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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7.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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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정구총장.jpg▲ 이정구
 신앙의 척도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연령 별로 신앙양태를 비교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1950년 대 이후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과 2000년 대 신앙생활을 시작한 젊은 층의 신앙양태가 다름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천당과 지옥’을 강한 어조로 가르쳤고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다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성경구절에서 특정 부분을 따오거나 응용하여 사용하는 찬송가 가사에는 ‘교인군사 같이 구주 지휘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매우 전투적이며 극단적인 문장들이 많다. ‘주님의 사랑’이라고 하면 군대, 전투와 같은 이미지와는 퍽 다르게 느껴지지만 정작 교회는 박해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에게 순교에 가까운 무조건적 신앙과 전도하기를 요구하고 가르쳐왔다. 급기야 어느 신자는 불상을 훼손하고 심지어 사찰을 정복이라도 한 듯이 절터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지신밟기와 유사한 상징행위를 했다.

  최근 제주도에 예멘 인들이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것을 비롯하여 이주노동자로 입국하여 국내에서 3D 직종에서 노동하며 생활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증가를 일부 한국인들은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최근 몇 소수 대학에서는 이슬람과 관련된 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기구의 기능은 대체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거나 이들이 기독교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다. 앞으로 국내에 무슬림들의 수가 증가할수록 많은 교회들은 그 긴장도를 더 높여 갈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의 마찰은 주로 기독교 측에서 문제를 야기해 왔는데 최근 마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땅 끝까지 교인군사’로서 기독교복음를 전파해야 하는데 다른 종교들이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해 왔던 탓이다. 지상에서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나면 정말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필자의 엷은 신앙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지상에 오직 기독교만 있다면 인간들 사이에 주님의 사랑이 넘치고 평화가 올까? 아마 가톨릭과 개신교사이, 개신교 안의 수많은 교단 분쟁이 더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다. 삼위일체 유일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우상이요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죄목은 국내 기독교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십여 년 전 ‘신의 역사’를 쓴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부의 가톨릭 수녀 카렌 암스트롱이 느닷없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건이 있었다. 기독교인들의 비난이 크게 일자 카렌은 “내가 어느 종교를 갖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대응을 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 글에 격노할 분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시대는 급변하는데도 주입식 교육으로 무장시키고 타 종교를 말살하도록 경주한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실까? 기독교가 적대시 하고 있는 불교, 이슬람과 이런 이단 종파들 사이에서 기독교가 물리쳐야 할 진정한 적이 어느 쪽인지 분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이성에 앞선다고는 하지만 신앙을 구성하고 있는 감성적 확신 안에도 이성은 있는 것이다. 이성이란 계산한다는 의미인데 내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신앙이 혹 이웃에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평화는커녕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산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앙을 굳건히 지키겠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착각이며 우상이다. 4차 산업, 다문화 사회에서 타 문화, 타 종교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면 하나님께서 격노하실까? 성숙한 신앙이 교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성공회대 총장·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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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앙, 건강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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