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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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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기독교의 대를 이어오며 운명처럼 받아져야 했던 종교가 갑갑하게 느껴졌던 것은 고등학교 늦은 시기에 찾아온 사춘기때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하는지 알 수 없었고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니는 친구들과 같은 직장과 직업을 갖는 것이 로망이었고 비전이었다. 답은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주일에 자리만 채우는 교인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졸업이 반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취직을 했다. 처음 얻은 자유로움에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본격적인 일탈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삶을 꽉 채우고 있던 신앙이 중심을 잃어가자 위태로워진 내 삶에 주인되시는 주님은 여러차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셨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극단적이게 신호를 보내셨지만 그 신호를 눈치채기에 내 영적상태는 너무 둔해져 있었다. 많은 문제들과 잦은 트러블로 인해 친구들과 같은 직장에서 같은 직업을 갖는 나의 로망과 비전은 남들보다 몇 개월 더 남아있다가 퇴사를 하고 본가로 내려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의미없는 20대의 초반을 그렇게 허비하고 소망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 될 때 중보기도 요청을 받았다. 딱히 은사도 없었던 것 같고 남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생소했던 일이라 끌리지 않았지만 내 신앙생활도 다시 회복시킬 겸해서 엄마와 함께 교회에 기도를 하러 다녔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눈 앞에 결과물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그 날 기도는 불평과 투정으로 가득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흔한 간증문 속에서 나올 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꿈속에서 보이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딸아. 네 안에 네가 너무 많아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만약 이 음성을 귀로 직접 들었다면 나는 그 분의 위엄 앞에 고꾸라졌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교회로 달려갔다. 내 연약함과 교만함이 내 안에 주님을 자꾸 밀어내고 있었음을 눈물로 회개했다. 뜨거움이 차오르기 시작하니 간절함이 생기고 중보기도를 요청했던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주님의 일하심은 선하게 이루어졌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죽어가는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쩌면 내 기도가 없었어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신가.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그 도구로 사용하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친히 찾으러 오셨다. 왜 내가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님은 역사하심으로 내게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고, 내 삶의 주인 되신 그 분을 내 주로 영접할 때 나는 이제 내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고, 나는 주님께서 일하시는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주님의 일 하는데 망설여지는 순간들이 여전히 찾아오게 된다. 주저하다가 믿음 없음에 좌절하게 된다. 그 때마다 주님은 선하게 이끌어 가신 역사들을 보여주시며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여 주신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계획을 세워놓지만 그 길이 항상 옳을 수 만은 없다. 하지만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획마저도 계획하고 계셨다.

 

그 계획이 옳든 옳지 않던 주님은 선하신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가실 것이고 반드시 끝까지 그 분의 자녀 된 나를 책임지실 것이며 축복하실 것이라 믿는다. 주님의 영원하신 사랑 앞에 나의 나 됨을 버리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그렇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정애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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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선하신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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