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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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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소외이웃을 돌보자는 캠페인이 정부는 물론 많은 사회단체들에서 나서고 있다. 특히 교회를 중심으로 소외이웃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웃사랑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어렵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행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편견과 섭입견이 강한 나머지 이웃에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이웃사랑이 잘못 오해되는 사례도 있다. 이기심은 타인을 생각하거나 돌볼 틈을 주지 않고, 어리석음은 하나님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이웃을 대하게 돼 진실한 사랑을 전할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율법사가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에 관하여 물었을 때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7~40절)고 말씀하셨다. 이 두 계명은 다 사랑의 문제,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참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물으셨을 때에, 율법사는 스스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나 자의 이웃이라고 답을 했다(누가복음 10장 30~37절). 

 

그러므로 우리의 참 이웃인 예수님의 사역에 따라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지나치게 세속화됨으로써 평안의 상징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저주 받은 도시인 ‘여리고’로 변질됨으로써 소외된 이웃들이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목회자는 제사장이 되고 있으며, 장로·집사는 레위인이 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강도만난 자들에게 참 이웃의 사랑으로 보살피는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님의 돌봄 사역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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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이웃 돌봄사역에 헌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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