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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2.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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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수련목회자로서 현장에서 목회를 배워가며 마음이 답답할 때,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육체적으로 힘들 때마다 마음에 다시 새기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적힌 고린도후서 11장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한 바울 선생의 절절한 호소가 드러나는 장이다. 선생은 여기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스스로를 용납하라고 호소하거나(1절), 자신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하거나(7절), 너희를 섬기기 위해 다른 교회에서 비용을 ‘탈취’했다고까지 말하면서 자기 결백을 주장한다(8절). 너희들은 이 마음을 모를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고 답답해한다(11절).

 

그렇게 고린도지방의 성도들을 사랑했던 바울이었지만, 아마 고린도교인들은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들은 아마 말에 능하고(6절), 남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로 스스로를 높이는 데에 탁월했던(12절)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일상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인 의미로는 지혜로운 사람들, 부정적인 의미로는 처세가 좋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울 선생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가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메타스케마티조(μετασχηματιζω)’는 ‘메타’와 ‘스케마티조’의 합성어로, 특별히 스케마티조는 관찰자에게 나타나는 외모, 모양을 의미하는 ‘스케마(σχημα)’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바울 선생이 보는 가장하는 사람들이란, 마음의 더러움과 영혼의 죄악됨을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모양으로 상쇄해보려는 사람들이었으리라.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은 가장하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교회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 정도는 분노와 억울한 마음을 갖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반 정도는 안타까운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가장 무섭고 두려운 때는, 내 스스로가 가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사역자로서의 참 마음보다 사역자로서의 모양새에 집착하는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는 교회라는 집단이 돌아가는 것에 모든 촉을 세우고, 주인 되신 한 분의 인정보다는 장삼이사의 칭찬에 목말라하며, 내가 세운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세상에 모든 불안을 끌어안은 듯 불안해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하나님이라는 동기와 목적이 결여된 사역자에게는 결국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파편화 된 자기, 의미 없이 노동하는 기능화 된 자기만이 남는다.

 

바울 선생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교인의 반응에 슬퍼할지언정 절망하거나 쓰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준다(12절). 말을 잘하지도 본인을 자랑하는 것에 능란하지도 않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앞으로도 너희에게 복음과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도 너희를 섬길 것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바울 선생이 쓴 편지 중에서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남산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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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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