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거룩한나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로마 정부하에서 점차로 핍박과 억압의 강도가 높아져 가고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주신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즉 성도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을 다루고 있다. 사람에게는 정체성이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러한 정체성이 확고할 때 담대함과 자신감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특별히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거룩한 나라”라는 정의이다. 동양철학에서도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은 다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일인국가이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한 뒤로는 두 종류의 사람과 나라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원수, 거룩한 나라와 거룩하지 않은 나라이다.
그런데 주님은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성경을 보면 복음에 대해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 복음, 천국 복음, 화평의 복음, 은혜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영원한 복음 등이 그것이다. 특별히 이 가운데에서 주목해 볼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에 전파되어야 할 복음을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하셨다. 다 동일한 복음을 말하지만 “천국 복음”에서는 나라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것이다.
본질상 성도의 기도와 관심과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핵심이 바로 마태복음 6장 10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성도의 기도는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구하지 않아도 다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히 마귀에게 세뇌를 당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영역에 있어서조차 믿지 않는 자들이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본질적으로 나의 욕심의 나라와 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방인들의 기도와 성도의 기도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계시록 21장 4절에 “그 나라는 눈물 흘리는 일이나 곡하는 일이 없고 아픈 것도 죽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한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의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나라이다. 이 문제 많고 죄 많은 세상 나라에서 예고편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맛보며 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회개할 것밖에 없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회개는 천국의 능력을 충분히 맛보지 못한 것에 대한 더 깊은 차원의 회개여야 한다. 생명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여야 한다. 이런 회개가 깊어지고 사무칠수록 나는 죽고 예수 부활의 생명의 능력이 거룩한 나라, 천국 된 나의 삶에 실제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시대와 나라에도 적용해보길 바란다. 여러 가지 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안고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뜻대로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지 않으려는 우리들이 먼저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이 한반도의 상황은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내외적인 논의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이때야말로 교회와 성도들은 더더욱 깨어 하나님의 온전하고도 선한 뜻이 남과 북, 우리 민족 모두에게 성취될 수 있도록 평화와 통일을 위해 치열한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나님이 보우하사 거룩한 나라 대한민국 만세!
/포항 기쁨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