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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3.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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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미얀마 사태는 서방 언론이 외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2차 대전 무렵 미얀마(당시 버어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은 식민 통치자들이 전형으로 사용하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이간책으로 방글라데시에 사는 로힝야 족을 미얀마 지역으로 이주해 살게 했다. 중국과의 교류를 끊기 위해서 중국을 향하는 길목으로 이주시켰다. 게다가 미얀마는 불교국가인데 로힝야 족은 이슬람교 신자들이다. 영국은 로힝야 족에게 특권을 부여해서 미얀마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농장의 경영권을 주고, 군대에 입대시켜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독립군 토벌에 나서게 했다. 그리고 영국의 비호아래 미얀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소수민족을 학살했다.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1962년에 미얀마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군부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지위는 역전되었다. 로힝야 족은 다시 뱅골로 이주하게 하고, 그들에게 강압과 보복 학살이 행해졌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었다. 미얀마의 군부는 식민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군에 뿌리를 두고 있고 로힝야 족의 학살은 서방세계가 대대적인 탄압으로 규정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식민청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과거가 어쨌든지 간에 생명을 빼앗는 것은 분명한 범죄이다.

 

지금 군부와 맞서고 있는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독립투쟁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고 군부는 아웅산 장군의 부하들이다. 식민지를 청산하고 군부에 의해 세워진 미얀마 정부가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친 서방 성향을 가진 아웅산 수지를 함부로 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서방 세력은 이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아웅산 수지가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노벨 평화상, 국제 엠네스티 인권상, 광주인권상등을 수상하고 서방 세계의 막강한 지원을 받았지만 뿌리 깊은 민족 감정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로힝야 족에 대해서만은 군부나 수지가 동조했다.

 

아웅산 수지를 통해서 미얀마를 중국을 봉쇄하는 정책에 포함시키려한 서방의 의도는 먹히지 않았다. 미얀마가 중국과 국경을 마주했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이 되기를 원했지만, 수지는 균형외교를 앞세우고 중국과 연대하는 노선을 취했다. 그리고 중국과 미얀마 간 송유관과 가스관들을 연결했다. 지정학적 위치상 서방보다는 중국에 치우친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지가 미얀마의 대통령도 “사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서 수렴청정하자 서방에서는 수지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지지를 철회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여했던 모든 상들은 취소했다.

 

미얀마의 역사를 볼 때, 군부를 단순하게 반민주 독재로, 악의 축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이는 북한을 무조건 악의 축으로 여기고, 홍콩 사태등을 단순한 서구 사회의 입장에서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쌓이고 쌓인 역사의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광주에서의 비극을 겪은 우리로서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얀마 사태를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야할 군부가 시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그들의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배경을 넘어서서 또 하나의 폭거이고 학살이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강력한 “아니오”를 말하고, 고난 받는 미얀마의 시민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강남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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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미얀마를 생각하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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