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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2.0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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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로나’는 교회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섭리를 주의-주목하게 된다. 

 

무엇보다 2000년 교회사에 예배를 방해했던 세력들은 어디까지나 사단 그 자체, 또는 사단의 노예인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코로나는 하나님의 직접 섭리이다. 왜냐하면 질병 자체가 인간의 범죄의 결과이고(창 3:17~18),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의 징벌을 “전염병으로 7만 명의 백성이 죽게 하신”(삼하 24:15)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관심은 다윗왕이 하나님 앞에서 백성의 ‘인구 숫자’(삼하 24:1)를 헤아렸다는 것으로 향한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왕이 자국의 병력 숫자를 점검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거룩함’(레 11:45)에의 요청 때문이다. 오늘의 코로나는 말세지말의 이스라엘인 교회의 소위 ‘비대면 예배’를 강요당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교인 머릿수 통계’중단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교회의 물량주의에 대한 경고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12, 17장은 저 물량주의의 잘못을 “물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지목, 예언해 주셨다. 이 때에 ‘물’이란 곧장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15참조)고 귀띔해 주신다. 이어서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이 말씀 중에서 1절에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란 먼저는 중세 및 오늘의 천주교회, 특히 ‘교황청 및 교황’이다. 예컨대 2013년 광복절에 방한한 프랜치스코는 세종로 거리에 30만(필리핀에서는 800만)군중을 운집시켰다. 한편 위 말씀 중 ‘여자의 자주 빛 붉은 빛 옷’은 오늘의 가톨릭의 신부들의 미사 집전 예복을 지목한 예언의 성취다. 물론 옷 색깔 자체의 뜻보다는 중세로부터 오늘까지의 가톨릭이 과시하는 종교 및 세속적 권위, 특히 위에 말한 교황의 ‘물위에 앉은 음녀’로서의 빗나간 교회(corrupted church)의 저것을 지목-예언하심이다. 물론 이 같은 교회풍토에서 위에서 예를 든 개신교가 제외가 될 수 있을까? 

 

이에 알 것은,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직접 계시 받은 선지자들은 절대로 예외가 없을 만큼 ‘물-군중’과 극과 극의 ‘광야에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모세가 누리고 있었던 당시의 온 세계를 호령하는 바로 왕궁의 저것은 오늘의 대통령, 국가 원수가 정도가 아닌, 저 솔로몬 왕의 영화와 비견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저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돌진했다. 이것이 없는 선민 이스라엘의 탄생 자체는 상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모세가 십계명을 계시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군중-물’로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있었다. 특히 저 모세의 ‘광야’의 절정은 홍해를 건넌 직후 ‘신 광야’에서였다. 이 같은 예언자-선지자로서의 특권인 ‘광야’의 선결 조건은 엘리야도, 다니엘도, 세례 요한도, 사도 바울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예수 메시아께서 친히 저 ‘광야’의 극치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십자가 위에 메시아께서는 동족-군중들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는가 하면, 하나님께 마저 버림받고 있었다. 물론 이는 인류 역사상 절대로 재연될 수 없는 모순(contradictory)이자 역설(Paradox)이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의 예수 메시아께서는 곧장 유일절의 여호와 하나님과 본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 것은 예수 메시야의 저 ‘광야에의 고독의 극치’가 인류를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자체였다는 것이다.

/기성측 은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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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코로나는 메시아 재림 예언의 성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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