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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2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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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축제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신신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매 칠 년째 되는 해는 면제년(쉐미타)이다. 빚을 면제해주는 해라는 뜻이다. 빚에 몰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7년마다 새로운 기회를 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율법은 가난한 이들의 곤경을 모른 척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들을 냉대하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아야 하고,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7년이 지나도 갚지 못하면 면제해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세상의 불공정과 불공평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 보더라도 아주 급진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품고 살 때 그들의 산업에 복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나는 득실을 따지지 말고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살았으면 좋겠다.

 

면제년의 초막절이 되면 제사장들은 온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해야 했다. 외국인들도 그 말씀을 들어야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을 낭독하는 것을 ‘씸하트 토라’라고 하는 데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축제 기간 중에 그들은 오경을 한 번 다 읽고, 다시 한번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당에 보관된 토라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고, 토라와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언약의 백성이라는 기쁨의 표현이다.

 

여러 해 전 제가 처음 이스라엘에 갔던 날이 마침 초막절 마지막 날이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있던 타바 국경 검문소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되어 이스라엘 입국이 예정보다 여러 시간 지체되었다. 그 때문에 11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긴장 속에 시간을 보냈던 터라 몹시 고단했다. 그런데 바깥이 너무 소란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원형을 이룬 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때가 초막절 축제의 끝자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토라의 기쁨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양한 의식이 거행됨에도 불구하고 초막절 축제의 원뜻은 곤고했던 시기 곧 광야를 떠돌던 때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 힘겨웠던 시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그 시간을 돌아보며 삶을 성찰하라는 것이다.

 

삶의 형편이 나아지면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고,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삶의 도구를 바꾸는 순간 하나님조차 바꾸는 게 인간이라는 말도 경험에 바탕을 둔 진실임을 우리는 잘 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옛말도 똑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구질구질하던 기억들을 어떻게든 지우려 한다. 그러나 그런 기억을 말끔히 지우는 순간 우리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보본반시’ 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도 오만의 강물에 떠밀리지 않으려면 가끔 초막을 지어야 한다. 뒷마당에는 짓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슴에 초막을 짓고 그 속에 가끔 머물러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작은지 자꾸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머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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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씸하트 토라’, ‘토라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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