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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9.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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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다. 감사는 행복의 첩경이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의 삶에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감사의 마음에서 나온다. 행복은 단순한 즐거움보다는 마음이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 행복의 조건을 ‘자기 삶에 대한 만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삶에 만족한 사람은 감정에 흔들리거나 욕망에 현혹되지 않고, 성공에 우쭐해 하거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사실 삶의 만족은 감사에서 생기고, 마음의 평정과 고요도 진정한 감사에서 나온다. 감사는 행복에 보완적 요소가 아니라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영어의 감사는 라틴어 ‘그라투스’에서 나왔다. 감사는 도움 받은 사람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느끼는 고마운 마음이다. 감사는 모든 종교의 핵심적 요소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모든 문화와 철학이 시대를 막론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온 주제가 아닌가? 감사에는 현실에 대한 안주나 빚진 마음과 같은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모든 시대를 통해 감사는 인간의 욕망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지침이 되어 왔다. 감사는 삶의 만족이나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몬스와 맥컬로프는 감사의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연구에서 그들은 대학생들에게 10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감사한 일들 다섯 가지를 찾아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감사 일기를 쓴 학생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고,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실험 기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와 낙관성이 높았다. 감사 일기를 쓴 대학생들은 부정적인 생각은 줄어들고 긍정적인 생각은 늘어났다. 자기 스스로를 가치 있게 느끼는 자존감도 높아졌다. 감사 일기는 정서적인 문제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신체적인 측면에서 수면의 양도 늘고, 질도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용서하게 한다. 감사하는 삶 속에서 행복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기독교인의 기본 태도’는 감사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사를 ‘복음의 심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에 조건이 없듯이 깊은 감사에는 조건이 없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18편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07편 1절)

 

시인은 왜 똑 같은 감사의 노래를 반복할까? 그 이유는 감사의 근거와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데 있다. 인간이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있다. 만일 하나님이 선하지 않고 인자하지 않다면 죄를 지은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존재가 된다. 그래서 시편은 오히려 우리가 존재하는 그 자체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의 절대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감사의 의미가 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장 17~18절)

 

감사는 자족을 낳고 자족은 행복을 낳는다. 감사함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소망해 본다.

 

/영남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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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행복: 감사는 행복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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