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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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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 교회의 급성장을 자랑하고, 축복받음을 자랑하며, 내부의 좌석수와 외형적 건물의 규모를 자랑하거나 교인수를 자랑한다. 최근에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비대면예배를 드리면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자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체험하고 있다. 예배당이 크면 클수록 텅 빈 좌석을 보는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놀라운 것은 1세기 사도 바울이 제시한 믿음으로 의인화된 교회의 자랑은 이것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자랑을 언급한 로마서 5장에서 헬라어 ‘카우코메다’가 3번 반복되는데, “즐거워하느니라” 또는 “자랑하느니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이방인과 유대인의 자랑을 정죄한 이후 문맥적 해석에 의하면 후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에 의인화된 교회의 세 가지 자랑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함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것은 곧 의인화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했을 때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할 수 있는 은혜의 삶은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죄인이 감히 참여할 수 없었던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잔치석에 초대를 받아, 영원토록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은혜인가?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소망한다. 이 자랑이 크면 클수록 교회는 견고히 서 가게 마련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할 때 자만심에 빠질 이유가 없으며, 교회의 분쟁이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고난받음을 자랑’하는 것이다. 교회는 고난을 피하거나 고난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받는 것을 자랑한다. 왜냐하면, 고난 속에서 인내를 체득하게 되며, 인내 속에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고, 연단 속에서 마침내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고난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희생의 봉사적 섬김을 실천하면서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적극적인 고난에의 참여도 얼마든지 교회의 자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 모든 고난은 죄의 형벌이지만, 기독교에서의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화해사역을 감당하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은 전적으로 은혜요, 선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대속의 희생을 치를만한 가치있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희생되셨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배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시대에 교회의 대면예배가 중지된 것은 한국교회의 분열의 책임이 크다. 연합기관이 셋으로 분열되어 정부는 신속하게 사전협의할 대상이 없었고, 자체적으로 한국교회의 대응도 무능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로 하여금 분열의 죄를 책망하고 계신다. 외형적 규모의 자기 자랑은 코로나19 시대에 아무 쓸모가 없다./한국외항선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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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의인화된 교회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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