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3-27(금)

한양대 음대 박정원 학장의 삶과 예술

김연준 선생 헌정 음반 제작에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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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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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보다는 교육자로 후학양성, 연출 및 음악감독으로 활동

콘서트홀 완공 이후에 김연준 박사의 가곡으로 첫 공연을 준비

 

청소년 시절부터 유별나게 가곡을 좋아했다. 특히 우리 가곡으로는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작사·작곡)를 매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지금도 매월 한두 번 가게 되는 음악회에서 간혹 이 노래가 들려오면, 너무 반갑고 행복해진다. 시골 출신에게는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는 정이 넘치는 노래인 것 같아 기쁘고 반갑다. 

 

기독교인이었던 김연준선생의 꿈처럼 천국을 그리고 있는 듯 하여 멋지고 좋은 노래다. 수많은 성악가들이 「청산에 살리라」를 불렀지만,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 음대 박정원학장이 부른 노래를 들었다. 

 

감동적이었고 눈물이 났다. 그는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에 김연준 선생의 곡인 「무곡」, 「비가」등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해질 무렵 「청산에 살리라」가 생각나서 무작정 학교 연구실로 전화를 하고는 박정원교수와 면담 날을 잡았다.

 

초겨울 오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으로 방문했다. 초겨울 풍경이 넘실대는 날이면, 멋진 노래 한곡이 생각나서다. 음대 건물앞 게시판에는 수많은 연주회 소식과 포스터가 보인다. 

 

최근 한양대가 주관하고 박정원감독이 연출하는 ‘사랑과 희망의 하모니’공연이 열린다는 현수막도 보인다. 박정원교수는 요즘은 성악가로 활동하기 보다는 교육자로 연출 및 음악감독으로 주로 활동하는 듯하다.

 

2층 학장실에서 박정원교수를 만났다. “사실 저는 한양대 성악과 출신으로 대학시절부터 김연준 총장님과 인연이 깊어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음대에 입학하고는 조금 좌절하고 지냈지만, 고교시절부터 존경했던 김연준총장님을 뵐 수 있어서 좋았고, 학교나 대외행사에 자주 불려 다니면서 총장님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행복했다”라고 했다. 

 

“대학시절 수많은 학내외 행사에서 기성 성악가들을 뒤로하고 먼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져 좋았다”고 했다. 

 

“특히 한양대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시청 앞 프레지던트호텔에 외국 귀빈들이 올 때면 총장님은 나를 먼저 찾으셨다”라며, “그때는 내가 총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냥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즐겁게 노래만 불렀던 것 같다”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대학원으로 유학 가서 공부했고 한동안 성악가로 살았다. 15년 외국 생활이 몸에 맞는 것 같고, 당시 암울했던 한국이 답답하여 귀국할 생각도 없었다. 

 

 

김연준 선생의 가곡 즐겨 불러 

가끔 미국에서 열리는 한양대 동문회에 참석하여 총장님을 뵐 일이 있었지만, 안부만 물어보고 헤어지는 정도였다. 어느날 일이 생겨 동문회나 총장님이 미국에 오시는 날, 모이는 동문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면 나에 대한 안부를 물어보고, 소식을 묻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1년 한양대 음대 교수로 오라는 공식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1995년 봄에 몸이 좋지 않아 귀국했을 때 김연준선생을 만났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이태리 출신의 유명 성악가) 정도 될 생각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한양대로 출근해라”라는 말을 듣고는 잠시 준비하여 9월 학기부터 출근했다. 

 

당초 2년 정도만 강의하고는 미국으로 다시 나갈 생각이었지만, 2년 정도 후배이며 제자인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교육자의 길이 천직임을 느끼게 되어 오늘 날까지 25년을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김연준선생님은 나를 성공한 성악가보다는 교육자로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 보신 것 같다”며, “나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나를 제자지만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마음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의 뜻에 따라 교육자의 길을 사명으로 알고 가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다.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녔고, 유학 가서도 김연준 총장님의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아온 덕분에 한양대에서도 후배들을 가르치며 당당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기회의 신은 앞머리에 꽁지가 있다고 하네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꽁지를 잡지 못하고 뒷머리만 쳐다보거나 잡으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잡을 수 없게 되지요. 저는 어쩌면 성실하게 20~30대를 보낸 덕분에 학교에 자리 잡았고, 또 당당하게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라며 늘 성실하게 사는 기독교인의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가장 큰 멘토가 바로 김연준선생님이다. 평생 교육자로 성악가로 작곡가로 살아오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저도 은퇴 전에 반드시 김연준선생님에게 드리는 가곡 헌정 음반을 하나 만들고 싶은 생각이다”라고 했다. 

 

교수가 되고 학장이 되면서 이제는 제가 스스로 노래를 하는 일보다는 가르치고 기획·연출하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매주 15~20시간의 수업은 물론 학내외에서 열리는 연주회 기획 및 예술 감독으로도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사실 집안에 음악이나 예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울 마포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 우연히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공부를 하게 됐다. 중고 시절에는 교회 청소년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서울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했다”라고 했다. 

 

 

소통을 기반한 음악교육의 실천

“음악이 천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무래도 대학을 진학하면서 부터인 것 같다”고 했다. “정말 프로 성악가로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학교에 와서는 성악가보다는 교육자로의 길에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는 편이다”라고 한다. 

 

“사실 교육자로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은데, 요즘은 조만간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무척 많은 것 같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서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을 자지만만 그래서 인지 자식과 소통하면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제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일주일에 15~20시간 수업하면서 많은 이야기도 하고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것을 보면 아직도 청춘인 것 같지만, 그래도 할 일은 많은 학장이라 더 고민도 많아지는 것 같다”라며 “요즘은 생각을 많이 하고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수업을 조금 줄이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나중에 어떤 대학에 가서 무슨 전공을 해야 할지를 자주 고민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수시로 구체적인 면담이나 미래·진로를 그려나가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면서 스승의 길과 스승으로 자세를 다시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저는 적극적 긍정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남이 부탁하면 거절하기 못하고 늘 행동으로 옮기고, 어떤 일이 생겨도 다시 내가 더 열심히 하면 해결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라며“그래서 거절을 못하지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일이 많아 행복한 편이다”라고 했다. 

 

“학장이 되고 보니 우리 대학도 이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함을 체감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음악대학의 경우에는 연주자만을 양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음악대학 안에도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 음악행정(예술경영)을 가르치는 학과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했다.

 

“음악행정(예술경영)은 연주자들이 할 수 없거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하는 과정으로 그 분야의 공무원이나 기획자, 감독들은 반드시 이 과정을 통하여 일을 맡게 된다면 보다 내실있고 알찬 예술작품이나 공연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유럽대학에 가보니 음악대학 안에도 음악건축과가 있더군요. 심지어는 의과대학에는 의학건축과, 미술대학에는 미술건축학과 같은 과가 있더군요. 우리 대학에도 이제는 음악당만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며 설계하는 음악건축과가 생겨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투자유치, 예술경영과 설치 고민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런 준비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양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음악대학, 공과대학, 예술대학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대학이라 조금만 융합적인 사고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물론 정부와 상의도 해야 할 문제지만, 강한 의지와 함께 노력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 연말 한양대에는 아무 멋진 기부 소식이 들려왔다. ‘붙이는 매니큐어’로 유명한 글로벌기업 인코코 박화영 회장이 연말 모교인 한양대와 100억 원 기부 약정을 체결했다. 박 회장의 기부금 100억 원은 한양대 콘서트홀 건립에 쓰일 예정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이 음악을 할 때 배웠던 끈기와 열정에 있다고 믿고 있다. 박 회장은 “한양대 음대를 나와 기업인으로 전향했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며“모교 출신뿐 아니라 오페라 등 공연을 희망하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이 공간을 제공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제 성공의 비결은 음악을 공부할 때 배운 끈기와 집념, 열정이다. 많은 후배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이뤘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콘서트홀 건립과 독주회 준비 

“인코코 박 회장이 성악과 2년 후배인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는데, 내가 음악대학 학장이 되어서 만났더니 후배들을 위해 크게 기부한 번 하겠다고 하데요. 저는 음악대학 출신이 이공계출신과 어깨를 겨누며 사업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한양대학 음학대학에서도 새로운 도전으로 음악행정(예술경영),음악건축과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남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쉽게 고민하지 못하는 일을 하신 김연준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제가 퇴직할 무렵이면 박화영 회장이 기부한 돈으로 콘서트홀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저는 후배인 박 회장과 함께 작게라도 공연 한 번하고 싶다. 그래야 저도 후배도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 자리에서 반드시 김연준 선생의 노래를 많이 불러야겠다. 그리고 그 전에 더 준비하여 가곡집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라며“점점 사명감과 부담감이 넘쳐난다”고 했다.

 

성악가로 음악대학 교수로 평생을 살아온 박정원 선생. 그는 요즘 성악가로 교육자로 평생을 사신 김연준 선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양대 음악대학의 발전은 물론 후배들을 위한 콘서트홀 건립과 스스로 몇 년을 준비하여 김연준 선생에게 드리는 헌정 음반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숙제 속에 살아가고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늘 곁에 있는 착한 아들과 수많은 제자들, 동료 교수들은 물론 그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많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늘에서도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 김연준 총장님에게도 늘 감사를 보낸다”고 한다. 아름다운 겨울이 오고 있다. 옷깃을 여미는 날이 많은 겨울이 되었다. 이런 날에는 어느 카페 모퉁이에 앉아 ‘비가’를 들으면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를 한잔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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