찢기고 피부가 넝마주이가 될 때까지 참으신 예수님의 모습, 자신이 못 박혀 죽을 십자가를 친히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걸음,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 요한을 한가족으로 이으신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말씀하시며 이웃에게 사랑과 자애를 전하신 예수님 그 자체를 기억하는 일이 그것이다.   무릇 우리는 생명이 하나님의 숨결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라 믿는다. 모든 생명이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연원이 있다고 믿는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모든 생명이 궁극적으로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저에 깔고 있다. 생물의 피를 마시지 말라고 기록된 말씀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한다고 기록된 말씀(창세기 9장 4절, 시 94편 21절)은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하나님의 율법으로의 기능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권자로서 우리 위에서 거하시고 우리 곁에 함께하시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웃을 동등한 형제자매이자 가족으로 대하겠다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자 믿음의 다짐이라 볼 수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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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0-23
  • 건강관리와 교회 부흥사역에 매진 - 한기총 증경회장 지덕 목사
      평생을 목회현장에서 헌신한 강남제일교회 지 덕목사(사진)는 자신의 목회관에 관해 “목회자 스스로 자기도취에 빠질 때가 있다. 개별 목회만이 아니라 연합사역을 할 때 역시 그렇다. 목회는 하나님의 양을 위탁받아 단지 주님의 수종을 드는 일인데 목회자 스스로 자신의 사역으로 생각하게 되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이점을 주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면서 “우리는 먼저 말씀과 기도와 주의 사랑에 따라 주께 의지해야 한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주님과 끊어지고 하나님과 동떨어지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2020년을 돌아보며 지목사는 “한기총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광화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전광훈목사님께 많은 권면을 드렸다. 하지만 전목사님과 나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나는 전목사님께서 성경을 해석하실 때 실수가 있었다고 판단했고, 이에 대해 수차례 권면해 드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다음세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지목사는 “그동안 부흥회를 3,000여 회 인도했고, 그러면서 부흥회를 통해 얻게 되는 순간의 은혜에 감동받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목회를 하면 할수록 무엇보다도 말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부딪혀서 우리 마음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야 우리의 신앙도 오래 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해 “기독교 방송이나 여러 온라인 매체를 통해 교인들이 다양한 설교를 접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설교가 점점 더 그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말씀을 듣는 것 모두 너무나 쉬워져 예배와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드리는 그 정성이 소원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예배와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지목사는 “건강관리는 백세 시대인 만큼 철저히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기에 살아야 할 만큼 살아야 한다. 최근에는 건강관리 차원에서 학교를 다니듯 시간 맞춰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또 여전히 여러 부흥회 등에 초청되어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3시간 말씀을 전하면 30시간을 하는 것 같이 큰 유익이 된다. 사역 후 너무 피곤하지만 또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10-22
  • 한국교회가 사회를 선도하길 기대한다
    한국 개신교는 이제 이념적이고 정쟁적인 문제들이 아닌 우리가 대면해 있는 실질적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대면한 실질적 문제 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기후문제란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탄소배출량 저감의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는 만큼 우리는 유럽연합의 그린딜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1990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 규모가 61%나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23% 줄었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의 결과였다. 이에 더해 유럽연합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2050년까지 유럽연합 내에서 탄소 배출 제로라는 더욱 강력한 목표를 담은 그린딜에 정책을 내놓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언젠가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깨달았고,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구조에서 재생 에너지 환경으로 전환 작업을 착수했다. 유럽연합의 그린딜은 이러한 에너지전환의 일환으로 단순한 저탄소 정책만이 아니라, ‘화석연료 이후’ 시대의 새로운 경제정책임을 인지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보수 개신교의 반-정부 성향으로 인해, 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사안은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억지를 부리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개신교의 문제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반대 등 여전히 이념·사상적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후문제는 그 시급성에서 다른 문제들과는 그 수준이 다르다. 기후문제를 인류가 되돌릴 수 있는 임계점이 7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류가 기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찾아올 재능의 형태와 그 규모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교회가 기후문제와 관련한 사회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우리 시민의식을 선도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사설
    2020-10-22
  • 한국교회의 재탄생이 시급하다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됐다. 그렇지만 교회는 아직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교회의 생명은 교인 간의 사귐에 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일서 1장 3절).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으로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됐다. 특히 거듭난 교인 간의 교제는 십자가 밑에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관계이자 사랑이다. 그러나 코로나 장기화로 교회가 곤고한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교회가 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장 17절, 하박국 2장 4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5대 원리인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강조하면서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선지자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먼저는 갈대아인들에 의해 이스라엘에게, 다음으로 열국에 의해 갈대아인들에게 행하여 졌음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그분의 선민의 집에서 심판하였으며(베드로전서 4장 17절).   오늘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코로나와 사람들의 교만으로 완악하게 된 것은 교인들이 초대교회의 믿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심판의 모습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는 근원과 기초라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거듭남의 근원이요 동기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거듭남의 수단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의는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이와 같은 견고하고 확고 부동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보좌의 기초(시편 89장 14절)이기 때문이다. 그 기초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로마서 14장 17절). 더욱이 하나님의 복음 안에 계시 되는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따라서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종교개혁의 근본을 오늘에서 철저하게 살아내는 길이 한국교회의 재탄생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0-10-22
  • 교회가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자 (3)
      우리가 귀국한 후에도 큰 따님은 내게 계속해서 연락을 주셔서 고국을 온 가족이 방문했을 때 그 댁 외아들이 우리 집에 묵으며 하룻밤 자고 우리 큰아들이 친구가 되어 좋은 시간을 보냈고 친정어머니는 고국에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되어 주님 품에 안기셨다. 큰 따님은 지금도 내게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보내오고 계시고 최근에 성당에서 영세를 받으셨다.   돌이켜보면 외로운 유학시절 3년간 두 모녀의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 자신도 마음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상담학 시간에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분노’로 주제를 정해서 친구가 내가 돌본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발표해서 둘이 A학점도 받았고 따님이 우리 가족이 고국에 돌아간다니까 고급 그릇도 선물로 주셨다.   20여 년만에 모녀 돌봄 이야기를 <기독교신문>의 ‘향유옥합’ 칼럼에 나누게 되어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며 공감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돌봄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나와 김철환목사님에게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지금 ‘스데반 돌봄 사역’을 교재를 바인더에서 4권의 책으로 출판하여 진행하고 있다.   ‘천하보다 한 영혼이 더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한 영혼이 주님 앞에 나와서 천국 백성으로 살면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사노라면 긴 신앙의 여정에서 방황하며 주저앉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돌봄을 시작해서 종결에 이르기까지 그 영혼을 돌보는 것이 결코 쉽지않으나, 돌봄의 열매인 분들이 주님 믿는 신앙으로 꿋꿋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있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의 작은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 많건만 습관에 젖어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타성에 젖은 봉사만 하지 않은가? 반문해본다. 물론 교회 안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역 하나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역이 없고 개인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가 다르다.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 세계에서 대한 민국 백성이 된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반면에 5년만에 자살율 9.7% 증가세로 전환…… 다시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 증가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10대~30대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계획된 자살도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서 집 안에 갇혀 있는 어르신을 위해서 나라에서 요양보호사를 양성해서 돌보아 주고 있다. 요양보호를 받지못하는 고독한 어르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찾아가서 말 벗이 되어주면 상처받아 아픈 영혼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회복되고 치유되리라 확신한다.   새벽마다 이 나라에 영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병든 분들이 많아서 치유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시선과 손길이 보이는 면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면까지 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며 ‘교회가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오직 주님께만 영광!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실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 지니라”(사도행전 20장 35절). /스데반돌봄사역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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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2
  • 정도를 걷는 개혁의 정신 회복하자
      두 번째 밀레니엄을 앞두고 라이프지는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100가지와 인물 100인을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쿠텐베르크의 성경인쇄와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에 이어 세 번째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순위에 들어있다. 미국 문화권에서 선정한 것이기에 다른 문화권의 시각에서 보면 선정과 순위에 다소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조사하던지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이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과 사건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종교개혁은 어느새 우리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천 년의 사건이 되어 있는 것이다.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이다. 종교개혁은 과거에 지나간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진행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어야 한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아 종교개혁의 본질과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 오늘의 개혁을 이어갈 우리의 마음을 되짚어 보자.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본질에로의 회복이다. 개혁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은 원래로의 회복, 원래적 진리에로의 회귀가 종교개혁의 본질이다. 15세기 가톨릭은 기독교의 본질을 무수히 왜곡시켜 놓았다. 루터의 외침은 이 왜곡으로부터 개혁하여 원래의 본질적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15세기 로마 교황권은 어떻게 기독교 진리를 왜곡시켜 놓았는가?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장 유명한 것이 면죄부이다. 루터의 95개 논제 중 27조는 이렇게 말한다. ‘헌금함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면죄부란 간단히 말해서 세속적 돈으로 신앙적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구속의 사건은 아무 의미없는 것이 되고 만다. 또 95개 논제의 79조는 말한다. ‘교황이 사용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모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 교황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모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한참이나 왜곡하고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95개 논제 10조에는 이런 언급까지 있다. ‘임종을 맞은 자에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교황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돈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대리했다. 이런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고 참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바른 정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세계는 어떠한가? 인간적인 것들이, 세속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이 교리, 신학, 목사, 사람, 돈, 권세, 교권일지라도 하나님보다 상위 개념에 둔다면 그곳이 개혁의 자리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사회를 개혁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비난받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혁의 정신을 망각하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자기의 이익추구에만 골몰하고 있을 때 이제는 교회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부단스런 짐이 되고있지는 않는지 우리 교계가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무장하고 새로운 교회 공동체 형성을 통해 한국교회가 상실했던 사회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은 어떤가? 참 진리의 가치관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가? 정도가 아닌 꼼수와 술수가 지혜로운 처세술로 용납되고 있지는 않은가?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참 진리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많은 이익이 있더라도 사도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참 진리가 있는 정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제의 종교개혁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이다. /루터회 전 총회장, 새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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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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