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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0.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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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g▲ 이상대목사
  서방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선택한다면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니교와 신플라톤주의로 대표되는 이교 사상과 대립하는 한편, 펠라기우스주의와 도나투스주의 등 이단 사설을 논박하며 기독교 신앙을 굳건히 지켜낸 인물이다.

  무너져가는 고대 로마의 끝자락에서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섰던 그는 생전에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그리고 모든 일에 사랑을”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신학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교회는 죄와 악이 없는 깨끗한 ‘성소’가 아니라 그것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모여 치료를 받는 ‘병원’이었다. 당대 어떤 이보다도 열정적으로 이단을 적대시했지만, 이단에 몸담았던 이가 올바른 교회로 돌아온다면 이전까지 지녔던 신앙과 성례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무한한 일치와 관용을 우선시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한국교회는 과연 아름다운 모습일까. 수없이 난립하는 교회연합기관들은 수년 동안 통합을 약속했지만, 그 끝은 공허하기만 했다. 각 교단 총회가 끝나고 현재는 각 교단마다 노회가 열리고 있지만 사회에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화합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끝도 없이 일어나는 정치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퀴어 단체와 반동성애 단체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NAP를,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친 동성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남북·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질서에 어마어마한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제주도 난민 문제와 미투운동은 또 어떠한가.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에서 신속히 논의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이 시기에 교회에 일치와 관용을 필두로 하는 연합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자리만을 지켜내고자 하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이제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아 이 땅에 굳건히 서서 새로움을 전해주어야 한다. 이 암울하고 슬픈 세계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반석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음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세우시고자 했던 반석이 무엇인지 숙고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고자 하는 반석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복음 12:29~31)

  지난해 전국 곳곳에서 개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가 자칫 무색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개혁하는 교회, 변화하는 교회가 되어 한국은 물론 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로 한 다짐을 힘씀으로 이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이룩하고자 하루빨리 연합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소모적인 분쟁과 논란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끝내고, 한국교회가 진리의 깃발 아래 모여 다 함께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교회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희망의 빛이 되어 세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이다. 현실이 지금 이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와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
/미래목회포럼 전 대표회장·서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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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과 희망을 전하는 교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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