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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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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황당하고 절망적일 때가 있었다면 언제였는가? 다윗은 오늘 가장 비참하고 원통함이 넘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내어주고 머리를 풀어헤친 체 맨발로 울면서 신하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때 사울의 먼 친척격인 시므이란 자가 다윗의 일행을 쫓아오면서 돌을 던지고 다윗을 저주했다. “..피를 흘린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 셨도다...”(7-8절)

 

지금 아들과의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것도 다윗은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데 베냐민 지파사람으로 정치적 입지가 다른 시므이는 다윗이 사울의 피를 흘려서 그 죄 값을 받는다고 비난한다. 다윗은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피해갔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의 생명을 취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울왕의 옷깃을 베고 나서도 괴로워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심복 아비새장군이 나서서 시므이의 목을 베게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다윗은 허락하지 않았다.

 

11-12절“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자신의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사울가의 피를 흘렸다는 그 저주를 묵묵히 감수하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감찰하시고 자신의 원통함을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는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 아직 다윗은 건재하고 다윗의 휘하 장군들은 충성스럽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용서하고 그의 생명을 헤치지 못하도록 엄히 명령하였다. 시므이를 향한 분노와 원통함이 일어날 때 다윗의 마음도 흔들렸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 따라 시므이를 용서하였다. 시므이를 용서한 다윗의 모습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미리 예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속옷을 제비뽑고 있는 군병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늘 아버지에게 기도했다.

 

눅23: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제비 뽑을 새” 예수님은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창조하신 피조물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다. 그리고 자신의 속옷을 나누려고 제비뽑는 군병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많은 이들이 용서가 힘들기에 미움과 증오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오늘날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그것이 마치 공정과 정의의 실현인양 외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진정 그것이 주님의 정의인가? 우리 예수님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죄인들을 용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일만달란트 빚진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은 것처럼 이웃과 형제의 허물을 용서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옵시고” 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나는 오늘도 일백데나리온 빚진자를 언제까지 움켜쥐고 정의를 외칠 것인가? 보복의 악순환이 있는 한 결코 사랑과 정의의 나라는 요원하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으로 불편한 내 이웃들을 조건없이 용서하는 한해의 끝자락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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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이 찾아올 때 - 사무엘하16장 5-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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