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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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대경박사 기독교학술원서 주장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분석해 은사중지론의 문제점 지적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끼워 맞추어서는 안 된다”   전대경박사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좥케직(Keswick) 사경회의 은사 지속론적 성령이해에 대한 개혁신학적 정당성 탐구좦란 발표를 통해 온건한 기적지속론적 ‘케직 성령론’의 개혁신학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전박사는 먼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 나타난 그의 ‘기적’과 ‘방언’ 이해를 살피며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칼빈이 기적지속론자였음을 보였다. 다음으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 판본들을 비교해 봄으로써, 칼빈이 기적에 대한 자신의 노선을 전회한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기적지속론을 주장했음을 보였다. 또 루터와 어거스틴의 ‘기적’과 ‘방언’ 이해를 다룸으로써, 루터와 어거스틴도 기적지속론자였음을 보였다. 이를 통해, 기존의 개신교 정통주의 혹은 (구 프린스턴 학파의 은사중주의적) 개혁전통은 그동안 ‘기적’ 및 ‘방언’과 관련하여 개혁신학을 곡해 및 오해해 왔음을 보였다. 전박사는 “따라서 기존의 개혁신학적 성령 이해와 웨슬리안적 성결의 성령 이해, 그리고 오순절적 성령 이해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이들과 꼭 같지는 않았던, ‘케직 사경회의 성령 이해’의 개혁신학적 정당성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고 주장했다.   전박사는 이어 “칼빈, 루터, 어거스틴이 기적을 초대교회 사도시대에만 국한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이후에 성령의 은사와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들의 의미는 정경 이전에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공개적으로 그리고 강권적으로 임하신 오순절적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말한다”며, “그래서 이들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성령 하나님은 국지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당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이해했다. 즉 은사를 ‘말씀의 전파’와 떠나서 남용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은사가 완전히 중지되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또 “칼빈, 루터, 어거스틴의 ‘기적’과 ‘방언’에 대한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은 오늘날 기적이 완전히 중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적 중지론’과 방언이 구원의 유일한 표식이라고 주장하는 ‘은사지상주의’ 양측을 모두 꼬집어 지적하는 것으로 들린다”며,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는 방언도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며, 전자의 입장에서 후자는 마귀 방언을 하는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칼빈, 루터, 어거스틴은 양 극단 모두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지론적 칼빈주의 개혁신학에서는 이제 더 이상 ‘오늘날에 성령의 은사와 기적은 중지 되었으며 방언을 포함한 그러한 이적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약 (루터와 어거스틴을 포함하여)칼빈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말이다”며,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도 수차례 지적한 것처럼, 칼빈으로 하여금 마귀방언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순절신학(특히 은사지상주의)에서도 ‘방언이 구원 받았다는 성령 세례의 유일한 초기적(the initial) 증거다’라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후르타도(Hurtado)가 정확히 지적하는 것처럼,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았다는 유일한 표식이 방언이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며, “그 교리를 주장하는 집단 전체는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반성경적이기 때문에, 잘 해야 기독교 분파주의로 취급될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 이단/사이비로 취급받을 위험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박사는 ‘증거본문삼기(proof-texting)’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즉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자들인 정통신학자들의 글들을 해석해야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과 정통신학자들의 글들을 ‘의도적으로’ 증거본문삼기 해서는 안 되겠다”고 강조했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10-2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2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3)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물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생명이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물질에서 생명이 생겨난 것이라면, 생명체는 분해와 조립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생명체를 물리적으로 조립하거나 분해하는 실험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질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거나, 영생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이 물질적으로 영생의 방법을 찾는 실험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은 생명체의 정보인 DNA 구조를 분석해서 디지털 정보로 저장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각 부분의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서 생명체의 부품들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품들을 살아있는 생명체에 부분적으로 이식하거나 교체해서 복합(hybrid)새명체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부품들만으로 조립해서 인공생명체를 완성한다고 해도, 그것에서 생명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인공생명체의 물질적 구조만으로는 의식(정신 또는 영혼으로 불릴 수도 있다)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를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물질적 구조와 의식을 가지고 열역학 제2법칙에 저항하면서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체가 열역학 제2법칙에서 규정하는 엔트로피 증가에 저항하는 힘은 생명현상의 발현인 의식에 있다. 의식은 그 생명체의 첫 활동을 작동시키고, 그것의 생명 활동을 끝까지 기억하는 정체성을 가진다. 의식은 활동하지 않는 무의식 상태에서도 생명체에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 의식이 죽으면 생명체도 죽고, 생명체가 죽으면 의식도 죽는다. 따라서 영생은 뇌에서 발생하는 의식이 정체성을 가지고 영원히 생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 생명체의 처음 작동에서부터 연결된 의식을 어떻게 영원히 유지하느냐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부품들을 갈아 끼울 수 있는 복합생명체를 만들어도, 그것의 영생은 의식을 보존하는 기술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영생을 꿈꾸면서 천하 각지에 불로초를 찾는 사신들을 보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황제의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려는 그의 욕심은 생전에 화려한 지하 궁전을 만들어서 지금은 진시황릉이라 불리는 세계적 관광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끝났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물질에서 인공생명을 만들겠다고 허풍을 떨었다가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뇌 의식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을 실현하겠다는 ‘뉴럴링크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여 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뇌 의식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할 수 있다는 말에 미혹된 현대인들이 그런 프로젝트에 거액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 역시 죽음을 회피하려는 생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 의식을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방법은 의식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해서 뇌와 같은 저장장치에 저장하거나, 아니면 다른 생명체의 의식을 빼내고 계속 갈아 끼우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그 두 가지 방법의 가설에 대해 이제 겨우 실험에 착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만약 그런 방법들이 가능해진다면, 타인의 생체를 약탈하려는 범죄가 인간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과학이 의식의 문제에 부닥친 장벽은 의식이 뇌 물질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의식 자체는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비물질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과학이 생명체의 물질과 비물질의 연결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과학이 그동안 인공생명의 제작에 실패한 것처럼, 과학적 영생 프로젝트도 실패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영생의 꿈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인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에 인간에게 영생을 이미 주셨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잊어버림으로써 그 영생의 끈이 끊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이긴 자들에게 다시 영생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친히 함께 계실 것이다(계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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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1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2)   현대문명을 이끌어가는 힘은 과학이다. 과학은 쉬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새로 발견한 과학 뉴스와 그 공로를 인정받은 과학자들의 노벨상 수상 소식 등은 언론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현대과학 뉴스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뉴스들은 대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관점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주류 과학자들은 창세기에 쓰인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상당수의 현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는 과학을 부정하면서 사회생활에서는 과학을 인정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거나, 교회를 떠난다. 과학을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이들에게도 현대과학을 부정하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현대사회에 부적응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과학주의 사회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삶은 결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과학을 부정하는 행동을 요구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학문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우주의 물리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그것을 초월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 생물의 생명법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생명의 종류별 기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창조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하신 일들은 과학과 기독교를 통섭하는 관점에서 연구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 진정한 통섭적 관점에 이르면, 열역학 제1법칙이 입증하는 영원불변의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있는 자’(출3:14)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구에서 인간과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물질에서 저절로 생겨나 진화한 존재이고, 그의 의식은 물질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몸이 죽으면 의식도 당연히 죽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권력과 부의 축적에 성공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오히려 영생하는 방법을 더욱 간절하게 찾고 있다. ‘뉴럴링크 프로젝트’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바로 영생의 가능성이다. 세계 영화 배급업체 넷플릭스가 드라마로 제작한 SF [얼터드 카본, Altered Carbon]을 보면, 카본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그의 의식을 디지털 저장 장치(stack)에 저장하여 타인의 신체 또는 로봇에 이식 또는 조작하면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일본판 에니메이션 [얼터드 카본: 리슬리브]의 스토리는 한 야쿠자 조직이 초대 두목부터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는 전통을 이어왔으나, 사실은 초대 두목이 후계자를 죽이면서 ‘스택’에 저장한 자기의식을 죽은 후계자의 뇌에 계속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런 SF 영화들이 유행하면서 현대인들은 과학의 힘으로 영생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모르는 인간들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얼터드 카본]이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의식이 카본 화합물 따위라면, 물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한 오파린과 크레이그 벤터 등이 왜 단세포 박테리아 생체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100년 세월을 허송했겠는가? ‘뉴럴링크 프로젝트’ 역시 물질만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한 생명체를 물질로 환원할 수 있다고 미혹하는 사탄적 기만이다. 의식을 발화하는 뇌 신경을 로봇에 연결하거나 전송하는 ‘뉴럴링크 칩’, 또는 저장 ‘스택’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짐승의 표(계13:16)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통섭적 관점을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속에서 영생의 소망을 이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장성(고전 13:11)하지 못하거나 사탄의 미혹에 빠진다면, 그의 소망은 헛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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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0-10-27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X. 개혁주의적 영성신학 제시: 초연 아닌 헌신의 태도,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합 강조   1. 기독교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   1987년 3월 9일 패커는 도쿄기독교신학원(Tokyo Christian Institute) 졸업식 강연을 했다. 패커는 이 강연에서 신학이 학문으로 머물지 않고 신앙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성찰했다. 그는 오늘날 유럽의 자유주의적 강단 신학에서 신학과 기독교적 삶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교육과정들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학문적인 이슈만을 다루어, 기독교적 삶의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신학생들을 복음 전도자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지식인 내지 회의자가 되도록 한다. 많은 신학생들이 신학을 하고 졸업을 한 후에 신학하기 전보다 하나님을 더 멀리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신학교육 컬리큐럼에서 기독교 신학 공부와 기독교적 삶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신학적 지식과 연구가 신앙적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교과과정이 기독교적 신앙과 삶을 다루기보다는 단지 학문적인 이슈들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패커는 초대교회시 신약의 복음서나 서신서들이 쓰여진 이유는 이것들이 단순히 기독교를 개념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삶에서 따르는 제자들을 만들기 위하여 쓰여졌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1970년대 복음주의자들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아니했다. 하지만 패커는 신학과 삶을 연결시키는 용어로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패커는 영성 단어를 기독교적 진리를 삶에 적용시킨다는 의미에서 청교도 개념에 가까운 현대적 등가어로 보았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1968년부터 사용했고,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영성신학”이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조직신학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패커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 성취, 진작하고자하는 여러 가지 기독교적 활동에 대한 탐구, 그 활동에는 공예배, 개인의 기도, 그리고 이러한 경건활동에 실체적인 기독교적 삶에 미치는 결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영성 정의(定義)는 진리를 생활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패커 자신이 중요시하여 왔고 그렇게 신학적인 활동을 하고 그렇게 살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청교도로서 자신이 청교도적 삶을 살기를 노력했다.   2. 체계적 영성: 초연(超然) 아닌 헌신의 태도   패커는 1989년 리전트 칼리지 상우 유통 치(Sangwoo Youtong Chee) 석좌교수 취임강연에서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의 조직신학의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감정과 생각들을 다루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주관적으로 정향된 자유주의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 이러한 신학은 신학의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다루는 것으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은 19세기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불트만을 거쳐 캅((John B. Cobb)의 과정신학자들에까지 이르는 인간중심의 신학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된 성경적 진리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객관적으로 사실에 정향된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하여 지지를 보낸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신학 유형으로 정통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의 유형은 단지 냉정하고 초연함(detachment) 속에서 진행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을 개념화하고 자료들을 마치 일반 과학적 자료들처럼 취급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사유의 결과는 성경을 주해하는 계시신학의 차원에서 이탈하여 이성적 사유가 하나님의 진리를 지배하고 구성하는 사변신학으로 나아감을 초래한다. 이러한 신학의 학문적인 체계화 작업에 대하여 패커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초연한 태도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사유 개념이라는 상자 안에 가두고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커는 “작지만 중요한 수정”을 가한다. 그의 수정이란 초연함이 아니라 헌신(commitment)의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패커는 헌신의 태도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 상대자로 다루고 인간의 사고 틀 속애서 하나님을 사변하는 데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계시적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를 추구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헌신의 태도는 이성적 사유가 지배하기 보다는 성령의 조명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헌신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적 지식(knowledge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지식(knowledge of God)이 추구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태도 속에서 그분을 묵상하고 그를 향한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단지 머리로 아는 이론적 지식은 하나님을 마음과 영혼으로 아는 인격적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서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중세의 최고의 신학자인 토마스의 문장을 인용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의해 가르쳐 지며, 하나님을 가르치며, 우리를 하나님에게 인도한다”(theologia a Deo docta, Deum decet, ad Deum ducit).   3.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천명: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   패커는 신학의 방법으로 영성신학을 제안하면서 이를 위하여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을 제안한다. 조직신학의 사유는 영성의 태도 속에서 실행되어야 하고 영성의 태도는 조직신학적 사유의 표현으로 견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양자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신학적 사유와 경건한 탐구는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 되며 하나님을 개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패커는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에 대한 실례를 다음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전한 영성은 철저히 삼위일체론적이 되어야 한다. 건전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세 위격 모두에게 온당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성부를 무시하면 성부의 예정과 예지를 무시하게되고, 그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신앙, 하나님의 사역과 훈련을 상실하고, 하나님 가정 안에서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여 게으르고 버릇없는 신자가 된다. 성자를 무시하면 성자의 중보와 속죄, 천상에서의 간구를 상실하게 되어 율법주의에 떨어지게 된다.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께서 창조하시는 성부와의 교제, 인간 본성의 새롬게 하심, 확신과 기쁨,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패커는 하나님에 대하여 삼위일체론적으로 균형잡힌 신학적 사유를 하고자 제안하고 있으며, 이는 아주 올바른 방향이다.   패커는 교실과 강의실에서만 통용되는 강단신학을 거부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과는 동떨어진 학문적 정직성에 입각하는 신학을 하게될 때 신학은 지성은 만족시키나 신앙과는 괴리(乖離)되게 된다. 불트만의 경우처럼 신약의 비신화론화라는 지성적 이해만을 만족시키고자 함으로써 탈교회적, 탈신앙적 신학이 결과된 것이다. 보수정통신학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하나님 지식을 체계화하고 알지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과 분리될 때 무용지물이 된다. 영성으로 표현되지 않는 신학은 신앙적 삶과 괴리되어 무용지물이 된다. 패커는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하다고 역설하였다.   패커는 기독교 이후 시대 진정한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자로서 학문적 신학을 수행하는 학자로서 신학이 나아가야할 진정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진정한 신학은 영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패커의 영성신학 개념은 현대를 살았던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그가 우리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성신학,”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신앙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이라는 패커의 용어들은 기독교 이후의 삶을 맞이하고 있는 구미(歐美)신학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전통으로 복귀하는 신학의 진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패커는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리는 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영성”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영성신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였고, “조직신학의 구체적인 적용,”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이라는 신학적 개념까지 제시한 것은 그가 신학적 방법에 있어서 단지 이성을 사용하는 정통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신학적 경건의 열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성신학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 패커는 단지 은사주의자들이 주구하는 신비주의로 나아가기를 주장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적인 인간의 경건훈련을 강조하는 신인협력설로 나아가지 않고, 성령을 좇는 삶, 성령 안에서 경건을 추구하는 성경적 영성훈련을 강조한 것은 그로 하여금 시종일관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남아 있도록 하였다.   X. 정통 개혁신학 입장 제시   패커는 “될 수 있는 대로 논쟁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논쟁의 중심이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런 논쟁 상황에서 패커는 대개 성경적이고 정통주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같은 성공회의 복음주의적 ‘학자인 목회자(scholar-pastor)’였던 존 스토트보다 좀 더 온건하고 정통적 입장을 대변했고, 신학적으로 정통파 개혁신학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곳곳에서 잘 제시한 신학자(theologian)였다. 패커는 항상 매우 조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 성공회) 안에서 개혁신학적 목소리를 강력하게 외친 사람 중 하나였다. 역사신학자 마크 놀은 패커의 개혁신학적 성향이 성공회적이며, 복음주의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어법은 영국적이며, 정서는 복음주의적이다. 패커의 복음주의적 유별한 특성은 그의 교육, 그의 칼빈주의, 그리고 그의 성공회주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결합은 아주 비역사적, 거의 비전통적인, 자주 반지성적인 복음주의가 미국 역사에서 고통을 당했던 과도함에서 벗어나게 했다,”(Mark Noll, "The Last Puritan," Noll’s contribution to Doing Theology for the People of God: Studies in Honor of J. I. Packer, edited by Donald Lewis and Alistair McGrath, InterVarsity Press, 1996).이러한 마크 놀의 평가는 패커의 균형적 정통주의적 개혁신학에 의하여 그가 천명한 복음주의는 그동안 복음주의가 빠질 수 있었던 아주 비역사적 정향, 그라고 거의 전통 무시함, 자주 반지성적 정향에서 벗어나는 과격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았다.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옛 청교도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신자들에겐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채찍질했다. 패커는 칭의 논쟁에서도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역설했다. 패커는 특히 신론과 구원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리하여 형벌을 받으셨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둘다 강조하고, 신학의 모든 측면에서 개혁신학의 강조점을 잘 드러냈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였다. 패커는 그의 저서 『복음전도란 무엇인가』에서 칼빈주의가 중심교리롤 천명하는 구속론적 입장(the soteriological position)을 견지했다.   패커는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 속에서 성경의 무오한 권위를 지켰다. 1977년엔 R.C 스프롤, 존 게르스트너, 노먼 가이슬러, 그레그 반센 등과 함께 국제성경무오협회를 구성했다. 이는 1978년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시카고 선언(Chicago Statement, 1978)을 끌어낸 기초가 됐다. 패커는 1978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성경의 무오성을 위한 국제협회’(The International Council for Biblical Inerrancy)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학계의 유행을 말하자면 로마 가톨릭이 제2바티칸공의회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해 왔으나 그 이후에는 구교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신교의 회의주의에 대규모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이제는 구교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입장은 소수파의 입장이 되어 버릴 것으로 보인다.” 패커는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에서의 10년간의 리더십을 만족스럽게 되돌아보며, “무오에 대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피력은 패커가 최선을 다했던 여러 이유를 설명해준다. 패커는 성경의 본질과 해석,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같은 수많은 신학적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복음주의 선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과거를 바라본 전통주의자였다.   마크 A. 놀은 “패커는 칼빈주의자로서 무게 있는 신학적 전통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진정한 신학의 전통을 이루어 왔던 서너 개의 우파들을 아우르는 학문적 심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노작들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자기의식이 뚜렷한 개혁주의 신학이다. 패커는 주의 깊은 주석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에 대한 확고한 수호자, 자기의식이 뚜렷한 해석학적 이론가”라고 말한다.   패커는 2000년 제자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학 속에 청교도 신앙과 정통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증언하였다: “나의 신앙 형성에는 칼빈과 청교도들이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칼빈과 청교도들에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한 손에는 정통성과 진리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 제자의 도가 있다. 이제 이것은 나의 삶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며 체계적인 신앙 지식 추구를 주문했다. 대표작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비롯해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기독교 기본진리』, 『청교도 사상』 등 300여권의 책과 사전 편집, 기고글 등이 있다. 그는 ESV성경의 책임 편집자를 역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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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0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1)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유물론자와 진화론자, 그리고 그 이론들을 결합한 과학적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에서 밀리고 있는 동안에 과학기술은 보라는 듯이 로봇(robot)과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개량한 인공지능(A.I.)을 로봇에 탑재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휴머노이드는 인터넷과 연결하여 세상의 모든 정보를 습득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로봇이다.   한편 미국에서 일런 머스크가 세운 테슬라사는 항공기 운항에 쓰는 오토파일럿(Autopilot)을 개량하여 지상에서 운전자 없이 자율운행(FSDC; Full Self Driving Capability)하는 자동차를 금년 중에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율운행 자동차의 완성은 주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딥 러닝(deep learning)한 A.I. 로봇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런 로봇들과 공생하는 사회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거의 모두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런 우려를 비웃듯이 일런 머스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로봇에 연결하는 뉴럴 링크(Neural Lin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머스크에 의하면 뉴럴 링크 로봇은 인간의 일 처리 능력을 딥 러닝 A.I.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징은 뇌 신경망에서 발화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다른 생물과 특별히 구별된다. 인간의 뇌 신경망에서 발화하는 의식을 로봇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특수하게 개발된 뉴럴 링크 칩(neural link chip)이 필요하다. 뉴럴 링크 칩을 개발하는 머스크의 뉴럴 링크회사는 최근 살아있는 돼지에 실험하여 일말의 성과를 거두었고, 곧 인간의 생체 실험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인간의 뇌 + A.I. 로봇’으로 구성되는 뉴럴 링크 인간 또는 뉴럴 링크 사이보그(Cyborg)는 살아있는 인간과 A.I. 로봇의 합성체를 만드는 것이다.   일런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인공생명 제조 실험을 했던 크레이크 벤터가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생명 제조 실험의 성공은 과학적 무신론자 생명의 기원이 물질의 화학작용이라는 오파린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머스크가 인간의 뇌 기능을 A.I. 로봇에 연결시켜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역시 과학적 무신론자의 관점이다. 그런 합성체 인간은 다양한 조합을 가질 수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반(半)인간 반(半)기계’로서 신의 경지에 이른 변종(變種) 인간이다.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 [메트릭스]와 일본 만화작가 시로우 마사무네(士郞正宗)의 『공각기동대』, 그리고 리처드 K. 모건의 SF 소설 『얼터드 카본』 등에서 묘사한 미래사회에서는 오히려 일상적인 개념이다. 그런 SF에서 인간의 영혼 또는 정신은 이미 메모리 칩, 스택(stack), USB 등의 컴퓨터 보조기억장치에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어 있고, 아무 인간의 몸에나 이식, 또는 교체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미 많은 SF의 공상(空想)을 과학이 실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인은 과학이 만능(萬能)이라는 관점에서 정신과 몸을 서로 바꿔가면서 영생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거나 자연발생한 원시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하여 진화했다고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기술에 의하여 혼합생명체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얼터드 카본』에서 혼합생명체를 지배하는 엘리트 그룹(‘므두셀라’들)은 인간의 생명을 얼마든지 조작하고 연장할 수 있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이 스스로 변종 인간이 되어 영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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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6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9
        인간의 기원   기독교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가 창조하신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과 의무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창1:26-28). 그러나 다윈주의자 및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그런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몇 개 또는 한 개의 원시 생명체를 만들었거나, 또는 아예 물질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원시생물이 생겨났고, 인간은 그것이 진화한 동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각 생물의 DNA 또는 RNA의 유사성에 따라서 진화계통수를 그려놓고, 그것이 지구 생물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각 생물의 DNA가 그 생물의 생명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계통수는 그들의 관점에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은 각 생물의 DNA 데이터를 처리해서 그린 허구의 그림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화계통수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과학적 무신론에 속아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계통수에 의하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유전체)을 비교하면, 약 97%에서 99%까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이질적인 면이 더 많다. 인간의 게놈을 구성하는 염색체 숫자는 46개이고, 침팬지는 48개이다. 인간의 생명 정보인 DNA를 연구하기 위해 2003년에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끝낸 과학자들은 곧바로 국제적 연구팀을 만들어 엔코드(DNA 원소 백과사전)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인간게놈을 구성하는 DNA는 약 32억 개로 밝혀졌고, 그 DNA들은 약 25,000개의 유전자로 계열화되었다. 유전자는 다시 46개의 염색체로 계열화되어 각 체세포의 핵에 들어있다. 46개의 염색체는 부모가 23개씩 나눠준 것이며, 그 23개의 쌍(짝)은 상동염색체로 불린다. 게놈을 가진 체세포는 분열하여 2개의 딸세포로 증식한다. 정자와 난자를 말하는 생식세포는 체세포의 염색체가 23개로 감수분열(46/2)한 것이다. 수억 개의 정자 중에서 1개가 난자를 만나 짝짓기에 성공하면, 모의 자궁에서 한 개의 배아를 형성한다. 그 배아가 세포분열을 통해 2-4-8-16...으로 늘어나서 성체가 된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 개의 체세포로 구성된다. 인간의 체세포 크기는 대개 0.1㎜, 세포핵은 0.02-0.03㎜ 정도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을 비교하면, 약 97%에서 99%까지 일치한다. 그러나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이질적인 면이 더 많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스티븐 콜린스는 단백질 생산 정보를 가진 5% 이하의 DNA만 유전자로 보고, 나머지 95%는 쓰레기(junk) DNA로 취급했다. 그러나 콜린스의 DNA 이해에는 오류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DNA가 엑손(Exon)과 인트론(Intron)의 정보를 전부 mRNA에 전달하면, 엑손 정보만이 단백질 생산에 쓰이고 인트론 정보는 쓸데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신의 언어』에서 네 글자(A, T, G, C) 배열로 이루어진 DNA를 신이 설계한 생물의 생명정보라고 해석했다. 무신론자였던 콜린스는 DNA가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바이오로고스(biologos)설을 제안하면서 유신론을 인정하고 회심했다. 그 뒤에 이어진 엔코드프로젝트 연구에 의하면, 아직 그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정크 DNA도 각각 생명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 조상으로부터 인간게놈을 이어받은 것이지, 침팬지 게놈에서 진화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과 각 생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유전법칙에 따라서 부모의 게놈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을 뿐이다. 더욱이 생물의 게놈에는 계통을 벅어난 변이가 발생하면, 다음 세대에서 유전자 복구 시스템이 작동한다. 진화의 계통수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유전법칙에 따라 생물의 게놈이 새로운 종의 게놈으로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각 DNA 단위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각 DNA 데이터를 분석하면, 하나님이 그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려고 인간게놈을 특별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누가 하든지, 인가의 기원논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10-0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8
      기독교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적 무신론 비판하기(3):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은 하나님이 지구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생물학적으로 부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에서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창조자’(Creator)에 의하여 ‘몇 개 또는 한 개’ 만들어졌고, 그것이 번식하면서 자연선택의 방법으로 인간으로까지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조금 늦게 그레고어 멘델은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1866) 논문을 발표하여 생물에게 나타나는 변이는 유전자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멘델의 주장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무작위적인 변이를 명백히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을 학습한 역사적 유물론자들은 생명을 물질적 현상으로 보면서 창조자까지 부정했다. 그 결과 오파린은 생명이 물질에서 발생했다는 화학적 진화론을 주장할 수 있었고, 그의 주장은 과학적 무신론의 핵심 이론이 되었다. 결국에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과학적 무신론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1871년 당시 찰스 다윈을 원숭이에 빗대서 풍자한 영국의 신문 만평 1953년에 모두 생물의 생명정보가 DNA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생물학이 수많은 실험을 거쳐 멘델의 주장을 유전법칙으로 확정하고, 다윈과 오파린의 주장은 가설로 남겨두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1890-2003)를 거쳐 생물의 생명 정보와 DNA 결합 구조가 더 많이 밝혀졌다. 이후에 DNA는 물질에서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질 수 없고,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유전법칙과 생식격리 현상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점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다윈과 오파린의 가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 생물학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의 조합에 의해 몸과 본성이 다양하게 표현된다. 유전법칙에 의하면 DNA의 조합은 그 종이 가지고 있는 DNA의 구조 안에 제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종의 생물은 유전법칙에 따라서 같은 종의 자손들을 번식할 뿐이다. DNA의 조합 과정에서 탈락이나 배열의 오류 등에 의한 변이는 기형이나 질병으로 나타날 뿐이다. 서로 다른 종은 교배를 해도 DNA의 조합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번식력 있는 자손을 낳지 못한다. 유전자 변이가 점진적으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다윈주의는 진화의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중간 종이 현실적으로 관찰된 사례가 없다는 사실에서 부정된다. 새로 등장한, 돌연변이 가설은,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종이 발생하려면, 유전자와 생식기능이 동일하게 동시에 돌연변이된 암수가 동일한 장소에서 만나 교배해야 한다는 확률적 불가능성에 막힌다.   한편 다윈의 ‘창조자’를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해석하는 다윈주의자들은 개혁교회에 출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유신 진화론자, 또는 진화적 창조론자 등으로 불린다. 그들은 인간도 원시 생명체에서 진화한 존재라고 보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한 사실을 부정한다. 그렇다면 죄악에 빠진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자이면서 구원자로 믿는 교회에 그들이 출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에 출석하는 다윈주의자들이 하는 일은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창세기를 비판하고 추종자를 모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주로 개혁교회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홍수지질학과 우주와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비판한다. 그런 창조과학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으로 창세기를 해석했던 1920년대 안식교회의 홍수지질학을 표절한 것이다. 더욱이 홍수지질학의 주제인 노아홍수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와는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보면, 개혁교회에 창조과학자들도 문제이지만, 다윈주의자들도 문제이다. 현대에 이르러 개혁교회 안에서 창조과학이나 다윈주의는 이단 종파의 도그마로 변이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현대 개혁교회는 교회 밖에서 과학적 무신론의 도전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창조과학과 다윈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응책 논의도 더 미루지 말아야 한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09-28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7
      기독교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적 무신론 비판하기(2)   하나님은 우리우주를 창조하신 다음에 ②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은 그런 사실을 부정한다. 알렉산더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1936)에서 지구 최초의 생물은 물리적 화학작용의 ‘변증법적 비약’에 의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생명의 보편적 개념은 물질로 구성된 생명체가 죽을 때까지 그것의 행동을 주관하는 기능을 말한다. 오파린의 관점에 의하면 생명은 생명체의 물질적 현상이다. 오파린은 생명체의 화학적 발생에 대한 법칙을 알게 되었으므로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것도 곧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파린의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그의 [생명의 기원]을 읽고, 그가 설명하는 물질의 화학적 또는 변증법적 과정을 전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파린은 결론적으로 인공생명체의 제조가 곧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결론을 검증하는 것으로 그가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사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오파린은 죽을 때(1980)까지 인공생명체 제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죽은 뒤에 그를 추종하는 과학자들이 그의 인공생명체 제조에 관련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각 생물의 생명정보가 DNA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공생명체 제조에 성공한 과학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 인공생명체 연구에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진 크레이그 벤터연구소조차 그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벤터 연구소는 2010년에 901개의 유전자와 약 100만개로 조직된 미코플라즈마 미코이데스 박테리아의 DNA를 해독하고 이를 인공적으로 복제했다. 벤터는 그렇게 만든 미코이데스의 인공 DNA를 미코플라즈마 카프리콜룸의 생체 세포막에 이식해서 미코이데스의 DNA 특성이 발현되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러자 벤터는 최초의 생명체는 최소의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미니멀 세포’ 제조에 착수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친 끝에 벤터는 2016년 473개의 필수 유전자를 골라 ‘미니멀 세포’를 만든고, 그것의 생명기능 발현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의 생명은 박테리아의 생체 세포막에 이식했을 때만 발현되었고, 인공 세포막에 이식했을 때는 실패했다. 100%의 인공생명체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벤터연구소의 인공생명체 제조 실험은 절반의 선에서 멈춰 섰고, 새로운 소식은 아직 없다.   국내에서도 인공생명체에 대한 연구가 없지 않았다. 2018년 국내 2개 대학과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합동으로 살아있는 식물세포와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가지며, 빛을 사용해 스스로 생체에너지(ATP)를 생산하는 인공세포 제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시금치에서 광합성 단백질을, 박테리아에서 광전환 단백질을 각각 추출한 후 세포와 유사한 형태로 재조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인공세포 제작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허위 주장이다. 결국 생물학에서 두 개의 기둥원리인 세포는 세포에서, 생명은 생명에서 생겨난다는 세포속생설과 생명속생설이 무너지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 오파린이 화학진화론으로 설명하는 생명의 기원 가설이 부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당황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지구 생명의 기원을 지구 밖에서 찾고자 하는 ‘범종설’(panspermia) 등의 외계기원설까지 주장했다. 그로 인하여 알지도 못하는 외계인을 신으로 믿는 종교까지 생겨났다. 생명의 기원 문제를 지구 밖으로 끌고 나갈지라도 장소만 이전될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창조자를 찾지 않을 수 없다면, 결국 그분은 성경에서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출3:14)로 설명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분이 지구 생명을 창조하신 이야기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다. ‘알파 창조론’은 현대과학적 관점에서 고대 히브리인 저자 모세의 서술을 일부 교정하여 그분의 창조를 사실로 믿을 수 있게 설명하고 있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09-28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한국교회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 긴밀히 교류하고 선교와 복음화의 영향력 넓혀야한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전)AEA신학위원장/ (전)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숭실대 명예교수   머리말   보수 복음주의 신학자 연대(김명혁, 김상복 강승삼, 박용규, 성남용, 이승구, 이은선, 박명수 교수)가 2020년 9월 11일 성명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예장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제105회 총회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 World Evangelical Alliance)와의 교류단절을 재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이 이슈의 교회사적 신학적 중요성을 감안해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발표하고자 한다.   필자는 유럽에서는 1971년부터 독일 하이델베르그대, 마르부르크대, 보쿰대에서 7년간, 영국에서는 1989년 캠브리지 신학부에서 1년간, 1990년 미국에서는 예일대 신학부, 프린스턴대에서 2년 등 총 10여 년 간 신학을 연구하고 그곳 신학 및 교회 지도자들을 만난 국제적 경험, 2002년-2019년까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 2008년-2016년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의 신학위원장으로 봉사한 선교와 복음화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WEA 연대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교단 총회를 앞두고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 이슈 논란으로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세계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데 힘써 주기를 예장 합동측과 한국교회 각 교단 총회에 호소하고자 한다.   I. 한국교회는 기독교이후 시대에 지구촌 복음주의 연대의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WEA는 신앙적으로 매우 건전한 세계적인 복음주의 연합체의 모임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전 세계 기독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기독교회협의회(ICCC), 세계복음주의연맹(WEA)로 재편되어 진행되었다. 오늘날 세계 복음주의 계열의 연합으로는 세계개혁주의협의회(WRF), 미국복음주의협회 (NAE), 미국복음주의신학회(ETS),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등이 긴밀하게 유대관계를 맺으며 세계복음주의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들 기구들은 성경의 완전무오성(Biblical Inerrancy)을 비롯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분명하게 표방하는 국제기구들이다. WCC는 신학적으로 많은 변천을 맞으며 기구 공학적 연합방식과 자유주의 신학, 특히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수용 논란으로 인하여 영향력을 상실했고, ICCC는 부정적 사고(negative mentality)와 극단적 분리주의(radical separatism)로 흘러 이제는 유명무실한 국제기구로 전락했다. 이에 반해 WEA는 전 세계 6억의 복음주의 개신교 인구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계승하고 세계선교운동에도 큰 역할을 감당해왔다. 오늘날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130여년 만에 세계적 교회로 성장한 생동적이고 역동적 교회가 되게 하셨다. 한국교회는 지구촌 시대에서 세계기독교의 수호자로서 세계교회 안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를 위해서 합동교단의 WEA와의 교류단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II. WEA는 1846년 영국에서 10개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창설된 복음주의단체다.   WEA는 WCC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서 1846년 영국에서 설립되었다. 당시는 시대적 상황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한참 번창하는 시대요, 성경적으로는 독일로부터 밀려온 역사적 비판학(고등비평), 과학적으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으로 진화론이 시작하던 시기요, 정치적으로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적 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67)으로 공산주의가 일어나, 19세기 중엽 세계가 혼란하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영적으로 어두운 사상들이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던 시대에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성경적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고자 1846년 창립되었다. 진화론, 자유주의 신학, 공산주의 발흥에 맞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변호했다. 1900년대 중엽 까지는 이 기구는 일차적으로 창립멤버 기구인 영국복음주의 연맹(British Evangelical Alliance)이었다. 이 기구는 유럽과 북미에서 불규칙적인 지원을 받다가 1951년 21개국이 모여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라는 새 명칭을 갖게되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오늘날 WEA는 130여개 나라 교회들의 연맹이요 100개 넘는 국제 기구과 협력하는 세계적 복음주의 연합기구가 되었다. (자료: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ritannica, World Evangelical Alliance, religious organization. https://www.britannica.com/topic/World-Evangelical-Alliance).   1950년대부터 일어난 빌리 그래함의 복음화 운동은 복음주의 운동을 더욱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운동으로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20세기 후반에 형성된 또 하나의 괄목할만한 복음주의 운동은 1974년 로잔에서 시작된 「로잔 세계복음화운동」이다. 이러한 복음주의 운동이 모두 WEA와의 연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WEA의 신앙고백서는 예장 통합, 합동, 고신 교단의 신앙고백과 다른 것이 없다. 성령으로 감동된 성경의 완전 유기적 영감(plenary organic inspiration)과 완전무오설(plenary inerrancy),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대속의 죽음, 육체적 부활과 육체적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 구원과 성령의 거듭남, 성령의 역사, 구원 받은 자의 생명의 부활과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의 부활 등 예장 통합, 합동, 고신 교단의 신앙고백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III. WEA는 오늘날 신학적 이슈인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필자는 2013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 Asian Evangelical Alliance)에 AEA회장 김상복 목사(횃불 트리니티 명예총장)와 함께 한국복음주의 신학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필자는 AEA 신학위원장으로서 2013년 신학선언(AEA 2013 Theologcial Declaration)를 기초하였다. 2013년 AEA 신학선언은 ‘오늘날 세상과의 대화’ 항목에서 다음같이 선언하였다: ”교회는 타종교와 현대적 세계관과 대화함에 있어서 사도적 전통이 결정적인 것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라는 신앙이다. 따라서 본 선언은 타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한다. 그러면서도 타종교에 대한 포용의 자세를 견지한다. 교회는 다른 전통을 존중하면서 대화할 때 기독교 비전의 정합성과 매력성을 겸허히 설명해야 한다. 교회는 종교다원주의를 경계하면서 공동선을 위하여 다른 종교와 세속단체와 공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김영한, “1973 로잔의 개념, 현 시대 속에서 보다 구체적 천명,”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입력 : 2013.09.17. 21:21, 크리스천투데이). WEA가 WCC와 상당한 공동분모를 가지면서도 차별성이 있는 것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데 반하여 WEA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제시하면서 명료하게 결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WEA는 공동선을 위하여는 타종교와 협력을 한다는 점이다.   IV. 역사적 개혁교회는 분리주의 노선에서 탈피하고 세계적 복음주의 교회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역사적 기독교는 하나의 보편적 사도적 거룩한 교회(One Universal, Apostolic Holy Church)로서,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교제하고 신앙적인 교류 속에서 성장 발전해 왔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 등이 복음주의 연대 속에서 교류했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는 항상 분리되거나 도피하지 않고 이웃과 형제 사랑 속에서 세계선교와 복음화를 위하여 협력해왔다.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기독교학술원, 한국 로잔위원회,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한국개혁신학회 등은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연대 속에서 세계복음주의 운동에 함께 협력하고 있다. 로잔대회를 비롯한 선교운동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선교운동에도 WEA(세계복음주의연맹)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번 제 105회 총회에서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 단절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통에서 그동안 좋은 모범을 보여온 예장 합동교단이 만일 WEA와 단절하고 교류를 중지하게 된다면 예장합동은 해외 선교 활동에 있어서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합동 총회와 교단은 한국교회의 보수 복음주의를 대표하여 국제적으로 보수 복음주의 기관과 연대를 강화하고 해외 선교를 선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내적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는 보수 복음주의 교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대한민국을 복음화해서 남북통일과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IV. 예장 합동 총회의 결정은 한국교회 선교단체와 신학자들의 세계교회 복음주의단체와 연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WEA는 약 6억 명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연합체이다. 현재 7개 대륙 복음주의연맹들이 있고 129개 교단과 국가별 연맹들, 대학생선교회(CCC), 국제기독학생회(IVF), 월드 비전(World Vision), 컴패션(Compassion) 등과 같은 150개의 선교단체들이 회원 기관으로 가입해 있다. 성경이 오류가 있다는 유오설(有誤說)에 맞서 성경의 완전영감과 완전무오사상을 천명한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의 시카고 성명서(The Chicago Statement)을 작성해 낸 신학자들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미국복음주의협의회(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미국복음주의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같은 복음주의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장합동총회가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교류단절을 결의하거나 재론한다면 이것은 한국교회 내의 보수 복음주의 진영을 혼란스럽게 할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수호하고 성경적 가치를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한국교회와 세계복음주의 선교단체와 신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큰 흐름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V. 예장 합동총회는 세계복음주의 연맹 등 세계복음주의교회와 신학적 연대를 강화할 때다.   예장 합동은 한국교회 안에 보수 복음주의 연대를 해오며 한국교회의 보수 복음주의의 성장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한국교회를 성경적 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지도록 하는 일에 선구적 역할을 감당했다. 지금은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이 도전과 세속화의 거센 물결 앞에 선 한국교회는 보수 복음주의 세력이 함께 연합하여 힘을 모아 맞서야 할 때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예장 합동이 제105회 총회(2020년 9월)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와 교류 단절을 결정하거나 재론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4년 동안의 많은 논의와 연구를 거쳐 2019년 104회 총회에서 ‘WEA(세계복음주의연맹)는 합동교단의 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교류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총회 신학부의 보고를 받기로 총대들이 신중하게 결정한 사항을 1년도 지나지 않아 재론하는 것은 결코 예장 합동 총회는 물론 한국교회 전체의 복음주의 연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보수 복음주의 신학자 연대, ‘WEA(세계복음주의연맹)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2020년 9월 11일, 김철영 기자 기사입력: 2020/09/12 [05:59] 최종편집: ⓒ newspower). 만일 재론하여 탈퇴하고 교류를 끊는다면 이는 보편적 거룩한 사도저 교회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몸에서 자신을 잘라내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라는 기대한 역사적 문명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역사적 기독교의 사명을 망각하는 것이다.   맺음말   2005년 예장합동이 개혁측과 연합하고 이번 총회에서 구 개혁 측 출신 첫 총회장이 될 소강석 목사는 그동안 한국교회 연합에 있어서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번 제 105회 총회에서 아름다운 리더십을 통해 이번 예장합동이 고립주의나 분리주의가 아닌 보수 복음주의 연대를 통해 오늘날 지구촌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한다. 분리주의 길은 역사적 기독교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4세기에 로마 박해시 배교자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공교회를 떠난 도나티스트들(Donatists)의 분리주의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다. 역사적 개혁교회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기독교 교단들과 교류를 하는 것이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인 보편적 거룩한 사도적 교회에 소속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장 합동이 WEA(세계복음주의연맹)과 교류를 끊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계복음주의운동에 헌신하고 공헌하는 영향력 있는 국제적 교단으로 도약하고, 참으로 훌륭한 세계적인 신학 및 목회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교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09-15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6
      기독교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적 무신론 비판하기(1)   기독교 창조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① 우리 우주(하늘과 땅)를 창조하셨고, ②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고, ③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세 가지 믿음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것은 창세기 1장에서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 창조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확산은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과학적 무신론과 생존을 건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논쟁의 성패는 자기의 주장을 사실적으로 잘 논증하고, 상대의 주장에서 허위 사실을 어떻게 잘 비판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의 세 가지 믿음을 토대로 하는 기독교 창조론의 관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을 비판해보기로 한다.   ① 현대물리학과 양자이론이 우리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그것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빅뱅우주론이다. 빅뱅우주론은 우리우주의 물질과 물리법칙이 빅뱅의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빅뱅우주론을 제대로 알면 우리 우주의 창조와 관련한 논쟁의 핵심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는 빅뱅우주론을 하나님이 우주 창조론의 방법으로 사용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이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빅뱅우주론에서 ‘특이점’ 이론이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한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한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물질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과학의 토대이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 에너지 총량이 영원불변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빅뱅우주론에서 ‘특이점’ 이론은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우주의 물질이 아주 작은 점 하나의 크기로 응축된 ‘특이점’ 상태로 있었으며, 그것이 빅뱅의 재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의 ‘특이점’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한 것이다.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E=mc² 상태로 보존된다. 그렇다면 빅뱅은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한 에너지 총량의 일부가 우리우주의 물질을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E=mc² 상태로 보존된다.   기독교는 우리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빅뱅우주론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라도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반하는 특이점’ 이론은 배척해야 한다. ‘특이점’이론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빅뱅의 원인자이신 창조주의 존재를 가리려는 허위 이론이기 때문이다. 사실 빅뱅 이전에 에너지가 인력에 의하여 ‘특이점’으로 응축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 인력은 빅뱅이 만들어낸 물질에서 발현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전화(轉化)를 작동하는 원인이 없다면, 영원히 보존될 뿐이다. 빅뱅우주론에서 빅뱅을 작동한 원인자(原因者)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기독교가 우리우주를 만들어낸 빅뱅과 빅뱅 이후 만유인력 등의 물리 법칙들이 작동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면, 과학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그 원인을 하나님의 창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과학이 그 원인자이신 ‘하나님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거나 ‘간격의 하나님이냐?’라고 반문한다면, 기독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출3:14)라고 대답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신 하나님은 빅뱅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고, 바로 빅뱅의 원인자이시다. 빅뱅이 과학적 사실이고, 그 원인자의 존재가 필연적 조건이라면, 그 원인자로 인정할 수 있는 존재는 기독교가 우리우주의 창조주로 설명하는 하나님밖에 없다.   과학주의 시대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열역학 제1법칙이나 빅뱅우주론 등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시다. 빅뱅은 하나님이 우리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에너지를 물질로 전화한 사건이다. 그런 설명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 신화의 신 ‘히데스’(음부)의 열쇠를 자신이 가졌다(계1:18)고 하신 것과 같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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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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