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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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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다시 읽고 싶은 가을이다. 이 한 권의 책은 인생의 가치와 사랑의 미학으로 녹아 있다. 어쩌면 번역가 ‘아낌없이’ 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독자가 이미 다 알 수 있는 감정을 하나의 열매로 제시했기에 더 잘 그렇게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벚꽃의 축제 같은 인생도 아름답고 한 여름 녹음이 주는 청량감 같은 인생도 아름답지만 역시 참으로 좋은 건 안식을 가져 다 주는 가을같은 결실의 삶이다.

 

무엇이든 감사로 맞이하면 상처로 시름시름 앓는 마음보다는 평안의 열매를 얻을 수 있어 좋다. 미움의 가시대신 용서하는 훈련을 하다보면 인격의 품위로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성경은 쓸모없는 말을 ‘가라지’라고 한다. ‘한담’은 우리의 속을 비게 하고 공허하게 만든다고 경계하고 있다. 속에서 익히고 삶으로 살아내지 않는 언어는 바람같이 공허하다. 느끼고 체험하고 살아낸 말만이 생명의 씨앗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으로 날아가 치유가 되고 사랑으로 깨어난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구주로 믿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과 삶과 가슴과 영혼이 하나에서 나온 말의 씨는 부족하다. 어디선가 들은 것, 정보를 통해 값없이 얻어낸 것, 신기하고 재미있는 말거리들로 무성한 잎사귀처럼 생명 없는 말이 너무 난무하다. 지금은 과연 정보의 시대로 언어가 소통하는 길이 사방에 열려있다. 그 통로로 언어는 오염되고 생명을 앗아만 간다. 누가 이 소통의 통로를 단절할 수 있겠는가? 누가 이 한담을 금할 수 있는가? 마음으로 낳은 언어만이 생명을 낳고 날아가는 대로 생기가 되어 줄 것이다. 원래 말은 생기였다. 살리는 것은 말이었다. 말이 회복되는 언어의 가을이 오길 모두 지금은 바라고 있다. 말의 열매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한담을 그치라 하셨다. 가장 좋지 못한 상황이 바로 이 말이 만들기 때문이다.

새끼 빼앗긴 암곰, 미련한 자, 조급한 자 중에서 어떤 경우를 가장 최악이라고 볼 수 있을 까? 성경은 가장 최악의 상태를 조급한 사람이라고 한다.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분노는 사람을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그런데 분노보다 더 불행한 일은 미련한 자를 만나는 일에 있다. 왜일까? 오만 불손과 교만의 상징이요 심판과 멸망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조급함이다. 때로는 이 조급함이 일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속도감이 있어서 민첩해 보이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인품 같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은 분노하는 사람보다, 미련한 사람보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 바로 이 조급한 사람에 있다고 한다.

 

생산한 것이 아닌 얻은 것으로는 배부를 수가 없다. 들은 것은 지나가고 나의 인격을 조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체험하고 고통과 눈물 속에서 얻고 배운 말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에도 살아 있고, 상대방으로 풍족함을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진심을 느끼고 마음을 나누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인사를 받아도 여전히 마음이 배고픈 것은 죽은 언어가 많기 때문이다.

 

언어의 가을이 온다면 언어가 익어가는 소리 가득히 우리의 혀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완전한 말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는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고통 속에서 배운 감사라는 진심어린 말 하나를 일상에 심어본다. /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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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말과 시가 익어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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