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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4.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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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캠퍼스는 견고한 고독 그 자체이다. 우선 새내기들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대학생이 된 후 기쁨과 흥분에 들떠 있었을 신입생들은 아직 제대로 된 입학식도 치르지 못했다. 

 

긴 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뒤로하고, 봄을 알리기 위해 선뜻 다가오는 반가운 전령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정의 빌딩 사이로 하얀 목련과 만개한 벚꽃이 오랜만에 눈웃음을 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화사한 얼굴을 내밀면서 외치는 “안녕!”이라는 인사를 만끽하기도 전에,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날아와 내 귀에 박힌다. “교수님 발열체크하고 가세요!” 주차장을 빠져나와 연구실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캠퍼스 내에서 들려온 첫 음성이다. 발열체크를 끝내고 다시 걷는 교정의 잔디밭 위로 또다시 무거운 적막과 육중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캠퍼스의 파란 하늘 위로 마치 검은 까마귀들이 배회하고 있는 듯 착각마저 든다. 

 

그렇다. 단지 대학의 캠퍼스만이 아니다. 전 세계 구석구석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고 있다. 예외가 없다. 부자나라이든 가난한 나라이든, 문명한 도시이든 낙후된 촌이든 상관이 없다. 무조건적이다. COVID-19라는 미생물이 행사하는 죽음의 파워 말이다. 솔직히 녀석은 생명체라는 축에 끼지도 못할 만큼 미흡한 자격요건으로 인해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주어진 미생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녀석이 인류에게 가르쳐주는 메시지는 근래 보기 드물게 최상급이다. 죽음은 이렇게 너무도 가까이 보편적으로 견고하게 임재해 있다는 것. 

 

녀석이 전달하는 강한 메시지는 또 있다. 인간은 단지 인간일 뿐 아직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 코비드-19는 인간에게 새삼 이 평범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신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초인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은 아직 이 미생물이라는 우주 내 동료와 싸워 이기는 한도 내에서만 겨우 생존이 가능하다는 레슨을 가르치고 있다.

 

하기야 최근까지 인간은 아주 기고만장했기에 이런 교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다. 스스로를 매우 특별한 위상의 존재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넘쳐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신의 자리를 빼앗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기 시작했었다. 이젠 단지 시간만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유전자 복제 테크닉이 날로 발전해 가고 있는 이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인간이 인간을 창조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믿었다. 최소한 병들거나 낡아진 신체의 기관들도 새 것으로 복제해 하나씩 교체하면 인간의 삶은 얼마든지 영속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치 자동차의 다된 부품을 갈아 끼우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영속이 가능해진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과제는 어떻게 이승에서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여생을 즐길 수 있을지가 진정한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부활? 죽음이 없을 것인데 인간에게 부활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저승은 또 뭔가? 이승에서 얼마든지 영생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웬 저승인가? 기적도 마찬가지다. 이제 신의 선물로서의 기적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기적은 더 이상 신의 작품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것은 얼마든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인간은 기고만장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런 모든 인간의 자신감을 단번에 짓밟은 것이다. 죽음을 넘어서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의 희망이 얼마나 허황된 망상인지를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주 쉽고도 간단한 방식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하찮은 미생물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겨우 자신의 생존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동료 생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아침의 안개처럼 순식간에 허공으로 증발해 버리는 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사실. 

 

생명의 하찮음과 죽음의 보편성이라는 영원한 테마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누렸던 생명이 실은 값없이 주어졌던 신의 은총의 덕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감신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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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강한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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