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 시편 61편
장윤재목사
갈릴리는 가난한 곳이었다. 남쪽에 위치한 사마리아나 유대 지방과 비교해 빈곤한 곳이었다. 가난의 이유는 로마의 수탈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은 세금 징수를 통해 주민들을 약탈했다. 이에 저항하면 공개처형인 십자가형으로 탄압했다. 이 갈릴리가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그리고 그가 공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적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났다. 생긴 것이 수금을 닮아 구약성서에서 ‘긴네렛’(민수기 34장 11절, 여호수아 13장 27절)이라고 불린 이 바다는 신약성서에서 ‘게네사렛’(누가 5:2) 혹은 ‘디베랴’(요한 6:1)라고 불렸는데, 이 바닷가에 있는 항구인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 디베랴, 거라사 등이 바로 예수님의 주요 사역지였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바로 이러한 갈릴리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라는 복음을 선포하며 시작됐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실 때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태 4장 19절).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았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도 곧 배와 자기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은 갈릴리의 급속한 해체 속에서 무언가 거룩하고 참된 새 삶에 대한 깊은 갈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중 아무도 감히 골고다 언덕을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처형 이후 그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죄를 찾을 수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일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그들은 깊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골고다 언덕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삶의 한 가운데에 이미 있던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때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이 들려왔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갈릴리로 부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놓고 온 그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본회퍼목사의 이 심오한 말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서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인이 된 세계’에서 성의 영역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제 사람들에게 종교는 삶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한 가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는 오늘날 이렇게 변두리로 밀려난 성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온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주일 아침 11시부터 12시까지만, 그리고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의 현장 그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타자를 위한 존재’이듯, 그리스도의 교회도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 세상 안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의 천사가 우리에게 이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갈릴리로 가라. 우리 삶의 현장, 주님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는 이 세계의 중심으로 힘차게 나아가자. 주께서 세상 끝까지 여러분과 동행하실 것이다.
/이화대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