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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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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창국장-최종.jpg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전문


고정희(高靜熙)는 1970년대와 1980년 초에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주목받았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억압을 받는 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의 시의 배경은 1970년대 유신시대를 거쳐 1980년 신군부 독재정권, 그리고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시는 제4연 2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힘찬 언어의 시적 표현으로 지금에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진행형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사랑과 용기로 위로하고, 희망의 내일을 향한 걸음걸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연유한다.

1연은 상처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회복심리를 추구했다. 1행의 ‘상한 갈대’는 5행의 ‘상한 영혼’으로 대치되고 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는 절망하지 않고 삶을 지탱해 나가는 모습이다. 또한 “뿌리 깊으면야/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는 자연의 이치이다. 뿌리가 깊으면 밑둥이 잘리어도 새 순이 돋기 때문이다. 특히 4행의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에서 절망을 극복한 모습을 강조했다. 1행에서 4행까지 상한 갈대의 자연적 현상을 보여주고, 절망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추구했다. 그리고 5, 6행은 현실적 극복의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제2연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개하고 있다. 물에 떠있는 부평초잎은 흔히 개구리밥이라고 말한다. 이 부평초잎은 물만 고이면 꽃이 핀다.

또한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등불도 켜진다. 이러한 현상처럼 상한 영혼도 어딘들 못 가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나,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고 반문하는 것은,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제3연은 절망의 현실이다.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일깨워 준다. 그것은 ‘영원한 눈물’이나 ‘영원한 비탄’은 없다고 가르쳐 준다. 고통과 설움의 땅을 지나 뿌리 깊은 벌판에 서면, 고통과 설움에 의한 눈물이나 비탄은 지난 과거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신앙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4연에서도 기독교신앙에 대한 믿음을 형상화했다. ‘하늘’은 ‘하나님’으로 기독교신앙을 의미하고 있다. ‘캄캄한 밤’은 현실적 절망과 고통의 상황이다. 그리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는 구원의 손길이다. ‘하늘 아래’에서는 절망과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독교신앙은 새로운 삶을 주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연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형상화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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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시 다시읽기 41]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와 사랑 -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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