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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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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보면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처음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양심에 거리끼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이다. 

 

민족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리라」고 했다. 그의 고결하고 아름다움은 오늘 우리 사회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요즘 모든 예술, 영화는 앞다투어 남녀가 하체를 들어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세상이다. 성경대로 배를 하나님으로,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세상이다. 

 

사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인생이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옛날 선비들은 부끄럽지 않은 신하, 부끄럽지 않은 스승,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갈고 다듬었던가를 생각해본다. 차라리 생명을 버릴지언정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종교가 있건 없건 한 인간으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려는 것이 옛 선비들의 사고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도덕 불감증〉과 〈물질 만능주의〉를 살아가는 인간들로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한국 사회가 되었다. 부끄럽고, 낮 뜨겁고, 민망스러운 것은 모든 분야가 똑같다. 특히 권력에 중독된 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흰 것을 검다고 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속여도 눈도 깜짝 안한다. 

 

일찍이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R. Niebuhr)는 그의 유명한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 Moral Man and in Moral Society〉란 책을 썼다. 그의 책 제목을 보면 사회가 썩고 부패했기에 세상이 망가졌고, 그래도 인간은 도덕적 이라고 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니버의 책은 차라리 〈부도덕한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라고 해야 옳았을 것 같다. 결국 먼저 인간의 전적부패와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야 이 세상에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에 부끄럼이 없으려면 법과 양심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이현령 비현령, 녹비에 가로 왈 자〉란 말이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노루 가죽을 당기면 날일자가 되고, 밀면 가로 왈 자가 되는 제멋 대로의 법 적용은 참으로 부끄럽다. 결국 인간은 전적 부패(Total Depravity)를 했으므로, 인간이 새롭게 변화 되기 전에는 세상은 새롭게 될 수 없다. 인간을 새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잘사는 나라이다. 한국 교회는 세계에 내어놓을 만한 큰 교회들이 많다. 우리의 꿈은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부끄럽지 않은 정부, 국회, 법조계, 부끄럽지 않은 교회가 되어서, 말 그대로 세계에 모범이 되면 참 좋겠다. 

부끄러움이 결코 영광이 될 수는 없다!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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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영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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