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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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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정성구.jpg▲ 정성구목사
 
1964년 나는 외국 유학의 꿈이 있어서, 종로에 있는 시사영어학원에 등록해서 영어강의를 들었다. 타임지를 읽고 해석하는 과목이었다. 그때 강사는 변영태씨였다.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와 서울대 교수,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서인지 만년에 영어학원 강사로 겨우 생활을 하였다. 마침 변영태선생의 가족이 내가 일하던 동산교회에 출석했다. 동산교회는 박윤선목사와 김성환목사가 목회했고, 나는 당시 교육전도사로 봉사했었다.

 변영태선생은 영어의 달인인 데다가 중국어도 능통했기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외무장관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제네바 회의를 비롯해 6, 7차 U.N. 총회 한국대표로서 이승만대통령의 명을 따라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서명한 탁월하고 진실한 외교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정직했으면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면 남은 출장비를 반드시 국고에 넣었다. 친척들이나 자녀들의 불평은 그렇게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자, 모두 그를 배신하고 욕을 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과 진실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고, 만년에는 병든 아내를 위해서 직접 연탄불을 갈 정도였다. 그는 건국 초기에 한국외교의 기초를 튼튼히 했지만,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일본의 침략적 계획을 물리친 일이다.

 1954년 10월 28일 우리 외교부에서 반박 구상서를 작성했다. 즉 분쟁을 국제 사법재판소에 부탁하자는 일본정부의 제안은 사법적인 가장으로서 허위주장하는 확인을 국제사법재판소에 구하여야 한다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런 분쟁이 없는데도 유사적, 영토적 분쟁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변영태선생은 독도가 영토 문제가 아닌 역사 문제라는 논리를 폈다. 1954년 9월 24일 구상서에서 “한국은 40년 이상이나 제국적 일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그의 권리가 약탈당하였다는 사실을 일본에게 환기시키는 바이다. 일본정부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침략은 차차로 진행되다가 1910년 한국의 일본병합으로서 그 정점에 도달 하였다 … 시네마 현청이 독도를 자칭하여 그의 관할권에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협정의 1년 후이다”며, “과거에 있어서 일제 침략의 최초로 희생된 독도를 또다시 점유하려 함은 대일강화조약을 파기하고 한국을 재침하려는 의도적 발로이다”고 했다.

 변영태선생은 그의 꼬장꼬장하면서도 능숙한 외교로 이승만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독도를 지켜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54년 독도에 독도 등대를 설치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로태극기와 한국령 표지석을 설치하여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역사가들이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고 독재의 화신이니, 친일이니 하는 오명을 덮어씌우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변영태 외무장관 겸 국무총리의 나라사랑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한미방위조약을 만들어 미국의 우산 아래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초를 놓았고, 독도를 확실히 지켜낸 것을 오늘의 세대는 알는지 모르겠다.

나라사랑을 위한 변영태선생의 애국심과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과 정직과 진실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오늘날은 자칭 애국자가 많지만, 그 시대에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외교적 노력과 하나님 앞에서 양심과 정직으로 살려는 지도자가 그립다.
/총신대·대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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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영해의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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