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흙에 깃든 숨
고린도후서 4장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7절)
인생의 본질은 흙이다. 그 어떤 화려한 인생이라도 겉모습을 걷어 내고 나면 흙만 남는다. 아무리 예쁘고 잘 생기고 건강하고 유명했어도 살과 뼈가 다 타고 나면 티끌만 남는다.
사람(아담)이라는 말의 뜻이 땅(아다마)의 흙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땅에 속한 존재이다. 원래 먼지요 티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땅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주께서 정하신 삶의 숙명이다(시편 90:3).
그러나 또한 인생은 흙일 수만은 없다. 흙은 흙일진대, 그보다는 나은 어떤 다른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인생이 너무나도 덧없고 한없이 가련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무엇인가 인간과는 다른 기원 즉 신적인 요소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땅의 흙으로만은 설명이 되지 않는 하늘에 속한 인생의 또 다른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됐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속에 그려진 인간의 자화상은 흙 속에 떨어진 신의 눈물이나 핏방울로 그 존재의 이원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매뉴얼이 원래 그렇게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경건한 셋이나 셈의 후손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인간의 DNA에는 흙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숨)이 함께 들어 있다고 가르친다(창 2:7). 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인간의 인간 됨의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이 불어 넣어지기 전에는 사람은 그저 진흙덩이었다. 숨이 들어가 비로소 몸에 피가 돌듯이 생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생명은 흙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이 인종과 신분을 불문하고, 신체상의 그 어떤 우열에도 상관없이 동등하고 공평한 것은 인간에게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생명이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밖에서 즉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떠한 성과물도 결국에는 땅의 티끌이요 먼지에 불과하다. 생명은 인간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생명의 숨은 흙의 바깥으로부터 흙 안으로 불어 넣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데 그토록 자명한 사실을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잠시 들여다본다. 호흡이 그치고, 숨이 그를 떠날 때에서야 비로소 인생이 결국 한 줌 먼지였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의 지혜자들은 숨이 나를 떠나기 전,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내게서 어두워지기 전에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창조주 되신 하나님에게 있음을 발견하라고 그토록 가르쳤던 것이다(전도서 12:1-2).
인생은 질그릇이다. 흙으로 만든 그릇이다. 무엇인가를 담아내지 않고 흙인 채로만 있어서는, 흙으로만 있다가 흙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존재이다. 내 인생 그릇에 무엇을 담아내겠는가? 만일 내 삶에 하나님의 숨결을 담아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을 뿜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흙에 깃든 숨을 찾아보자. 그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유일한 힘이다(고린도후서 4:7).
/예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