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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7.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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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에 들어가 가장 처음 들었던 수업 가운데 「심리학의 이해」라는 과목이 있었다. 고인이 되신 안석모교수께서 강의를 하셨다. 

 

뇌와 호르몬 등에 관해 설명하시던 교수님은 갑자기 인간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그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운을 뗐다.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호르몬에 영향을 받아 이른바 선천적으로 사회가 규정한 성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이들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일부 소수자로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질문했다. 만약 동성애가 죄라면, 날 때부터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의 죄는 그 사람의 죄인가, 아니면 그를 그렇게 태어나게 한 하나님의 죄인가. 

 

지금의 나는 그것이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모두 죄와 무관하다고 믿지만, 당시의 그 질문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종교의 습성으로 무언가를 섣부르게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성급하고 미숙한 것인지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 아마도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을 어느 한 동기는 목사가 되어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태어남이 결코 죄의 결과가 아니라 축복이라 말하며 편견과 혐오에 지친 그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한국 감리교는 죄악에 동조한 이단자 취급을 하며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선악과의 유혹 앞에 서 있다. 쉽게 옳고 그름의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성경이라는 이름의 선악과를 따먹으려 한다. 하지만 성경을 맛본 이는 윤리적 혜안을 얻기보다는 자신의 부끄럼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역사는 선악과로서 성경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교회의 권력자들은 성경을 토대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리가 없다며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들을 죽였다. 교회의 남성들은 성경을 토대로 여성이 남성과 평등할 수 없다며 침묵과 순종의 이름으로 여성들을 억압했다. 교회의 반유대주의자들은 성경을 토대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 의해 박해 당했다며 전쟁 권력을 이용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교회의 백인들은 성경을 토대로 흑인들은 태생부터 종이 될 운명이며 그들이 주인을 잘 섬기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일이라며 노예제도를 정당화 했다. 

 

목사들의 윤리적 일탈보다 더 큰 문제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려고 하는 노력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목사 개인의 문제는 법적인 차원에서 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포기 하고 시내산 아래 죽치고 앉아 성경으로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방탕해지는 길을 택한다면, 모세의 분노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죄인가, 그것을 묻기로 했다면 더 치열해지고 더 투철해지고 더 열려 있어야 한다. 성경으로 죄없는 이들을 박해하고 억압한 역사의 핏빛 강물 위에 너무 쉽게 그 옹졸한 혐오의 돛단배를 띄우지 말 일이다. 섣부른 죄의 규정은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마저 좀 먹게 만들 것이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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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누구의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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