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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사 통신] 오키나와 종단선교 성공적 완수
      지난 여름 오키나와 성서신학교 주최로 오키나와 종단 선교가 있었다. 오키나와 최북단에서 중부까지를 하루에 평균 17-8킬로미터, 총 120여 킬로미터를 걷고, 오후에는 각 지역 교회의 전도를 돕는 훈련이다. 걷는 동안 침묵하며 오직 주님과의 교제에 집중하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취지였다.   신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메구미 자매를 격려하기 위해 곽 선교사도 함께 참석했다. 발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파왔지만 자연에 가득한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깊은 기도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오키나와 선교사로서 이 땅을 속속들이 밟으며 축복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은 큰 특권이었다. 메구미 자매도 주님의 은혜로 힘든 훈련을 넉넉히 감당해 냈다. 오키나와의 무더운 날씨 가운데 때를 따라 구름과 비를 보내 주신 주님의 세심한 사랑 가운데, 지칠 때마다 말씀과 찬양으로 힘을 얻었다는 자매의 간증을 들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코로나가 진정되어 일상이 돌아왔던 오키나와는 7월 말부터 감염이 급증하여 결국 8월 한달 동안 독자적인 ‘긴급사태선언’을 했다. 하지만 관광업이 주산업인 이 곳 특성상, 주민들에게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면서도 관광객들을 막지는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9월부터 일상이 회복되었지만 10월 중순 현재 확진자 수가 2천 9백 명을 넘은 상태로 일본 전국적으로 보아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참고로 오키나와 인구는 우리나라 대전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감사한 일은, 이런 상황에도 오키나와의 많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워낙 교회 수도 크리스천 인구도 적어서 지금까지 교회에서 감염이 일어난 케이스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가 소수로 모이다 보니 감염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도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아이노 교회에서도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소수 정예 멤버들이 모여 주중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하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회들과 일본 대도시 교회들의 현실을 생각하며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못 하게 된 것들이 많지만, 잊을 뻔했던 ‘한 영혼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며 인내와 지혜를 겸손히 구하게 됩니다.   전세계 성도들이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 더욱 주님을 사모하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 이 때, 먼저 우리의 영을 정결하게 회복시키실 주님을 바라본다.   아이노 교회 주일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2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나오던 친구가 6학년이 되면서 교내 농구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염려는 현실이 되어 주일에 다른 학교와의 시합 때문에 예배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 교회에 오던 또 다른 친구도 배구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못 오고 있다. 둘 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중학교에서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믿음을 지켜 나갈지 애타는 마음이다.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주님 안에서 계속 자라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다.   10월 마지막 주일에 아이노 교회 창립 12주년 감사예배를 드린다. 깨어짐과 실수투성이의 시간들이었지만 저희는 참 행복한 주님의 동역자임을 고백하게 된다. 늘 신실하게 앞서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과, 뒤에서 든든하게 기도해 주시는 동역자님들의 존재에 깊이 감사드린다. /곽한상·김세영 일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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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무차장 신동현목사
        “울란바토르의 도시빈민 문제는 기후문제와 연관 있다” 동아시아 강국들의 산업화가 몽골의 생태계 파괴 원인   (사)푸른아시아는 2002년 (사)시민정보미디어센터란 이름으로 설립되어 2008년 법인 명칭을 변경하고, 외교통상부에 사단법인과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다. 이후 동 단체는 기후변화로 인해 몽골이 점진적으로 사막화되어 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무차장 신동현목사(사진)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원래 50만명의 인구가 살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이지만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재는 150만명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70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게르촌을 형성하여 과거 우리나라의 판자촌 주민들과 같이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몽골의 도시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몽골은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사회주의혁명’을 성공하여 1990년대까지 사회주의정부가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가 들어서면서 몽골의 가축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그 수가 6,000만에 이르게 되었다. 규제가 풀리자 자본가들은 유목민들에게 캐쉬미어펀드를 빌려주어 염소를 키우게 유도했고, 이에 많은 유목민들이 반응하여 대출을 받고 대량의 염소사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몽골의 인구는 300만명인데 가축수가 6,000만을 넘는다. 하지만 이미 기후온난화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몽골에서 이정도 숫자의 가축을 사육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많은 유목민들이 염소사육에 실패해 전 재산을 탕진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모여들어 게르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목사와 동 단체는 그들을 빈민이 아닌 기후환경난민이라 칭하며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유목민들이 정상적으로 가축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 되도록 몽골의 생태계가 파괴된 이유는 유목민들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몽골 주위의 동아시아 강국들이 산업화되는 과정 속에 이미 몽골의 자연은 함께 파괴되었다. 더구나 초원이 사라지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외부 자본가들은 유목민들을 돈으로 현혹했다. 그리고 대출받고 축산업에 실패한 유목민들에게 그들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실패의 책임을 전가했다.   대도시의 기후난민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신목사는 “몽골인들에게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해 교육을 하고, 그들이 유실수를 심어 과실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수입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과실을 가공품으로 만들기 위해 공장을 짓고 있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무한경쟁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합 활동들에 대해 교육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마을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목사는 동 단체가 단순히 나무만 심는 곳이 아닌 몽골의 지역사회에 사람들을 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새롭게 건설한 산림과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일은 더욱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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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전대경박사 기독교학술원서 주장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분석해 은사중지론의 문제점 지적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끼워 맞추어서는 안 된다”   전대경박사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좥케직(Keswick) 사경회의 은사 지속론적 성령이해에 대한 개혁신학적 정당성 탐구좦란 발표를 통해 온건한 기적지속론적 ‘케직 성령론’의 개혁신학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전박사는 먼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 나타난 그의 ‘기적’과 ‘방언’ 이해를 살피며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칼빈이 기적지속론자였음을 보였다. 다음으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 판본들을 비교해 봄으로써, 칼빈이 기적에 대한 자신의 노선을 전회한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기적지속론을 주장했음을 보였다. 또 루터와 어거스틴의 ‘기적’과 ‘방언’ 이해를 다룸으로써, 루터와 어거스틴도 기적지속론자였음을 보였다. 이를 통해, 기존의 개신교 정통주의 혹은 (구 프린스턴 학파의 은사중주의적) 개혁전통은 그동안 ‘기적’ 및 ‘방언’과 관련하여 개혁신학을 곡해 및 오해해 왔음을 보였다. 전박사는 “따라서 기존의 개혁신학적 성령 이해와 웨슬리안적 성결의 성령 이해, 그리고 오순절적 성령 이해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이들과 꼭 같지는 않았던, ‘케직 사경회의 성령 이해’의 개혁신학적 정당성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고 주장했다.   전박사는 이어 “칼빈, 루터, 어거스틴이 기적을 초대교회 사도시대에만 국한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이후에 성령의 은사와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들의 의미는 정경 이전에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공개적으로 그리고 강권적으로 임하신 오순절적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말한다”며, “그래서 이들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성령 하나님은 국지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당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이해했다. 즉 은사를 ‘말씀의 전파’와 떠나서 남용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은사가 완전히 중지되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또 “칼빈, 루터, 어거스틴의 ‘기적’과 ‘방언’에 대한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은 오늘날 기적이 완전히 중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적 중지론’과 방언이 구원의 유일한 표식이라고 주장하는 ‘은사지상주의’ 양측을 모두 꼬집어 지적하는 것으로 들린다”며,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는 방언도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며, 전자의 입장에서 후자는 마귀 방언을 하는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칼빈, 루터, 어거스틴은 양 극단 모두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지론적 칼빈주의 개혁신학에서는 이제 더 이상 ‘오늘날에 성령의 은사와 기적은 중지 되었으며 방언을 포함한 그러한 이적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약 (루터와 어거스틴을 포함하여)칼빈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말이다”며,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도 수차례 지적한 것처럼, 칼빈으로 하여금 마귀방언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순절신학(특히 은사지상주의)에서도 ‘방언이 구원 받았다는 성령 세례의 유일한 초기적(the initial) 증거다’라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후르타도(Hurtado)가 정확히 지적하는 것처럼,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았다는 유일한 표식이 방언이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며, “그 교리를 주장하는 집단 전체는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반성경적이기 때문에, 잘 해야 기독교 분파주의로 취급될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 이단/사이비로 취급받을 위험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박사는 ‘증거본문삼기(proof-texting)’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즉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자들인 정통신학자들의 글들을 해석해야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과 정통신학자들의 글들을 ‘의도적으로’ 증거본문삼기 해서는 안 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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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0-10-2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2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3)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물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생명이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물질에서 생명이 생겨난 것이라면, 생명체는 분해와 조립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생명체를 물리적으로 조립하거나 분해하는 실험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질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거나, 영생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이 물질적으로 영생의 방법을 찾는 실험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은 생명체의 정보인 DNA 구조를 분석해서 디지털 정보로 저장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각 부분의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서 생명체의 부품들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품들을 살아있는 생명체에 부분적으로 이식하거나 교체해서 복합(hybrid)새명체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부품들만으로 조립해서 인공생명체를 완성한다고 해도, 그것에서 생명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인공생명체의 물질적 구조만으로는 의식(정신 또는 영혼으로 불릴 수도 있다)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를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물질적 구조와 의식을 가지고 열역학 제2법칙에 저항하면서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체가 열역학 제2법칙에서 규정하는 엔트로피 증가에 저항하는 힘은 생명현상의 발현인 의식에 있다. 의식은 그 생명체의 첫 활동을 작동시키고, 그것의 생명 활동을 끝까지 기억하는 정체성을 가진다. 의식은 활동하지 않는 무의식 상태에서도 생명체에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 의식이 죽으면 생명체도 죽고, 생명체가 죽으면 의식도 죽는다. 따라서 영생은 뇌에서 발생하는 의식이 정체성을 가지고 영원히 생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 생명체의 처음 작동에서부터 연결된 의식을 어떻게 영원히 유지하느냐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부품들을 갈아 끼울 수 있는 복합생명체를 만들어도, 그것의 영생은 의식을 보존하는 기술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영생을 꿈꾸면서 천하 각지에 불로초를 찾는 사신들을 보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황제의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려는 그의 욕심은 생전에 화려한 지하 궁전을 만들어서 지금은 진시황릉이라 불리는 세계적 관광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끝났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물질에서 인공생명을 만들겠다고 허풍을 떨었다가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뇌 의식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을 실현하겠다는 ‘뉴럴링크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여 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뇌 의식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할 수 있다는 말에 미혹된 현대인들이 그런 프로젝트에 거액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 역시 죽음을 회피하려는 생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 의식을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방법은 의식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해서 뇌와 같은 저장장치에 저장하거나, 아니면 다른 생명체의 의식을 빼내고 계속 갈아 끼우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그 두 가지 방법의 가설에 대해 이제 겨우 실험에 착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만약 그런 방법들이 가능해진다면, 타인의 생체를 약탈하려는 범죄가 인간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과학이 의식의 문제에 부닥친 장벽은 의식이 뇌 물질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의식 자체는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비물질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과학이 생명체의 물질과 비물질의 연결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과학이 그동안 인공생명의 제작에 실패한 것처럼, 과학적 영생 프로젝트도 실패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영생의 꿈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인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에 인간에게 영생을 이미 주셨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잊어버림으로써 그 영생의 끈이 끊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이긴 자들에게 다시 영생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친히 함께 계실 것이다(계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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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1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2)   현대문명을 이끌어가는 힘은 과학이다. 과학은 쉬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새로 발견한 과학 뉴스와 그 공로를 인정받은 과학자들의 노벨상 수상 소식 등은 언론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현대과학 뉴스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뉴스들은 대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관점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주류 과학자들은 창세기에 쓰인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상당수의 현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는 과학을 부정하면서 사회생활에서는 과학을 인정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거나, 교회를 떠난다. 과학을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이들에게도 현대과학을 부정하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현대사회에 부적응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과학주의 사회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삶은 결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과학을 부정하는 행동을 요구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학문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우주의 물리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그것을 초월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 생물의 생명법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생명의 종류별 기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창조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하신 일들은 과학과 기독교를 통섭하는 관점에서 연구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 진정한 통섭적 관점에 이르면, 열역학 제1법칙이 입증하는 영원불변의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있는 자’(출3:14)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구에서 인간과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물질에서 저절로 생겨나 진화한 존재이고, 그의 의식은 물질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몸이 죽으면 의식도 당연히 죽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권력과 부의 축적에 성공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오히려 영생하는 방법을 더욱 간절하게 찾고 있다. ‘뉴럴링크 프로젝트’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바로 영생의 가능성이다. 세계 영화 배급업체 넷플릭스가 드라마로 제작한 SF [얼터드 카본, Altered Carbon]을 보면, 카본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그의 의식을 디지털 저장 장치(stack)에 저장하여 타인의 신체 또는 로봇에 이식 또는 조작하면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일본판 에니메이션 [얼터드 카본: 리슬리브]의 스토리는 한 야쿠자 조직이 초대 두목부터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는 전통을 이어왔으나, 사실은 초대 두목이 후계자를 죽이면서 ‘스택’에 저장한 자기의식을 죽은 후계자의 뇌에 계속 이식하는 방법으로 영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런 SF 영화들이 유행하면서 현대인들은 과학의 힘으로 영생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모르는 인간들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얼터드 카본]이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의식이 카본 화합물 따위라면, 물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한 오파린과 크레이그 벤터 등이 왜 단세포 박테리아 생체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100년 세월을 허송했겠는가? ‘뉴럴링크 프로젝트’ 역시 물질만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한 생명체를 물질로 환원할 수 있다고 미혹하는 사탄적 기만이다. 의식을 발화하는 뇌 신경을 로봇에 연결하거나 전송하는 ‘뉴럴링크 칩’, 또는 저장 ‘스택’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짐승의 표(계13:16)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통섭적 관점을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속에서 영생의 소망을 이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장성(고전 13:11)하지 못하거나 사탄의 미혹에 빠진다면, 그의 소망은 헛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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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0-10-27
  • [선교사 통신] 일일 신규 확진자가 수천명에 달해
    I국은 코로나19 봉쇄기간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가 수 천명에 이르고 있다. 세속적인 유대인 그룹은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로, 전통종교인 마을에서는 장막절 모임과 유명 랍비 장례식 모임으로, 아랍 마을에서는 결혼식으로 많은 인파가 모이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와 기도 모두 자신의 집으로부터 1KM반경 안에서만 허용되지만, 여전히 회당 중심으로 기도 모임이, 그리고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네타냐후의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불만과 비리 혐의로 인해 네타냐후의 지지율은 20년이 넘는 정치생활 중 가장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외교적 성과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레바논과 해양 경계를 논의하겠다고 깜짝 발표한데 이어, 아랍에미레이트와의 비즈니스 협력 미팅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요르단은 평화협약의 일환으로 I국에게 영공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은 I국 종단 전도(해변길, 중앙산악지대, 왕의 대로)를 마친 후 I국 횡단 전도를 허락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I국의 잃어버린 양떼를 향하여 전도의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셨다. 그래서 I국 지도의 동서로 된 도로를 파악해 보니 7개 정도의 큰 도로를 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드디어 I국 북쪽 국경, 레바논을 마주대하는 마지막 동서도로를 차를 타고 다니며 버스 정류장에 멈추어서 전도지를 부착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오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전도지를 읽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를 원했다.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전도지를 읽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를 원했다.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전도지를 읽는 사람이기를 소원했다.   이번 전도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첫번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오늘도 한 영혼을 간절히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매일 확진자 수천명이 발생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을 뚫고 나아가야만 했다. 물론 비대면으로 하지만 I국 북쪽의 각 도시 상황은 거의 대부분 신호등으로 분류한 빨간색 부류에 들어갔다. 각 도시를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나 I국의 잃어버린 양떼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은 능히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셨다.   두번째,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동역’이었다. 첫날 우리들이 I국 북쪽을 잘 알지 못했을 때, 하이파에 사시는 동역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I국 북쪽 전도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차량 두 대를 동원하여 전도지를 버스 정류장에 부착하며 협력하여 전도를 할 수 있었고, 다음 지역의 도시들을 효과적으로 접근하도록 안내를 받았다. 저녁에는 하이파에 사시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사랑으로 준비한 저녁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다. 이렇듯 작은 부분에서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동역을 배울 수 있었다. /왕아브라함 박사라 중공I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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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1
  • 데스타여행사 송정권대표
      솔로몬 후예이자 법궤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 5회 인천과 에티오피아를 왕복하는 직항노선 운영   데스타여행사(대표=송정권)가 인천에서 에티오피아 직항노선을 주 5회 운항하며 성경에서 ‘구스’로 호칭되는 에티오피아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동 여행사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나라 중에서 성경에 그 이름이 나오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사도행전 8장에는 기독교 초기 전도자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시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는 ‘시몬 바코스’로 그 이름이 불린다”며, “한편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 ‘구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그리스어인 ‘에티오피아’로 번역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구스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다. 히브리어로 구스는 그 뜻이 ‘검은 사람들’이다.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어로 ‘검은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아랍어로는 검은 사람들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한다”면서 “70인 역의 영향을 받은 킹 제임스 버전은 구스 대신 에티오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에티오피아 성경도 마찬가지이기에, 창세기의 에덴동산에 있던 기혼강은 에티오피아 버전으로는 에티오피아 땅을 둘렸고, 모세는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에티오피아(구스)는 △자신들을 솔로몬의 후예라고 부르기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 △모세의 법궤를 보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나라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나일강이 출발하는 나라 △1,700년의 유구한 기독교 역사를 가진 나라 △한국전쟁 당시 지상군을 파병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던 나라 △원시 부족이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개혁 전통의 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 △커피가 시작된 나라 등으로 알려져 있다.   1968년 국빈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는 자신을,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아들로서 에티오피아(악숨)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므늘리크 1세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했고, 이에 에티오피아 왕조는 ‘솔로몬 왕조’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에티오피아는 구약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른다. 소, 양, 염소 등은 먹되 그 외의 다른 짐승은 절대 먹지 않는다. 자신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당나귀나 말과 함께 굶주렸던 시대가 있었다. 일주일에 이틀 금식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예배당을 지성소와 성소로 구분한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각각의 지성소 안에 법궤를 보관하고 있다.    한편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에 지상군을 파병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던 나라이기도 하다. 동 여행사는 “에티오피아는 먼 동쪽,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며, “단지 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주변 나라가 도와야 한다는 하일레 셀라시에가 주창했던 명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국제연합의 파병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1951년부터 3년에 걸쳐 6037명의 군인을 파병하였고, 253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536명이 부상, 122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단 한 번도 패전한 전적이 없고 포로도 단 한 명이 없이 용감히 싸웠다”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은 그들이 잘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그 백성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다. 한국이 어려웠을 때 도왔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다. 서로 어려울 때 돕는 사이가 진정한 형제요, 이웃이다”고 강조했다. 
    • 신학/선교
    • 해외선교
    2020-10-21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X. 개혁주의적 영성신학 제시: 초연 아닌 헌신의 태도,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합 강조   1. 기독교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   1987년 3월 9일 패커는 도쿄기독교신학원(Tokyo Christian Institute) 졸업식 강연을 했다. 패커는 이 강연에서 신학이 학문으로 머물지 않고 신앙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성찰했다. 그는 오늘날 유럽의 자유주의적 강단 신학에서 신학과 기독교적 삶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교육과정들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학문적인 이슈만을 다루어, 기독교적 삶의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신학생들을 복음 전도자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지식인 내지 회의자가 되도록 한다. 많은 신학생들이 신학을 하고 졸업을 한 후에 신학하기 전보다 하나님을 더 멀리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신학교육 컬리큐럼에서 기독교 신학 공부와 기독교적 삶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신학적 지식과 연구가 신앙적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교과과정이 기독교적 신앙과 삶을 다루기보다는 단지 학문적인 이슈들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패커는 초대교회시 신약의 복음서나 서신서들이 쓰여진 이유는 이것들이 단순히 기독교를 개념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삶에서 따르는 제자들을 만들기 위하여 쓰여졌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1970년대 복음주의자들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아니했다. 하지만 패커는 신학과 삶을 연결시키는 용어로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패커는 영성 단어를 기독교적 진리를 삶에 적용시킨다는 의미에서 청교도 개념에 가까운 현대적 등가어로 보았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1968년부터 사용했고,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영성신학”이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조직신학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패커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 성취, 진작하고자하는 여러 가지 기독교적 활동에 대한 탐구, 그 활동에는 공예배, 개인의 기도, 그리고 이러한 경건활동에 실체적인 기독교적 삶에 미치는 결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영성 정의(定義)는 진리를 생활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패커 자신이 중요시하여 왔고 그렇게 신학적인 활동을 하고 그렇게 살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청교도로서 자신이 청교도적 삶을 살기를 노력했다.   2. 체계적 영성: 초연(超然) 아닌 헌신의 태도   패커는 1989년 리전트 칼리지 상우 유통 치(Sangwoo Youtong Chee) 석좌교수 취임강연에서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의 조직신학의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감정과 생각들을 다루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주관적으로 정향된 자유주의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 이러한 신학은 신학의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다루는 것으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은 19세기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불트만을 거쳐 캅((John B. Cobb)의 과정신학자들에까지 이르는 인간중심의 신학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된 성경적 진리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객관적으로 사실에 정향된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하여 지지를 보낸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신학 유형으로 정통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의 유형은 단지 냉정하고 초연함(detachment) 속에서 진행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을 개념화하고 자료들을 마치 일반 과학적 자료들처럼 취급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사유의 결과는 성경을 주해하는 계시신학의 차원에서 이탈하여 이성적 사유가 하나님의 진리를 지배하고 구성하는 사변신학으로 나아감을 초래한다. 이러한 신학의 학문적인 체계화 작업에 대하여 패커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초연한 태도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사유 개념이라는 상자 안에 가두고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커는 “작지만 중요한 수정”을 가한다. 그의 수정이란 초연함이 아니라 헌신(commitment)의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패커는 헌신의 태도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 상대자로 다루고 인간의 사고 틀 속애서 하나님을 사변하는 데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계시적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를 추구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헌신의 태도는 이성적 사유가 지배하기 보다는 성령의 조명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헌신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적 지식(knowledge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지식(knowledge of God)이 추구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태도 속에서 그분을 묵상하고 그를 향한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단지 머리로 아는 이론적 지식은 하나님을 마음과 영혼으로 아는 인격적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서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중세의 최고의 신학자인 토마스의 문장을 인용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의해 가르쳐 지며, 하나님을 가르치며, 우리를 하나님에게 인도한다”(theologia a Deo docta, Deum decet, ad Deum ducit).   3.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천명: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   패커는 신학의 방법으로 영성신학을 제안하면서 이를 위하여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을 제안한다. 조직신학의 사유는 영성의 태도 속에서 실행되어야 하고 영성의 태도는 조직신학적 사유의 표현으로 견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양자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신학적 사유와 경건한 탐구는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 되며 하나님을 개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패커는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에 대한 실례를 다음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전한 영성은 철저히 삼위일체론적이 되어야 한다. 건전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세 위격 모두에게 온당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성부를 무시하면 성부의 예정과 예지를 무시하게되고, 그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신앙, 하나님의 사역과 훈련을 상실하고, 하나님 가정 안에서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여 게으르고 버릇없는 신자가 된다. 성자를 무시하면 성자의 중보와 속죄, 천상에서의 간구를 상실하게 되어 율법주의에 떨어지게 된다.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께서 창조하시는 성부와의 교제, 인간 본성의 새롬게 하심, 확신과 기쁨,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패커는 하나님에 대하여 삼위일체론적으로 균형잡힌 신학적 사유를 하고자 제안하고 있으며, 이는 아주 올바른 방향이다.   패커는 교실과 강의실에서만 통용되는 강단신학을 거부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과는 동떨어진 학문적 정직성에 입각하는 신학을 하게될 때 신학은 지성은 만족시키나 신앙과는 괴리(乖離)되게 된다. 불트만의 경우처럼 신약의 비신화론화라는 지성적 이해만을 만족시키고자 함으로써 탈교회적, 탈신앙적 신학이 결과된 것이다. 보수정통신학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하나님 지식을 체계화하고 알지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과 분리될 때 무용지물이 된다. 영성으로 표현되지 않는 신학은 신앙적 삶과 괴리되어 무용지물이 된다. 패커는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하다고 역설하였다.   패커는 기독교 이후 시대 진정한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자로서 학문적 신학을 수행하는 학자로서 신학이 나아가야할 진정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진정한 신학은 영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패커의 영성신학 개념은 현대를 살았던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그가 우리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성신학,”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신앙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이라는 패커의 용어들은 기독교 이후의 삶을 맞이하고 있는 구미(歐美)신학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전통으로 복귀하는 신학의 진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패커는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리는 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영성”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영성신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였고, “조직신학의 구체적인 적용,”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이라는 신학적 개념까지 제시한 것은 그가 신학적 방법에 있어서 단지 이성을 사용하는 정통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신학적 경건의 열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성신학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 패커는 단지 은사주의자들이 주구하는 신비주의로 나아가기를 주장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적인 인간의 경건훈련을 강조하는 신인협력설로 나아가지 않고, 성령을 좇는 삶, 성령 안에서 경건을 추구하는 성경적 영성훈련을 강조한 것은 그로 하여금 시종일관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남아 있도록 하였다.   X. 정통 개혁신학 입장 제시   패커는 “될 수 있는 대로 논쟁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논쟁의 중심이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런 논쟁 상황에서 패커는 대개 성경적이고 정통주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같은 성공회의 복음주의적 ‘학자인 목회자(scholar-pastor)’였던 존 스토트보다 좀 더 온건하고 정통적 입장을 대변했고, 신학적으로 정통파 개혁신학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곳곳에서 잘 제시한 신학자(theologian)였다. 패커는 항상 매우 조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 성공회) 안에서 개혁신학적 목소리를 강력하게 외친 사람 중 하나였다. 역사신학자 마크 놀은 패커의 개혁신학적 성향이 성공회적이며, 복음주의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어법은 영국적이며, 정서는 복음주의적이다. 패커의 복음주의적 유별한 특성은 그의 교육, 그의 칼빈주의, 그리고 그의 성공회주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결합은 아주 비역사적, 거의 비전통적인, 자주 반지성적인 복음주의가 미국 역사에서 고통을 당했던 과도함에서 벗어나게 했다,”(Mark Noll, "The Last Puritan," Noll’s contribution to Doing Theology for the People of God: Studies in Honor of J. I. Packer, edited by Donald Lewis and Alistair McGrath, InterVarsity Press, 1996).이러한 마크 놀의 평가는 패커의 균형적 정통주의적 개혁신학에 의하여 그가 천명한 복음주의는 그동안 복음주의가 빠질 수 있었던 아주 비역사적 정향, 그라고 거의 전통 무시함, 자주 반지성적 정향에서 벗어나는 과격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았다.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옛 청교도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신자들에겐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채찍질했다. 패커는 칭의 논쟁에서도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역설했다. 패커는 특히 신론과 구원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리하여 형벌을 받으셨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둘다 강조하고, 신학의 모든 측면에서 개혁신학의 강조점을 잘 드러냈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였다. 패커는 그의 저서 『복음전도란 무엇인가』에서 칼빈주의가 중심교리롤 천명하는 구속론적 입장(the soteriological position)을 견지했다.   패커는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 속에서 성경의 무오한 권위를 지켰다. 1977년엔 R.C 스프롤, 존 게르스트너, 노먼 가이슬러, 그레그 반센 등과 함께 국제성경무오협회를 구성했다. 이는 1978년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시카고 선언(Chicago Statement, 1978)을 끌어낸 기초가 됐다. 패커는 1978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성경의 무오성을 위한 국제협회’(The International Council for Biblical Inerrancy)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학계의 유행을 말하자면 로마 가톨릭이 제2바티칸공의회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해 왔으나 그 이후에는 구교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신교의 회의주의에 대규모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이제는 구교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입장은 소수파의 입장이 되어 버릴 것으로 보인다.” 패커는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에서의 10년간의 리더십을 만족스럽게 되돌아보며, “무오에 대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피력은 패커가 최선을 다했던 여러 이유를 설명해준다. 패커는 성경의 본질과 해석,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같은 수많은 신학적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복음주의 선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과거를 바라본 전통주의자였다.   마크 A. 놀은 “패커는 칼빈주의자로서 무게 있는 신학적 전통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진정한 신학의 전통을 이루어 왔던 서너 개의 우파들을 아우르는 학문적 심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노작들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자기의식이 뚜렷한 개혁주의 신학이다. 패커는 주의 깊은 주석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에 대한 확고한 수호자, 자기의식이 뚜렷한 해석학적 이론가”라고 말한다.   패커는 2000년 제자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학 속에 청교도 신앙과 정통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증언하였다: “나의 신앙 형성에는 칼빈과 청교도들이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칼빈과 청교도들에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한 손에는 정통성과 진리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 제자의 도가 있다. 이제 이것은 나의 삶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며 체계적인 신앙 지식 추구를 주문했다. 대표작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비롯해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기독교 기본진리』, 『청교도 사상』 등 300여권의 책과 사전 편집, 기고글 등이 있다. 그는 ESV성경의 책임 편집자를 역임했다.(계속)
    • 신학/선교
    • 신학
    2020-10-19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0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1)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유물론자와 진화론자, 그리고 그 이론들을 결합한 과학적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에서 밀리고 있는 동안에 과학기술은 보라는 듯이 로봇(robot)과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개량한 인공지능(A.I.)을 로봇에 탑재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휴머노이드는 인터넷과 연결하여 세상의 모든 정보를 습득 또는 교환할 수 있는 로봇이다.   한편 미국에서 일런 머스크가 세운 테슬라사는 항공기 운항에 쓰는 오토파일럿(Autopilot)을 개량하여 지상에서 운전자 없이 자율운행(FSDC; Full Self Driving Capability)하는 자동차를 금년 중에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율운행 자동차의 완성은 주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딥 러닝(deep learning)한 A.I. 로봇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런 로봇들과 공생하는 사회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거의 모두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런 우려를 비웃듯이 일런 머스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로봇에 연결하는 뉴럴 링크(Neural Lin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머스크에 의하면 뉴럴 링크 로봇은 인간의 일 처리 능력을 딥 러닝 A.I.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징은 뇌 신경망에서 발화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다른 생물과 특별히 구별된다. 인간의 뇌 신경망에서 발화하는 의식을 로봇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특수하게 개발된 뉴럴 링크 칩(neural link chip)이 필요하다. 뉴럴 링크 칩을 개발하는 머스크의 뉴럴 링크회사는 최근 살아있는 돼지에 실험하여 일말의 성과를 거두었고, 곧 인간의 생체 실험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인간의 뇌 + A.I. 로봇’으로 구성되는 뉴럴 링크 인간 또는 뉴럴 링크 사이보그(Cyborg)는 살아있는 인간과 A.I. 로봇의 합성체를 만드는 것이다.   일런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인공생명 제조 실험을 했던 크레이크 벤터가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생명 제조 실험의 성공은 과학적 무신론자 생명의 기원이 물질의 화학작용이라는 오파린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머스크가 인간의 뇌 기능을 A.I. 로봇에 연결시켜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역시 과학적 무신론자의 관점이다. 그런 합성체 인간은 다양한 조합을 가질 수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반(半)인간 반(半)기계’로서 신의 경지에 이른 변종(變種) 인간이다.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 [메트릭스]와 일본 만화작가 시로우 마사무네(士郞正宗)의 『공각기동대』, 그리고 리처드 K. 모건의 SF 소설 『얼터드 카본』 등에서 묘사한 미래사회에서는 오히려 일상적인 개념이다. 그런 SF에서 인간의 영혼 또는 정신은 이미 메모리 칩, 스택(stack), USB 등의 컴퓨터 보조기억장치에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어 있고, 아무 인간의 몸에나 이식, 또는 교체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미 많은 SF의 공상(空想)을 과학이 실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인은 과학이 만능(萬能)이라는 관점에서 정신과 몸을 서로 바꿔가면서 영생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거나 자연발생한 원시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하여 진화했다고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기술에 의하여 혼합생명체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얼터드 카본』에서 혼합생명체를 지배하는 엘리트 그룹(‘므두셀라’들)은 인간의 생명을 얼마든지 조작하고 연장할 수 있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이 스스로 변종 인간이 되어 영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신학/선교
    • 신학
    2020-10-16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29
        인간의 기원   기독교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가 창조하신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과 의무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창1:26-28). 그러나 다윈주의자 및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그런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몇 개 또는 한 개의 원시 생명체를 만들었거나, 또는 아예 물질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원시생물이 생겨났고, 인간은 그것이 진화한 동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각 생물의 DNA 또는 RNA의 유사성에 따라서 진화계통수를 그려놓고, 그것이 지구 생물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각 생물의 DNA가 그 생물의 생명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계통수는 그들의 관점에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은 각 생물의 DNA 데이터를 처리해서 그린 허구의 그림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화계통수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과학적 무신론에 속아서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계통수에 의하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유전체)을 비교하면, 약 97%에서 99%까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이질적인 면이 더 많다. 인간의 게놈을 구성하는 염색체 숫자는 46개이고, 침팬지는 48개이다. 인간의 생명 정보인 DNA를 연구하기 위해 2003년에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끝낸 과학자들은 곧바로 국제적 연구팀을 만들어 엔코드(DNA 원소 백과사전)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인간게놈을 구성하는 DNA는 약 32억 개로 밝혀졌고, 그 DNA들은 약 25,000개의 유전자로 계열화되었다. 유전자는 다시 46개의 염색체로 계열화되어 각 체세포의 핵에 들어있다. 46개의 염색체는 부모가 23개씩 나눠준 것이며, 그 23개의 쌍(짝)은 상동염색체로 불린다. 게놈을 가진 체세포는 분열하여 2개의 딸세포로 증식한다. 정자와 난자를 말하는 생식세포는 체세포의 염색체가 23개로 감수분열(46/2)한 것이다. 수억 개의 정자 중에서 1개가 난자를 만나 짝짓기에 성공하면, 모의 자궁에서 한 개의 배아를 형성한다. 그 배아가 세포분열을 통해 2-4-8-16...으로 늘어나서 성체가 된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 개의 체세포로 구성된다. 인간의 체세포 크기는 대개 0.1㎜, 세포핵은 0.02-0.03㎜ 정도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게놈을 비교하면, 약 97%에서 99%까지 일치한다. 그러나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이질적인 면이 더 많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스티븐 콜린스는 단백질 생산 정보를 가진 5% 이하의 DNA만 유전자로 보고, 나머지 95%는 쓰레기(junk) DNA로 취급했다. 그러나 콜린스의 DNA 이해에는 오류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DNA가 엑손(Exon)과 인트론(Intron)의 정보를 전부 mRNA에 전달하면, 엑손 정보만이 단백질 생산에 쓰이고 인트론 정보는 쓸데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그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신의 언어』에서 네 글자(A, T, G, C) 배열로 이루어진 DNA를 신이 설계한 생물의 생명정보라고 해석했다. 무신론자였던 콜린스는 DNA가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바이오로고스(biologos)설을 제안하면서 유신론을 인정하고 회심했다. 그 뒤에 이어진 엔코드프로젝트 연구에 의하면, 아직 그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정크 DNA도 각각 생명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 조상으로부터 인간게놈을 이어받은 것이지, 침팬지 게놈에서 진화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과 각 생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유전법칙에 따라서 부모의 게놈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을 뿐이다. 더욱이 생물의 게놈에는 계통을 벅어난 변이가 발생하면, 다음 세대에서 유전자 복구 시스템이 작동한다. 진화의 계통수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유전법칙에 따라 생물의 게놈이 새로운 종의 게놈으로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각 DNA 단위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각 DNA 데이터를 분석하면, 하나님이 그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려고 인간게놈을 특별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누가 하든지, 인가의 기원논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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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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