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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3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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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기독교문학’ 정착에 주도, 문학을 통한 하나님나라 확장도

기독교문학, 문학사적인 측면서 논의할 만큼 질적·양적으로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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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대문학 속에서 기독교문학은 큰 맥락을 형성해 왔습니다. 기독교는 신문학 초창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신문학이후 지금까지의 기독교문학은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논의할 만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한 오늘입니다. 그러나 시를 비롯한 장르별로 문학적인 가치성을 지닌 작품들이 창작되어 왔으나, 대부분 외면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자체가 외면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성장과 부흥에만 주력해 왔고, 기독교문학을 비롯한 기독교문화의 발전이나 확산문제는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국 기독교문학을 주도해 온 한국기독교문인협회가 ‘사단법인’허가를 받아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기독교문학’ 향상과 확산 주도 

— 한국기독교문인협회는 지금까지 임의단체로 활동해 왔으나, 이제는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인 단체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본협회는 2016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았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늘봄 전영택목사를 중심으로 주태익, 이종환, 임옥인, 김현승, 박목월, 황금찬, 이범선, 박화목 등 그 당시 문단의 거목들이 창립에 앞장 섰습니다. 1967년 1월 21일 창립된 본 협회의 지난 50년은 순탄한 역사로 기록될 수 없었습니다. 침체와 위기 속에서 계속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도 이 땅에 기독교문학을 정착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기독교문학을 통한 하나님나라 확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한국기독교문인협회가 창립된 이후 한국 기독교문학을 주도해 왔습니다. 한국 기독교문학의 향상과 확산에 주력했고,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의 중심인물들이 한국기독교문인협회를 이끌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문인협회는 1967년 한국크리스찬문학가협회로 출범했습니다. 그 이후 시대적 상황에 따라 1994년 제27회 총회에서 한국기독교문인협회로 개칭했습니다. 그 당시 김영삼정부인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군사정권시대를 청산하기 위한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들이닥칠 때였습니다. 본 협회도 지난날의 잘못된 행태를 회개하고 하나님나라 확장의 도구가 되기 위해 개혁의 차원에서 개칭하게 된 것입니다.

 

본 협회의 역대 회장이나 회원 중에는 한국문학과 한국문단을 이끌어 왔던 주역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창립총회 당시에 명예회장인 전영택목사는 1962년 창립된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제2대 회장인 이종환작가는 상임이사로 한국문인협회를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3대와 4대 회장인 임옥인작가는 1965년 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지냈고, 제7·8대 회장인 박목월시인은 1969년부터 1978년 3월까지 9대에 걸쳐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본 협회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사업은 세미나와 연간집 〈기독교문학〉의 발행, 송년모임 혹은 신년하례회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부터 한국기독교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해 오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기독교문학을 확산시키는 방안으로 전국교회를 순회하며 문학사랑방을 진행해 오는 것이 본 협회 사업의 특징입니다. 

 

 

기독교, 우리나라 신문학에 큰 영향

▲ 우리나라 신문학은 기독교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서번역을 통한 한글대중화는 우리나라 현대문학 발전과 한글을 전용하는 기풍조성에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글성서가 문학사적으로 의의를 갖는 것은 1882년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역간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헬라어 원문을 한글로 표기하는 데에 있어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이 성서는 전도용으로 사용되어 한글대중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한글성서는 우리 글에 대한 자각을 통해 한글문화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번역성서를 통해 한글의 대중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순한글로 된 책과 번역물이 발간되었습니다. 그것은 한글위주의 생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더욱이나 성서의 한글번역과 한글의 대중화는 서구의 사고방식, 즉 서구문화를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전달된 한글성서는 근대 시민사회를 이루는 계몽의 언어로서 서구의 신문화를 매개하는 데 주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신문학사상 최초의 번역작품인 1895년의 〈천로역정〉은 우리 문학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희보는 1979년 현대사상사가 펴낸 〈한국문학과 기독교〉에서 “〈천로역정〉 번역은 우리나라 신문학사상 최초의 번역작품이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한 최초의 번안소설인 〈은세계〉가 이해조에 의해 나온 것이 1898년임을 미루어 볼 때, 이 〈천로역정〉의 간행연대가 얼마나 앞섰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이 〈천로역정〉은 신문학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영향으로 한국 신문학의 신시운동은 창가로 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창가는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백 철은 〈신문학사조사〉에서 “우리는 본시 창가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할 때, 그것이 처음에는 기독교의 찬송가에서 왔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이 창가문학은 1896년부터 1908년까지 10여년에 걸쳐 그 전성기를 이뤘습니다.

 

이러한 초기의 기독교활동은 성서번역을 계기로 한글성서 및 찬송가의 보급, 존 번연의 〈천로역정〉등의 번역물이 한국 신문학의 태동기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문학에 대한 형성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육당·춘원도 기독교영향 받아 창작

▲1908년 〈소년〉을 창간한 육당 최남선이나 춘원 이광수의 작품에 기독교적 영향을 받은 작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19년 신문학사상 최초의 순문예지로 창간된 〈창조〉의 주요동인인 김동인과 전영택, 주요한 모두가 한결같이 기독교적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김동인의 경우 1919년의 「약한 자의 슬픔」, 1920년의 「마음의 얕은 자여」, 1930년의 「유서」 등 기독교적인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약한 자의 슬픔」은 〈창조〉 창간호에 발표되었으며, 신문학기에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으로 기독교적 재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요한의 시에서도 기독교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가의 기도」 등 시들은 기독교가정에서 성장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영택은 감리교목사로 신문학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창조〉 5호부터 7호까지 연재된 「생명의 봄」과 1925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화수분」 등 작품에서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정신의 회복을 위한 박애, 인도주의적인 세계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 땅에서의 기독교문학의 가능성을 맨 처음 실험해 보인 작가입니다. 

 

 

▲한국기독교문학사적인 측면에서 서술할 경우 1919년에 창간된 순문예지 〈창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기독교문학도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소재를 창작하는 문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문학적 평가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초기부터 근대화의 물결을 가져왔던 것처럼, 한국문학 속의 기독교는 건강한 뿌리를 내린 것도 기독교의 모든 행위가 생활화, 즉 신앙이 육화되어 가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현대문학 속에 새로운 체계를 세우고 있는 기독교문학은 큰 맥락을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사상이 우리의 생활 속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정신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인복은 1987년 1월호 〈월간문학〉에서 「한국소설에 수용된 기독교사상 연구」란 논문을 통해 기독교사상은 “우리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의 소재와 주제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이제 남의 것이 아니요, 바로 내 것의 일부로서 만일에 기독교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일부를 상실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문학의 형성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대문학에 ‘기독교문학’ 큰 맥락 형성

—우리나라 현대문학 속에서의 기독교는 과소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의식이 기독교문화로 부터 싹튼 것과 기독교가 이 땅에 남긴 공적은 오늘의 사회저변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확대되는 데에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서보급을 통한 한글대중화는 우리나라 현대문학 발전과 한글을 전용하는 기풍조성에 공적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기독교는 이미 단순한 외래사조나 외래종교가 아닌 것으로 정착되었고, 모두의 생활 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의 사단법인 설립과 한국 기독교문학의 실상에 대해 들려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독교문학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을 주셨으면 합니다.

—바라건대 ‘큰 바위얼굴’ 같은 세계적인 그림을 그려 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회원들은 문학을 통한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신곡〉, 영국 존 밀턴의 대서사시 〈실낙원〉,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같은 위대한 기독교문학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열심히 그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고 다짐합니다.

 

▲좋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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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사단법인 설립한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법인 초대이사장’ 김영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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