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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겨울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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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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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이다. 산과 들에 곱게 물들었던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지고 곧 겨울이 닥쳐 올 것이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눈과 얼음이 참으로 신나겠고, 시인은 겨울의 설경과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이다. 하지만 겨울은 생명의 약동이 없고 중단 된 상태이다. 또 한 해를 마감하는 스산한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고 동식물은 동면에 들어간다. 지금 한국이야 난방이 잘 되어 있어 따뜻한 방에서 지내지만, 가난한 서민과 힘들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연탄 한 장도 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2천년 전 로마, 특히 로마의 감옥은 죄수가 견디기는 심히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난방도 없고, 방풍도 안되고, 죄수가 입는 옷이 체온을 보호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게 죄수들은 겨울에 얼어 죽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태리는 반도로서 한반도와 흡사하다. 그리고 로마는 위도가 서울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 로마의 감옥에 복음을 증거하다가 들어온 늙은 죄수 사도 바울이 갇혀 있다. 추위보다 더한 것은 고독이었다. 바울은 수제자 디모데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서 가죽종이에 쓴 성경과 드로아가보의 집에 맡겨 놓은 코트가 그리웠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어 「겨울 전에 어서 오라(Come before Winter)」라고 했다. 겨울이 되면 지중해가 얼어버리기 때문에 배가 다닐 수도 없다. 어쩌면 바울은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을 것이다. 그 때 디모데가 서둘러 왔더라면 스승인 바울을 만났겠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겨울이 되고 지중해가 얼어서 뱃길이 끊겨 스승 바울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디모데후서 4장의 이 내용을 가지고 「Come before Winter」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교회에서 30년 동안 하신 목사님이 있다. 그분은 바로 미국의 대 목회자요 설교가인 클라렌 멕카트니 목사님이었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일은 꼭 「겨울이 오기 전에」란 설교를 했는데,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국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 설교를 들으려고 피츠버그 제일 장로교회로 모여든다. 또 이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본 따서, 한국교회는 한경직 목사님, 김희보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들이 이 설교를 즐겨했다.

 

나는 평생을 신학대학원에서 <칼빈주의 사상>과 <개혁주의 설교학>을 가르쳤던 이유로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참 좋아했고, 그의 삶과 설교를 연구했다. 그래서 25년 전부터 멕카트니 목사님의 모든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 비버폴에 있는 제네바대학(Geneva College, 1848년 설립)을 자주 다녔다. 제네바 대학은 피츠버그의 개혁장로회신학교(RPTS)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언약도(Covenanters)들의 신앙을 따르는 칼빈(John Calvin)과 낙스(J. Knox)의 신학과 신앙을 철저히 사수하는 학교이다. 제네바 대학의 도서관 이름은 아예 멕카트니 도서관(McCartney Library)이라 했다. 멕카트니 목사는 부친이 제네바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던 존 멕카트니의 아들로 태어나서 미국 장로교회의 대지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멕카트니 박사는 1924년에 미국 장로교회의 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57년에 세상을 떠났다. 멕카트니 도서관의 기념 방에는 멕카트니가 사용하던 책들과 설교자료와 육필 원고가 가득 차있다. 멕카트니 목사의 자료에는 휴지에다 번득이는 설교 영감을 기록한 것도 있다. 제네바 대학은 1848년 세워진 신학, 기독교 교육학을 비롯해서 인문, 사회과학 등 20여 개 학과에 1,4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각 과는 공히 기독교세계관 곧 칼빈주의 세계관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 학교는 나의 평생에 칼빈주의 운동한 공로를 인정해서, 1996년에 나에게 명예문학박사(D.Litt)학위를 수여하였고, 나는 그 날 <교회와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란 제목의 강연을 한 추억도 있다. 나는 지난 9월에 제네바 대학에 다시 가서 몇 일 동안 멕카트니 도서관에 머물면서 멕카트니의 설교와 그 학교의 교수였던 J. G. 보스 교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J. G. 보스 교수는 1,900년대 초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성경신학의 아버지 겔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박사의 아들로, 한부선 선교사와 함께 만주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선교사로 일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총회가 1938년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신사참배를 반대한 성도들의 많은 수가 만주로 건너갔다. 박윤선 목사도 당시 만주 신경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부선 선교사와 J. G. 보스 선교사의 신앙의 지도로 500여 명의 한국 성도들이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신앙고백을 썼고, 이것은 독일의 바르멘 신앙고백(Barmen Confession)과 맞먹는 문서였다. 그 후 J. G. 보스는 선교사 사역을 끝내고 제네바 대학에서 20년간 성경신학교수로 일했다.

 

나는 이번에 보스 교수의 행적을 조사 중에 그의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9월 멕카트니 목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그가 목회하던 피츠버그 제일 장로교회를 방문했다. 피츠버그 시내에 있는 제일장로교회당은 참으로 아름답고 예술적이었고 웅장했다. 나는 멕카트니 목사가 섰던 강단에 올라가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런데 나는 교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주일 출석이 얼마나 모이는가 했더니 고작 200명이라고 했다. 그 옛날 멕카트니 목사가 목회할 때는 2,000명이 넘었었다. 그런데 이제 200명의 성도들이 모인단다. 이것이 미국 장로교회의 현주소였다. 이미 미국교회에 겨울이 온 것이다. 멕카트니 목사님의 「겨울이 오기 전에」어서어서 서두르라는 메시지가 미국 교회가 깨닫고 있었는지? 그리고 한국교회도 「겨울이 오기 전에」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겠는데…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교회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오늘도 나는 제네바 대학교에서 어렵게 구한 멕카트니 목사의 불멸의 설교 「Come before Winter」란 70년 전의 육성 설교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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