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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창조론-4

오늘날의 신학동향 - 창조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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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2.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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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를 받게 되는 일곱 교회는 그의 교회들을 대표한다. 일곱 교회의 대표성은 이 땅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어진 모든 교회들에게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를 받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은 그의 모든 교회들을 나눠서 관리하는 천사들이다. 일곱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의 교회들을 관리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 이해해야 한다. 편지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보면, 그 편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구성하는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의 믿음과 행위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요한에 의하면 교회는 땅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땅의 교회 사자들에게 보내신 편지는 칭찬과 질책과 장차 될 일을 알려주고, “이기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시면서 영생의 상급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들 중에는 질책 없이 칭찬만 받는 교회도 있그, 반면에 칭찬 없이 질책만 받는 교회도 있다. 땅의 교회는 요한계시록에서 장차 될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땅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의 대부분은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 내려온 사탄에 의하여 환난과 미혹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이기는 자가 되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바울이 권면하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6:11)는 말씀조차도 어떤 면에서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그런 부족한 느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성경 가운데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불분명한 상징적 장면이 많고, 환타지 소설처럼 씌어 있어서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계시의 각 장면이 땅의 시간 순서대로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은 카이로스적 시간이 소용돌이치는 하늘에서 요한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상징으로 뒤얽힌 환상을 보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교회가 장차 대적해야 할 사탄과 그 무리가 만들어내는 유혹과 환난을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계시하신 것이라는 사실에 유의한다면, 이해하기에 더 큰 어려움은 없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장차 될 일을 그의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시한 것이지 감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곱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요한계시록의 얽힘을 차근차근 풀어가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면서 약 2,00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교회는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하여 매우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요한계시록을 자기의 사익을 위해 왜곡하면서 자기 해석을 강요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성령이 자기에게만 특별하게 열어주셨다느니,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네 교회로 재림한다느니, 자기는 하늘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느니, 등의 말로 자기 해석에 권위를 높이려는 자들은 결국 왜곡된 해석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다. 사탄 무리의 미혹에서 이기는 자가 되려면, 사탄과 싸워서 이기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시를 알고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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