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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2.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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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 푸른 산하에 곱게 자라고 있는/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만이 우리의 것이 아니다//저 버려진 들판에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 하나도/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모두 우리의 것이라는 걸//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이름도 모르게 독하게 독하게 자라나는 저 풀꽃도/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하는 우리의 것이라는 걸//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숨 쉬고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노래하며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 아니더냐//죽어 흰 뼈가루를 뿌리며/거름이 되어라/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아버지의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살아온 땅이 아니더냐/지금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우리는 모두 그리운 사람들이 아니더냐- 「이 땅의 노래」의 전문

 

 

엄원용의 제10시집인 <이 땅의 노래>에 대한 시는 뿌리의식이 작용한 결과이다.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는 모두를 향한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켰다. 저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돌멩이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이 땅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형상화했다.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이다. 6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첫 연부터 3연까지 “우리의 것”, 그리고 4연과 5연은 “땅이 아니더냐”를 반복함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고, 이 땅에서 지금까지 대대로 살아온 고마운 땅임을 일깨워 준다. 특히 첫 연부터 3연까지는 이 땅에 버려진 돌멩이나, 이름도 없는 풀꽃 등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임을 깨달도록 한다. 또한 4연과 5연도 대대로 일구면서 살아왔던 고마운 땅이며, 죽어서도 흰 뼈가루를 뿌리며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친 비바람에 아픈 가슴 쥐어짜며”나 “거친 땅을 맨발로 맨발로 일구며”, “숨쉬고 통곡하며 독하게”나 “거름이 되어라 아픈 노래를 하며”란 구절 등은 이 땅을 지키고 일구어 오면서, 한을 지닌 민족성까지 함축해 표현했다.

 

첫 연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제2연과 3연을 강조한다. 푸른 들과 산하의 아름다운 꽃을 비롯한 나무들만이 아니라, 들판에 버려지고 널브러진 이름도 없는 돌멩이와 풀꽃까지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4연은 이 땅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대대로 일구고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고대에는 농기구도 없이 손과 발로 일구어 지금의 옥토로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숱한 풍파 속에서 통곡하며 독하게 살아 왔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살아온 고마운 땅이기 때문이다. 제5연은 죽어서 흰 뼈가루를 뿌리며 “거름이 되어라”고 아픈 노래를 부르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임을 일깨워 준다. 죽어서 이 땅에 묻히고 거름이 되기를 기원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와 아들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동체적인 연대감을 고취시켜 준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두가 하나임을 표현했다. 지금도 푸른 하늘아래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의 모두가 그리운 사람으로 승화시켜 준다.

 

이러한 엄원용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 그리고 순수한 이미지와 시어로 구성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삶 속에 잠재된 전통적인 뿌리의식은 회귀의식으로 확대되고, 이 땅과 자연 그리고 고향과 신앙을 소재로 전개한다. 그것은 생명공동체적인 삶으로 공유하도록 인도하고, 사물이나 일상의 삶 속에서의 재발견으로 잠언적인 일깨움의 깊은 감동을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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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4] 사랑하는 이 땅을 노래로 승화 - 엄원용의 「이 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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