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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4.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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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장에는 두 사람의 죽음이 소개된다. 하나는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의 죽음이며, 두 번째는 형인 아론의 죽음이다. 38년 동안의 오랜 광야의 유랑이 끝나던 출애굽 제40년 첫째 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 가데스에 머무르게 된다. 거기서 미리암은 임종을 맞아 장사되었다(민수기 20장 1절). 모세가 120세, 아론이 123세라 하면 미리암은 둘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죽었을 것이다.

 

한편 백성들이 가데스를 떠나 호르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셨다. 그리고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라”고 선포하신다(민수기 20장 24절). 무엇을 거역한 것인가? 회중이 물이 없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여 불평했다(민수기 20장 3절). 모세와 아론은 불평하는 백성들을 떠나 회막에 엎드린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민수기 20장 8절).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에게 대한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수기 20장 11절).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혈기를 드러냈다.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까닭에 아론은 죽어야 한다고 선언하시는 말씀에 모세 역시 마음이 찔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론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아론은 비록 자기의 죄 때문에 죽지만, 악인들처럼 재앙을 받거나 불타 죽는다고 하지 않고 평안히 죽음을 맞은 것은 은혜이다. 성경의 표현대로 ‘그의 백성에게서 끊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는 은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음을 예비한다.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산에 오르고 담담하게 모세와 함께 아들에게 자기의 옷을 입혀준다(민수기 20장 28절). 아론에게는 이렇게 죽는 것에 많은 아쉬움이 있을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했다. 아론이 땅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의 배려이다. 그의 종에게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아론의 죽음으로 그의 직분은 후계자인 엘르아살에게 돌아갔다. 모세는 예전에도 아론에게 예복을 입혀주었는데, 지금도 그의 조카인 엘르아살에게 예복을 입혀주고 임무를 계승하게 한다. 이것은 모세에게 큰 위안이 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통해 계승된다. 동시에 아론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죽음에 이르지만, 자신의 직분을 아들이 계승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때 아론을 대적하기도 했지만, 여기 아론의 죽음을 알고 나서는 그를 위해 30일간을 애곡하여 죽음을 애도했다.

 

아론의 죽음은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단절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성만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즉 삶을 마무리하는 최고의 가치가 된다. 아론의 죽음이 좋은 것은 인격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죽음의 의미를 알고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이 인격체로 겪는 사건인 것이다. 아론의 죽음은 삶의 완성이고 결실이다. 죽음은 만민에게 공통적인 사건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그만의 종말이며, 삶의 마무리이고 완성의 기회가 된다. 아론처럼 죽고 싶은 것이 기도제목이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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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죽음 10] 삶의 완성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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