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하다. 보수와 진보, 세대, 사회적 성취에 따른 계층, 지연과 학연, 혈연 등이 그 현상들이다. 이 중 보수와 진보는 사회 갈등을 총칭하는 통속적인 표현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그 본디 개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정치 현장을 중심으로 정당의 이익을 위한 도구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는 상위 가치의 틀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세 단어의 뜻을 먼저 정의한다.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중심으로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하면 ‘팩트’다. 언론 보도의 유형으로 말하면 이른바 스트레이트 기사의 내용이다. 언론의 기획 기사나 심층 보도에서는 취재 기자나 기자 팀의 시각과 주견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기사는 언론 보도의 일반적인 준칙에 따라 사안 자체의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 사실을 의도적으로 꺾거나 비트는 것은 언론을 병들게 한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 또는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을 뜻한다. 이 단어의 개념에서는 사람의 자의식 곧 마음에 인식하고 있는 거짓이 있느냐가 중점이다. 거짓 정보를 진짜라고 굳게 믿고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마음의 자의식에 거짓은 없으니 진실이다. 그러나 사실에서는 틀렸다. 인격이 훌륭하고 윤리도덕으로 수양이 깊은 사람은 진실성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에서 실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올바른 정보가 차단되고 거짓 정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실에서 실수한다.
‘진리(眞理)’는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를 뜻한다. 특히 종교에서는 본질적이고 영원한 가르침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복음인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을 가리킨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끊임없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묵상에서 깨달은 바를 인격적인 결단으로 행동하지 않고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진리는 정보 습득 차원의 지식과 다르다. 삶의 처신이나 처세의 성숙함을 뜻하는 지혜와도 다르다. 근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이들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기독교 신앙인들까지 보수냐 진보냐를 물으면 안 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이 요한복음 18장 38절에 있다. “진리가 무엇이냐?”
위에서 살핀 세 단어를 사용해서 세심하게 표현해보자. 먼저 아주 분명한 것, ‘진실’에서 벗어나는 사람 곧 마음에 거짓을 품은 사람은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보수든 진보든 거짓은 하나님 앞에서 죄다. 다음으로, ‘사실’을 알려는 노력과 수고가 없이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을 파악하는 데 힘을 쏟는다. 보수든 진보든 사실에서 어긋나면 잘못이다. 진리는 그 안에 진실과 사실을 포함한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가치는 진리다.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가치는 사실과 진실의 본디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갈등 상황에서 사실의 규명이나 이른바 진실 게임 같은 것들을 놓고 논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공적인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진리를 중심에 놓고 이를 근거로 사실과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 이로써 교회는 현재의 갈등을 넘어서는 더 높은 기준을 갖고 보수와 진보를 끌어안는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두 축이다.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