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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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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문화를 주도하는 강력한 두 사조가 있다. 기독교사상이 바탕인 헤브라이즘이라는 신본주의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근간으로 하는 헬레니즘이라는 인본주의, 곧 구속사와 세속사라는 상충 되는 흐름이다. 그리고 인간 안에도 가인과 아벨로 대별되는 두 혈통이 존재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에덴동산의 발원지 중 하나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이 문명을 주도한 혈통이 가인의 후예들인데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높은 성을 구축한다.

대조적인 삶을 보여준 아벨의 혈통을 이은 셋의 후예들이 있다. 성경은 누가 누구를 낳고 얼마를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뿐이지만, 이들 안에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믿음의 씨앗이 심겨 있었고 때가 되니 그 씨가 발아 되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세기 4장 26절)는 싹으로 나온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이름을 불러 말을 건다”란 뜻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공적 신앙고백을 하면서 찬양과 기도가 곁들여진 형식을 갖춘 예배를 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담이 그토록 고대했던 여자의 후손은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으로, 혈통적으로는 셋 계통으로, 사상적으로는 헤브라이즘을 통해 세속화로부터 그들을 보존하신 후 마침내 성령잉태로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셨다. 구원과 함께 심판을 단행하심으로(창세기 6장 7절) 사랑과 공의도 보여주셨다. 이 홍수심판의 위기에 대해 창세기 6장 1~2절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원인분석을 했다. 셋의 후예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가인의 후손들과 혼합되어 타락함으로 홍수심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노아 시대나 소돔과 고모라 당시도 그렇고 오늘날의 위기 역시 타락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타락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도 진리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사사기 21장 25절) 살려는데 있다. 

믿는 자들이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방기하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된다.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해야 하며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밝혀야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착한 행실로 건덕을 이루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정치, 경제, 외교적 위기도 의인 열 명이 없어서이다. 세상과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로마서 8장 19절)고 했다. ‘나타나기’가 영어성경엔 ‘manifestation’인데 이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해 완전히 회복 된 의인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신령한 성도(로마서 8장 14절)들의 출현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2~28절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고,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회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예고한다. 당초 하나님의 섭리가 복원되는 카이로스의 때로서 이런 자격조건에 가장 부합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이 시대는 일본의 경제도발과 열강의 각축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해방시켜줄 또 다른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기다렸던 여자의 후손,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했던 메시아, 신구약 성경의 중심 주제, 인류 역사의 분기점인 B.C와 A.D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영화롭게 섬길 의인 열 명이 필요하다. 
/예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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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우리 신앙의 현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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