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1) - 한세대학교 차준희 교수
오늘의 신학동향 - 성서신학

사사기에서 루아흐라는 단어는 총 10구절에서 나타난다. 이 가운데서 사사기 8:3과 15:19에서는 ‘인간의 영’(human spirit)으로 사용되고, 9:23에서는 ‘악한 영’으로 쓰였다. 나머지 일곱 본문의 경우는 모두 루아흐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에 관한 주제는 사사기에 관한 주석서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쉽게 간과되거나 혹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비로소 사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에 관한 연구물들이 조금씩 발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민감한 오순절학자에 의해서 사사기에 대한 연구물이 최근에 발표된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 글은 사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의 의미와 기능을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하여 사사시대의 하나님의 영의 특징에 대하여 일찍이 탁월한 분석을 하여 이 분야에서 거의 정설로 평가받고 있는 베스터만(C. Westermann)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약간 수정을 제안하려고 한다.
①.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은 가장 짧고 간결한 내러티브(삿 3:7-11)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전형적인 사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옷니엘은 사사기 1:11-15에서 이미 소개되어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과의 통혼이 당시 대표적인 불순종으로 비판받는 상황에서(삿 3:6), 옷니엘이 유다 지파 갈렙의 딸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미심장한 소개라 할 수 있다. 옷니엘은 당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따라서 옷니엘은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사사의 모습을 나타낸다.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이며, 또한 그 영은 그가 사사의 모델로서 역할을 하게끔 재확인시켜 주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옷니엘 내러티브(삿 3:7-11)에서는 두 가지 새로운 요소가 등장한다. 1)이스라엘 백성이 야웨께 부르짖다(‘자아크’). 2)야웨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다. 야웨의 영이 임하는 것은 사사기 2:18에 나오는 진술(“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하셨고”)과 동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사기 3:10의 야웨의 영의 임재가 더 역동적이다. 여기에서 ‘야웨의 영’(루아흐 야웨)이라는 표현은 정경순서로 본다면 이 구절에서 처음 언급된다. ‘루아흐 야웨’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총 27번 사용되는데 사사기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루아흐가 소유대명사로 앞서 표현된 야웨를 받아 진술된 경우가 두 번 나올 뿐이다(“나의 루아흐”, 창 6:3; “그의 루아흐”, 민 11:29).
이러한 새로운 요소(야웨를 향한 부르짖음과 영에 의한 능력수여)는 이어지는 내러티브에서도 반복적으로 재언급되고, 이어지는 사사들의 전형적인 등장 패턴으로 사용된다.
옷니엘의 위대한 업적은 야웨의 영이 임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사사 가운데 처음으로 야웨의 영을 체험한 옷니엘의 야웨의 영 강림 사건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신적인 인증이다. 이 점은 니브(L. R. Neve)가 통찰력 있게 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제도가 허용될 때에는 신적인 인증이 필요했다. 따라서 사사시대라는 새로운 제도의 인증을 위해서 최초의 사사 옷니엘에게는 야웨의 영을 통한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둘째는,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신적인 인증이다. 옷니엘은 사사기 1:12-15에 의하면 이미 군사적인 지도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기럇 세벨이라는 한 마을의 지도자에 불과했다(삿 1:13). 그는 메소보다미아의 속박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켜야 하는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옷니엘의 영 임재는 국가를 해방시키기 위한 야웨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새로운 임무와 이를 위한 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옷니엘에게 임한 영은 새로운 제도와 국가적 지도자로서의 공적인 인증과 더불어 국가공동체의 구원을 현실화하는 능력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