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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코로나19의 불안과 신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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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3.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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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우리 몸안에서 신진대사(metabolism)의 과정을 겪는다. 신진대사는 먹은 음식이 분해 또는 합성되어 생명에너지를 만들고 필요 없는 것은 내 보내는 활동이다. 그러나 장기가 무언가에 감염되면 자율신경들이 수축되고 에너지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도 이러한 신진대사운동을 한다. 유난히 유아적이거나 우리의 정신이 나쁜 사상에 감염되면 신지대사 활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기다림변증적 활동’(분해와 분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쁠 때는 불안이 없는 것으로 착각되지만 불안은 항상 적막하고 고요할 때 찾아온다. 불안할 때 우리는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생각하기 시작하고 마음 안에서 변증이 일어난다. 변증은 긍정과 부정, 공격과 애도가 교차하는 신진대사의 과정이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이 되어가는 필수적 과정이기도 하다.

 

나쁜 정화조를 치유하는 방법은 다른 건강한 정화조 물을 떠서 붓는 것이다. 낙스나 퐁퐁과 같은 화학물질로 세균을 모두 제거하면 자체 분해 능력이 없어 정화조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화학제품(과학)으로 무조건 적을 제거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황을 소화하고 신진대사하는 것은 불안을 내 안에 담고 기다릴 때 온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쩌면 불안이라는 좋은 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안할 때 우리는 생각하고 변증하기 시작하지 않는가? 적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태도는 결국 저항력을 없애고 내성을 없애는 결과를 맞는다. ‘반공이데올로기에 빠지고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감염되면 다른 이물질에 대한 신진대사의 능력이 없어진다. 이 안경을 쓰고 모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니 균형적, 변증적 사고를 하지 못해 항상 어느 한편에 서고 거리두기를 못하게 된다. 심지어 보편적이고 아주 상식적인 것이 들어와도 소화할 수 없어 설사를 하거나 토해버린다. 분해시키고 받아드릴 것은 받아드리고 내보낼 것은 내 보내야 하는데 좋은 것도 다 내 쏟아 내니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항상 이런 식으로 증식을 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깃발을 꽂고 이 아래 모이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바이러스는 절대 변증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이단이 사용하는 주요 전략이기도 하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사회 통합적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보고 기독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에 정치적 포퓰리즘까지 한 몫 하니 기독교는 다중 구조 속에 얽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신진대사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한 칼라를 단순히 흑백처리하는 것은 유아가 하는 일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갔지만 구름 덮인 산 속의 적막함 속에서 6일 동안의 불안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24:16) 산 밑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더딘 하산과 생사의 알수없음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된다. ‘더딤과 알수없음의 불안을 처리하지 못한 결과였다.(32:1-4)

 

전염병이 얼마나 지속이 될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불안을 홀짝 넘어버리는 방법은 저 놈들 때문이야가 가장 좋다. 미국과 중국의 유치한 정치적 싸움, ‘으로 돌리는 것은 설사(diarrhea)와 같다. 기독교는 정치인들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먼저 급하게 이 설사의 증세를 멈추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기독교지도자들은 다른 어느 때 보다 한가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해 더 많은 불안을 처리하는 과제를 안아야 한다.

 

/박종서목사(양지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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