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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7.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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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원순시장의 죽음으로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안타까워했다. 우리에게 생명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인류의 기술이 무서울 정도로 발전하여 수많은 상상력을 현실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생명 그 자체를 창조할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오직 그 분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영역이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믿고 고백한다.

 

한 사람의 죽음. 하지만 그 죽음을 바라보는 일부 사람들의 매몰찬 시선에 섬뜩하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색을 드러내며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차마 하지 못할 행동을 하기도 했고, 또 일부 정치인들은 한 생명의 죽음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 바쁘다. 기독교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미 정치화된 일부 기독교인들도 박원순 두 번 죽이기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씁쓸하다.

 

천공해활(天空海闊)이라 했다. 하늘과 바다가 한없이 넓음과 같이 사람의 도량이 크고 넓음을 뜻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을 보며 천공해활의 품성을 볼 수는 없는 것인가.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했다. 우리 이웃의 죽음에 몸의 절반이라도 베어 내는 아픔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웃의 불행으로 할반지통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이념뿐인 것인가.

 

오히려 우리 기독교인들은 때로 감탄고토(甘呑苦吐)의 모습을 주로 보인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들처럼, 우리 기독교의 가치도 제가 이로울 때에는 이용하고 필요 없을 때에는 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만 성경을 이해하고, 자기 좋은 쪽으로만 ‘이웃사랑’을 외치는 것. 많은 사람들이 박시장의 죽음에 애도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또 박시장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박시장의 생명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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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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