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본지 창업자 고 김연준박사의 어록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7.31 15:5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김연준-이것만사용.jpg

 

조선조 말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의 윤리 생활은 오륜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등의 인간관계를 유별하여 각기 거기에 알맞은 윤리항목을 붙인 것이다.

 

이 중에서 계층적인 것이 아닌 일반 윤리를 지닌 것으로는 붕우유신을 틀 수 있다. 사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의예지를 사방으로 상징하는 경우에도 믿음을 중앙에 두어 사방에 다 통하도록 되어 있다. 오늘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의 원리는 신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신은 모든 인간관계를 해체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서로 믿지 않으면서 깊이 살거나 같이 일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그것이 원초적인 신의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를 모든 행동 결단의 기준으로 삼는 오늘에 있어서는 이해가 상충되면 신의를 개입시킬 여지가 없게 된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맹약이 내일의 허구가 되고 내일의 약속이 그 다음에 배반이 된다면 불신만 날로 더해 갈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은 흔히 전쟁 중에 적용되는 절대주의적 전쟁윤리를 평시에 경쟁윤리로 적용하기 때문에 의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선을 악용하는 우회 작전을 쓰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쨌든 이겨 보자는 이기심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도 거기에 말려들지 않기 위하여 같은 수단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의리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술수만이 난무하게 되고 이기적인 동기 때문에 의리가 무너지고 말게 되는 것이다.

 

의리가 무너지면 어떤 선한 사업을 제창하여 동호자를 규합했다 하더라도 요직을 분배할 때에는 적재적소보다는 자기의 지위욕을 충족하기에 급급해진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경쟁을 벌이되 최악의 경우에는 이간질, 모함, 허위 선전, 매수, 인신공격 등등 온갖 악랄한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싸움과 함께 그 선한 사업도 무너지고 말 것은 분명하다.

 

어떤 기관이나 사회가 놀랍게 번영 개발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인간관계에서 의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곳에서는 충성과 신의가 종횡으로 짜여져서 일에 오류가 없을 뿐 아니라 불신으로 인한 불필요한 정력과 능력의 저하를 사전에 막고 적극적인 창안을 통해 약진을 시도할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삭빠른 기술보다 의리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급하게 하면 무엇이든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옛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되새기고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태그

전체댓글 0

  • 7967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