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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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3)
      트립토판이 함유된 식사는 세로토닌 신경을 활성화시킨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의 전구 물질인데 이는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기 때문에 음식물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바나나에는 세로토닌의 원재료인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이 함유되어 있으며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에도 많다. 또한 콩식품에도 트립토판이 많이 함유 돼있는데, 특히 청국장, 두부(두유), 된장, 간장, 나또 등의 식품에 함유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미역 달걀 등을 먹는 게 좋다. 뇌 안에 트립토판이 쉽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쌀, 국수, 빵 등의 탄수화물 중심의식사가 필요하다. 이는 세로토닌의 합성을 활발하게 만들고, 세로토닌 신경을 충분하게 기능하기 위함이다. 뇌 속에서 세로토닌의 합성을 보조하는 영양분은 비타민 B6이다. 나이아신, 마그네슘은 연어, 꽁치, 정어리, 고등어, 도미, 청어, 참치, 소의 간 등에 있다.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아침에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20분정도 햇빛을 쬐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이는 세로토닌 신경을 활성화 시켜 기분 좋은 생활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출퇴근 할 때나 통학할 때, 전철역이나 회사, 학교까지 걸어가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세로토닌은 낮에만 분비된다. 밤낮 구분 없이 생활하는 것은 세로토닌 신경에 좋은 환경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아침 햇살을 받고, 낮에 활동 하는 것이 세로토닌 신경을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한다. 2) 아침햇빛을 쬔지 15시간 후면 송과체에서 멜로토닌을 분비케하여 잠을 자게한다. 우리 몸의 체내시계는 아침햇살을 받으면 전원이 켜진다. 햇볕을 받으면 시신경은 시교차상핵이라는 체내시계에 영향을 주어 송과체라는 조직과 뇌 중앙의 뇌간 뒤에 있는 뇌 간망상체에 일상생활의 스위치를 켜게 된다. 송과체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분비 하도록 하며, 멜라토닌은 일반적으로 시계호르몬이라 불리는데 햇빛을 쬔지 15시간 후에 밤에 분비 되여 사람을 잠자게 만든다. 또한 아침에 걷는 것은 뇌간망상체를 자극하는 매우 효과적인 동작이다. 뇌에 자극을 준다고 머리를 때려서는 안된다. 뇌간망상체는 온몸에서 전해오는 자극을 받아내는 곳이며 발과 턱으로 들어오는 자극, 빛, 냄새, 소리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샤워를 하거나 큰소리로 책을 읽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본문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빛은 치유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곧 세상의 치유자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치유자입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밝히고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사람은 밝히는 치유자입니다. 사람들의 상처만 마음을 고치는 치유자입니다. 부모심정에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며” △사 61:1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자로 불러 주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치유자입니다. △우리는 근심에 쌓인 사람을 치유라는 사람이요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쌓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분노의 감정의 점철된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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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9-10-18
  • 자리를 지키는 자
      사람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리, 경제인은 경제인의 자리, 교수는 교수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 목사는 목사의 자리, 승려, 신부 등 종교지도자는 종교지도자의 자리, 교인은 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국민은 국민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작금의 현 정국을 바라보면 서글픔을 넘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난무하고 있다. 가정사는 굳이 제쳐두고라도,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켜야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한 사람 자신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며 말하면서 지금은 자유민주주의도 지향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회청문회장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장관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될 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이 둘로 나뉘어 갈등과 증오로 치닫고 있으며, 나라가 흔들거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람을 바르게 세워야할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자리를 팽개치고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며 삼권분립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을 강화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더 나아가 언론인이라 자처하는 모 유명인사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일방적으로, 비상식적인 잘못된 사람의 대변인처럼 좌충우돌 검찰과 논쟁을 벌이며 시국을 어지럽게 만드는 편파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청와대의 고위층인사는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민초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한사람의 잘못된 임명으로 비롯된 현시국을 어떻게 하든 안정시켜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일만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나라를 국태민안으로 이끌어야 함에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할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우매하기에 지켜야 할 자리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늘 사탄의 유혹과 궤계에 휘말려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사탄에게 넘어가 자리를 이탈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흑암의 세력에 둘러쌓여 있어 어쩔 수 없이 사탄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에,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권세자, 흑암의 세력, 공중권세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어 악한 마귀들을 대적해야 한다. 이 세상의 주관자요 권세자인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장 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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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2019-10-18
  • [성경의 노인 36] 노인과 웰다잉
      마지막 순간까지 평안함 누리는 죽음의 준비자세 절실 하나님의 뜻 따라 죽음 예비하는 엘리야 신앙 계승해야   아마도 한국교회 목회자 가운데는 웰다잉에 관한 책자와 자료를 내가 가장 많이 갖고 있지 않나 자부한다. 한국교회 최초로 2004년부터 〈죽음예비학교〉를 소개하면서 웰다잉 학교를 열었고, 교회와 신학교뿐 아니라 사회복지관 등에서도 웰다잉을 강의해 왔다. 800여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죽음예비학교〉 책자를 받아갔고, 최근에도 미국에서도 우리 교회에서 만든 교재를 중심으로 웰다잉을 가르치는 교회도 있다. 과거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의 하나가 의외로 노년 세대들 가운데 웰다잉 교육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도리어 젊은 층 가운데 노인 부모를 모신 가족들과 호스피스 사역자들, 요양보호사들과 목회자들이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는 영 시니어들 가운데 노년을 준비하면서 웰다잉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누구나 직면해야 할 필수 과제이다. 최근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의 현실에서 웰다잉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른 젊은 세대들보다 죽음이 임박한 노년 세대들에게는 죽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남은 세월을 살다가 ‘잘 죽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노인 웰다잉을 묵상하면서 성경의 인물 가운데 엘리야를 떠올리게 되었다. 열왕기하 2장에 열리야의 마지막 인생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본문으로 삼아 몇 가지를 짚어보려 한다. 첫째, 엘리야는 마지막까지 건강했다. 웰다잉의 목표는 그냥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총명한 정신을 갖고 내 힘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웰다잉을 정의할 때도 ‘고통 없이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동시에 ‘죽는 순간까지 인지 기능에 장애가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엘리야의 경우 죽을 때에도 자신의 마지막 사명인 후계자 양성을 위해 세운 선지자 학교들을 방문하면서 제자들을 만난다.   둘째, 엘리야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열왕기하 2장 2절).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열왕기하 2장 4절).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열왕기하 2장 6절)라고 했다. 웰다잉은 내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사회 복지기관이나 자녀들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셋째, 엘리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베풀었다. 아직도 내 삶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속 모으려 한다. 그러나 머지않았다고 믿는 이들은 나눠준다.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가 성령 충만을 받게 하고 그의 겉옷을 떨어뜨리고 떠나간다(열왕기하 2장 14절). 웰다잉을 꿈꾸는 사람들은 마지막이 오기 전에 자신의 것을 나누며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엘리야는 희망하는 죽음 장소를 선취적으로 택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덤에 묻히는 일반적인 장례도 원하지 않았다. 웰다잉은 수동적으로 타인에 의해 죽음 정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성경에 소개하는 것처럼 ‘불 수레와 불 말과 함께’ 승천했다(열왕기하 2장 11절). 참으로 멋진 웰다잉의 모습이지 않은가? 노년들이 엘리야를 닮기 소망한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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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9-10-18
  • [목회자 칼럼]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
      복음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 못하고 복음에 대해서 왜곡하고 복음의 진정한 참된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이 중요하다.    로마서 1장 1절부터 4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다”고 말한다. 마가복음 1장 15절은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종말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부터 “회개하라 때가 찼다”고 얘기하셨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힘으로는 계산적인 머리가 있기에 나는 할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다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다면 그것이 복이다. 나도 예수님처럼 살아가야지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따라야 한다.   우리는 가면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우리의 고백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란 고백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앙에서 복된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가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복이다. 이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라. 성경을 보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한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복음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을 받으라 한다.   사랑의 예수님과 용서하시는 예수님만 말하면 안 된다. 죄짓고 회개하는 것을 반복하면 안된다. 그런데 현재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현재 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적으로 강하다. 두 눈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눈만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좋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통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성경에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말과 행실과 믿음과 사랑이 믿는 자에 본이 되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레위기서는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대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레위기 때 드리던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예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 나아간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것은 거룩을 말한다. 영적인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성경이다. 이게 오늘 날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다.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삶이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깨어있으라고 말하고 있다. 영적예배는 관심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다가 교회를 나와서 회개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두려운 마음이 아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을테니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나님께서 얘기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한 마음을 주신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여건이 되어도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잊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라”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승리 할 수 밖에 없다.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바란다.   /서울명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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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9-10-18
  • [향유옥합] 독서교육이 미치는 인생교육의 효과
      탈무드에 보면 어느 여행객이 쥐엄나무를 심고 있는 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나무가 언제 열매를 맺을까요?” 여행객이 노인에게 물었다. “글쎄, 한 70년 후쯤이 되겠지” 쥐엄나무에 열매가 맺을 때까지 노인은 결코 살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여행객이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가 이 열매를 따서 드실 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도 이 세상은 황량하지 않았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무를 심으셨으니까. 그래서 나도 내 자손들을 위해 나무를 심는 거라네”   내 자손을 위한 준비된 교육은 어떤 것일까? 마음속에 보물섬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말씀을 먹고 말씀을 실천하는 교육이 마음의 보물창고를 채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 알래스카는 빙하와 곰 그리고 연어의 땅이다. 매년 연어 떼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데, 전 세계 낚시꾼들이 ‘러시안 리버’로 몰려든다. 미국 땅에 러시아 이름이 붙은 것이 이상하지만 원래 알래스카는 러시아 땅이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가 1867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720만 달러에 샀다. 러시아는 이 땅이 쓸모없다고 생각해 팔아버린 것이다. 이 빙토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미국 영토가 됐다. 지금 알래스카는 5%밖에 개발되지 않았지만, 그 풍부한 천연자원은 헤아릴 수 없다. 골드와 블랙골드(기름) 그리고 가스 등 수많은 천연자원이 숨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중심이 무엇일까? 영혼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사람의 가치를 모른다. 같은 땅인데도 사람에 따라 땅이 달라진다. 러시아에 쓸모없던 알래스카는 주인이 바뀌고 보물섬이 됐다. 내 인생의 주인을 나에게서 예수님으로 바꾸는 순간,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자격 미달, 함량 미달인 우리를 소망이 가득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 주신다. 인생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보물섬으로 가는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주도적 지식 함양을 위한 최고의 도구는 책이다. 어린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선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사회의 성인 독서율은 처참하다.   비록 많은 어른들이 시간이 없다며 책을 멀리하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지성의 바다를 헤치며 지혜의 보물섬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어린아이를 마음의 보물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책 읽는 습관이다. 식당에서 아이를 조용하게 하기 위해 핸드폰을 쥐여주게 되면 그 아이는 식당만 가면 핸드폰을 찾게 된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주고 성격 책을 같이 보는 습관이 길러졌다면 어디를 가든지 조용하게 책을 보는 습관이 길러질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 바꿀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변화하는 삶,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어려서부터 독서교육에 대한 습관이 되었다면 신앙교육도 함께 이루어지면서 마음의 보물창고가 가득 찬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마중물문화원 원장, 소명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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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9-10-17
  • “탈북민 지원과 강해설교에 집중하고 있다” - 사)나눔과기쁨 상임대표 박순오 목사
      대구서현교회에 1997년 12월 부임해 17년간 섬기다 정년을 5년 앞둔 2014년 조기은퇴한 박순오목사는 사단법인 나눔과기쁨의 이사장으로서 또한 ‘강해대지설교클리닉’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박목사는 한 교회에서 17년간 시무하며 교회의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이룬 모범적인 목회자요 뛰어난 강해설교자로 알려져 있다.   박목사는 “은퇴 후에 나눔과기쁨의 이사장으로 취임해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서경석목사의 뒤를 이어 특히 탈북민을 돕는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러한 사역에 한국교회가 좀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목사는 활발한 강연활동도 벌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연합회가 주최한 기독교제모습찾기 천국대회에 강사로 나선 박목사는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도행전적 교회란 “한마디로 성령에 충만한 교회이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부흥하고, 마귀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사도행전의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이다.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며,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사도행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목회자들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영성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교 세미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박목사는 “성경본문을 읽지만 실제로 설교 때는 본문을 인용하지 않거나, 본문을 인용하지만 본문의 주제와 다르거나 일관성 없는 대지를 제시하는 것들을 보았다. 또 대지는 잘 구성했는데 적용이 부족한 설교들도 적지 않았다”며, “설교가 바로 서지 않으면 성도가 변화될 수 없고 한국교회가 회복될 수 없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후배 목회자들이 성경중심적인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목사는 “강해대지설교클리닉은 교회 형편에 따라 세 가지 일정으로 진행할 수 있다.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2박3일 과정에서 강해대지설교의 원리에 대해 강의하고 참여자들이 주어진 본문을 가지고 설교문을 작성해서 시연한다”며 사역의 내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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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0-17
  • 문서선교의 중요성 재고하자
    한국교회 문서선교는 이 땅에 복음전파와 함께 시작되었다. 중국 만주의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의주 출신 백홍준·이응찬·이성하·김진기·서상륜 등과 함께 1882년에 최초의 조선어 성경인 ‘누가복음’을 번역·출판하였다. 그 후 1887년에는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완역 신약성경인 ‘예수셩교젼셔’가 번역·출판되어 조선선교의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전 세계 1,00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된 성경을 다양한 형태로 보급하고 있으며 기독교 서적과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문서선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의 영세성과 교인 수 감소, 경제 불황, 디지털 시대의 독서문화 축소 등으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문서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전략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구약성경과 복음서, 서신서들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결국 문서선교는 기록된 문자를 통해서 선교하는 전도방법이다. 성경 출판은 물론 기독교 잡지, 신문, 학술지 등의 정기 간행물과 일반 단행본 출판 등이 주된 내용이다. 따라서 성경의 번역, 출판, 보급 외에 문서선교를 가능하게 해 주는 기독교의 복음전파에 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의 저술과 출판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특히 교인들의 믿음의 성장을 돕는 책들의 저술과 출판에 대해서는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문서선교 단체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장 2절). 이것은 교회들이 오늘처럼 세속화 될 때에 복음의 말씀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를 담당하는 것이 문서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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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0-17
  •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자랑하자
    백남상은 한양학원의 설립자 백남 김연준선생의 철학이자 한양학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 정신을 기리고 발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사랑의 실천은 백남상과 한양학원의 기본 철학일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전체의 철학이다. 예수께서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결국 하신 일이 사랑의 실천이시니 말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아픈 이들을 치유하셨다. 이웃으로부터 소외받는 이들과는 함께 하셨고, 기득권의 거친 폭력에 시달리던 소수의 약자들을 위해서는 그들을 대신해 항변하셨다. 예수께서는 다른 어떠한 가치관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삶지 않으셨다. ‘사랑의 실천’만이 그에게 푯대가 되었다.   이를 모를 교회가 있을까. 이를 모를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을까. 이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수많은 교회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우리 교회들은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아픈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웃으로부터 소외받는 이들과는 함께 하고, 기득권의 거친 폭력에 대항하고 항변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 그 어디에 충분함이 있겠는가. 더구나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예수가 목숨을 바쳐 했던 일은 ‘사랑의 실천’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교회는 좌우충돌한다. 부족한 인간들이 전능의 하나님의 섭리를 실천하려 하니 모자란 경우는 얼마나 많겠는가.   교회가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에 실망하지 말자. 교회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고 너무 미워하지 말자. 그래도 지금까지 ‘사랑의 실천’이 제일가치임을 적어도 말이라도 할 줄 아는 곳이 교회이지 않은가. 몸으로 사랑을 살아내지 못할지라도 너무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 충분히 잘해왔다. 교회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우리는 기독교인임을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 오피니언
    • 사설
    2019-10-17
  • 루터의 정신따라 문서선교 나서자
      10월 종교개혁의 달이다.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오늘은 루터의 성경번역과 종교개혁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쇄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필자는 오래전에 독일의 종교개혁 성지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 그때 발트불그 성을 방문했었다. 아이제나크 시내가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동화 속의 성같은 곳이다. 바로 이곳이 루터가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한 그 역사적인 현장이다. 만약 루터가 적대자들에게 쫓겨 이곳으로 피신하지 않았다면 성서는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됨으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말로 성서를 읽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루터를 이곳 발트불그 성에 가두어 놓았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그 비밀의 섭리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안내원의 인도에 따라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다는 바로 그 방으로 갔다. 그리 크지 않은 방으로 6~7평 정도 돼 보이는 방이었다. 나무로 된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창문이 나 있었다. 아마도 루터는 이 책상에 앉아서 기도했고 성서를 번역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답답하면 창문을 열고 발크불그성 주변의 숲과 저 멀리 아이제나크 시내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 그 환경을 오히려 성서를 번역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기회로 역전시킨 루터의 멋진 뒤집기 한 판 승부가 가슴 뿌듯한 인생 드라마로 가슴속에 다가옴을 느꼈다. 지금도 그때 그 가슴에 벅차오르던 감격이 생생하다.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일까? 당시의 성서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다. 소수의 성직자 외에는 성경에 대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또한 성서에 대한 해석권한도 교회 즉 교황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당시의 성도들은 사제가 읽어주고 해석해 주는 그 성서만을 듣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 성도들은 사실상 성서에 대해서는 눈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루터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독일어로 번역했다. 소수 사제들만의 성경을 일반 대중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은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한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루터의 종교개혁을 보이지 않게 도왔던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쇄 매체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1455년 당시 독일 남서부 마인츠라는 도시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50여년 뒤에는 독일의 60개 도시와 유럽의 12개국에까지 보급되었다. 이 인쇄기 덕분에 일반인들도 관심거리를 신속히 대량으로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신문이나 방송이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대중 매스미디어가 없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고서 비로소 뉴스의 다중전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루터가 작성한 95개 조항 논제도 인쇄되어 배포되었을 것이다. 교회 개혁 문제는 더는 비텐베르크의 캐슬처치 대문에 붙어있는 종이조각이 아니었다. 그 문제는 광범위하게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종교개혁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바로 인쇄술의 발달이라는 또 하나의 조력자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도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땅끝까지 복음전파라는 주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독일어 성경번역과 당신의 인쇄술이 도왔듯이 오늘 우리들의 복음전파를 돕는 수많이 매체들이 있다. 어찌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들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 도구들을 활용한 지상명령의 수행은 이제 우리 신앙인들의 몫이다.    /루터회 증경총회장·새길교회 목사
    • 오피니언
    • 정론
    2019-10-17
  • 건전한 사회분위기를 만들자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스스로와 이웃을 염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럴 때 개인의 삶도 더욱 보람차며 우리 사회는 개혁되고 발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나라의 문제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언제나 개인의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야망이 늘 충돌하는 사회는 결국 이익집단을 양산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만연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허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덕목을 신장할 때 우리 사회에 정의와 사랑과 용서, 평등, 자유가 자라나게 될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고 그 분위기에 따라 좋고 그름을 분간하면서 국민의식이 생겨난다. 지도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그 분위기에 따라 선악을 판단한다. 사회의 올바른 분위기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본을 보일 때 실현 가능하다.    만일 우리나라에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없거나, 혹 있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시대적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가치들을 창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본받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한결 좋아질 것이다.   정치인이나 사회적 지도자들이 자기들만 옳다고 이념적 갈등을 만들어 내서는 결코 안 된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꾼이 되려고 노력해야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해서 멸사봉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경륜과 실천을 통해서 이웃에게 참된 모습을 보일 때 진정으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진정한 리더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더 큰 인물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인정하며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예장 개혁혁신측 총회장·엘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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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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