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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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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모든 일들에 목적이 있듯이 교회에도 목적이 있고, 교회의 목적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교인들이 누구인가.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므로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교인들과 교회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빛과 소금’이 아니고 ‘소금과 빛’이다.

 

먼저 교인들과 교회들은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인들과 교회들은 기질과 특성이 ‘소금’으로 바뀌어 진 존재들이라고 주님은 말씀했다. 본래는 소금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그 기질과 특성이 ‘소금’으로 바뀌어 진 존재들이라고 말씀했다. 존재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행실과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소금’이 하는 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썩는 것을 막는 일이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생선이 썩지 않는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무와 배추가 썩지 않는다. 소금은 썩는 일을 방지한다. 즉 방부제의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맛을 내는 일이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굴비도 되고 맛있는 고등어도 된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김치가 된다. 소금은 맛을 낸다. 세 번째는 스스로 없어지는 일이다. 소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녹아서 없어지고 만다.

 

세상에 대한 신자들과 교회들의 사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교인들과 교회들은 썩어져 가는 세상과 사회를 위해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세상과 사회는 그 대로 놔두면 썩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들은 맛이 없는 이 세상의 삶을 위해 조미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과 의미, 재미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소명 의식과 사명 의식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또한 교회들은 세상의 어느 곳이나 깊이 파고 들어가서 녹아 없어지는 희생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없어진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하고 손해 보는 것을 뜻한다. 돈도 손해보고 시간도 손해보고 건강도 손해보고 마지막에는 생명도 손해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교인들과 교회들이 ‘소금’이 되었을 때 ‘빛’의 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 ‘빛’이 하는 일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두움을 몰아내는 일이다. 숨어 있던 더러운 것들을 밝히 드러내는 정화와 청결의 일이다. 둘째는 밝음과 따뜻함을 가져다주는 온화의 일이다. 빛이 비치면 따뜻함과 기쁨이 생긴다. 셋째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의 일이다. 등대의 빛은 배가 항해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세상에 교인들과 교회들의 사회적 책임도 마찬가지다. 교회들은 첫째로 세상의 어두움과 죄악을 드러내고 몰아내는 정화와 청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어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의 빛을 비치는 온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로 혼돈 가운데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의 역할도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교인들과 교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하고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할 일은 소금과 빛이 되어 착한 행실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일이다.

기독교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세속의 문화가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를 지배할 때 우리 교인들과 교회들이 소금과 빛의 문화를 사회 속에 퍼뜨려야 한다. 세상의 문화가 쫓고 있는 썩고 음침한 것들을 정화하여 십자가가 드러나는 영생의 빛을 소개해야 한다. 기독교 문화는 세상에 맛을 내고 빛을 더하는 역할을 감당해내야 한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강변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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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기독교 문화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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