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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혐오

안재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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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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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잘 알려져 있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대서양을 건넜다.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농사꾼이 아니었으므로 먹고 살아갈 방법이 막막했다. 그랬던 청교도들에게 생명의 기술을 전수해 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땅의 주인인 인디언들이었다.

 

이듬해 가을이 되어 농작물을 풍성하게 얻게 된 청교도들은 추수를 마치고 3일 동안 축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 자신들에게 삶의 길을 열어준 인디언들을 초대했음은 물론이었다.

 

청교도들은 감사축제를 통해 신앙의 자유와 새로운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또한 목숨을 건 여정 속에서 하나가 되어 고난을 함께 이겨낸 가족들을 축복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고 삶의 기술까지 전수해준 인디언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그렇게 청교도들의 초기 정착지였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해마다 감사의 축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날의 감사는 70년이 지난 시점에 혐오로 바뀌었다. 1692년 뉴잉글랜드 지방의 살렘에서 마녀재판으로 인해 스무 명의 사람이 화형에 처해진 것이다. 가장 어린 희생자는 자그마치 5살이었다.

 

척박한 정착지의 현실을 살면서 그들의 삶은 자주 불안에 빠지고 쉽게 위협을 느꼈다. 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청교도들은 악마의 짓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먼저 무너진 것은 가정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와 신세계의 자연과 싸워가며 견고하게 하나가 되었던 가정은, 우리 가운데 마녀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속에 하나 됨을 잃어버리고 붕괴되어갔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더 위치」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청교도들의 마녀사냥과 혐오의 대상은 가족에서 외부로 옮겨졌다. 그 대상은 바로 자신들의 정착을 도왔던 인디언이었다. 인디언에 대한 혐오는 다시 가족의 결속을 가져왔고, 인디언 학살로 인해 얻은 부와 안정은 감사를 회복시켰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 치유 받은 10명의 나병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었던 나병환자들에게 치유의 사건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감사였을 것이다. 이런 기적을 경험했다면 그 일을 베푸신 분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돌아와 감사를 표한 사람은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 유대인에게 사마리아 사람은 당대의 마녀였고 혐오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엎드려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 17장 19절) 말씀하셨다.

 

함께 나병을 치유 받았던 아홉 명의 유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아와 감사를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았을까? 이제는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마리아 나병환자뿐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전체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거두었을까? 혐오의 정서로 만연해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금,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

/참다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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