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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교회 몰락의 시대」

성서의 철학·문학적 접근 필요성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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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7.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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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모호의 종교 내러티브 탈피통한 이성적 신앙 소개

신앙·일상의 연속성 조명위한 언어의 생동성 이해 촉구

 

프랑스 철학자 장 뤽-낭시의 생각을 기대어 생각해보자면 경전이 있든 없든 종교는 세계와 사유를 거래하면서 발전해왔다. 신에 관한 진지하고도 신비한 사유를 삶으로 구현한 종교적 선구자들의 궤적은 때로 목의 숨을 끊으면서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문화에서는 신에 관한 사변적 사유든 경험적 사유든 그 맥을 발견할 수 없는 현실을 겪고 있다. 이는 종교의 엄밀한 사유의 종말과 그 초월적인 실천적 삶의 포기 혹은 유기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더욱이 종교가 자신의 말을 통해 시대적 사물성은 물론 역사적 상황과 치열하게 싸우는 전선에서 패퇴하고 있기 때문이라 명명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종교적 서사는 진부하기 짝이 없고 그 지칭어가 갖고 있는 말의 가치가 전락했기에 사람들이 그 의미론적 실증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성서 풀이나 교회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철학적, 문학적 표현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풀이한다. 이를 통해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도그마에 의한 텍스트 분석이나 이해가 아닌 신을 향한 이성적 이해를 돕는다.

 

자고로 종교는 명시적으로 근원적인 말과의 만남이다. 마르틴 부버가 말하듯이, 그것은 ‘나-그것’의 근원어가 아니라 ‘나-너’의 근원어이다. 그렇지만 종교는 나-너, 나-당신의 초월자와의 만남에서 파생된 근원적 삶을 언어적 삶 혹은 삶의 언어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의 말은 다시 세계와 거래를 해야 한다. ‘태초에 말이 있다’ 말은 시원적이고, 말은 만남이고, 말은 사유이며 말은 초월을 지시합니다. 여기에서 정신으로 비약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언어는 종교와 철학의 사유를 현실 안으로 풀어내는 매개체가 된다.

 

그렇기에 말은 항상 지금 여기서 인간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말은 시원을 품고 있기에 그 시원성을 풀어 밝혀주어야 한다. 태곳적 삶, 순수한 삶의 원형은 태초의 말을 분석하고 명료하게 인식해야만 존재자에게 현존한다. 행위가 변하고 행동이 생기는 말의 성질은 우리의 오감을 깨운다. 언어는 약속이지만 말은 행동을 강제하는 기호이다. 그렇기에 성서는 사람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촉구한다.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시어들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의 단초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철학적 삶을 더 견고하게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다. 시인의 언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실존적인 현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필자는 하이데거처럼 존재론적 해석과 실존적 삶을 가능케 하는 언어적 힘에 동감을 표한다. 그런 지평에서 볼 때, 횔덜린의 시어들을 통한 성서 읽기는 바로 현존재의 실존적 삶을 추동시키기 위한 작가적 욕망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앙인의 삶도 일상인의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종교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는 것이다.

 

횔덜린의 아름다운 언어를 거래하여 칸트가 말한 ‘도덕의 상징으로서의 미’를 성서적 미적 실존의 아르케로 삼고자 한 고통스런 편린의 감성이 독자들의 주관적 보편성으로 와닿기를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희망한다. 〈종문화사 펴냄/신국판 344쪽/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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