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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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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단절 상태가 되면서 비대면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이웃의 왕래가 막혀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장차 다가올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교회는 시대적 환경이 기존 사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앞으론 새로운 방식의 성령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먼저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해야 한다. 성령은 보혜사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보혜사라는 뜻은 다른 사람을 돕거나 변호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위로자’, ‘대언자’, ‘중보자’를 말한다.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 안에서 보내신 것이다. 이것은 아들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실 뿐 아니라(요 10:30),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라는 것을 증거한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성령을 얻는다(고전 12:3).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성령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내 삶의 실제로 살아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신 9가지의 성령의 열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과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받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러한 삶이 성령을 중심한 생활이요, 이를 실체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참다운 성령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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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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