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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5.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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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형은.jpg▲ 지형은목사
  이제 30년이 다 되어간다. 19 89년 9월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중부의 루어 지역 보훔(Bochum)대학교에서 독일어 과정부터 시작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하루는 라디오를 듣는데 (당시 아직 텔레비전을 마련하지 못했다.) ‘무슨 난리’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던 것은 내 독일어 듣기 실력 때문이었다. 애를 써가며 집중해서 듣다보니, 이런,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었다!

  전 독일이 기쁨으로 전율했다. 유럽이 흥분했다. 세계가 떠들썩했다. 동서 냉전이 종식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보훔 중앙역 길 하나 건넌 마우리티우스 21번지 3층에서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뉴스를 들었다. 밖에서 이런저런 함성이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중앙역 쪽에 사람들이 많았다. 온통 감격과 흥분의 물결이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일주일 전까지도 심지어는 독일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 년 뒤 동서독은 법률적으로 통합됐다. 독일 통일은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찾아왔다.

  한반도의 상황이 어리둥절하다. 설마 했는데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는 날짜가 잡혔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지독한 수사를 쏟아내던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이 돌변했다. 서로를 추켜세우며 덕담을 연발했다. 이럴 수도 있는가. 그러다 트럼프의 공개편지로 회담이 무산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아직도 살아있는 냉전의 유물 그 현실적 힘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살아온 한반도에서는 회담 무산이 당연했다. 그런데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어리둥절하다는 말밖에 다른 표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참 좋다!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감격적인 사건이 또 있으랴. 2002월드컵이 오천년 역사 초유의 일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사실은 지금도 불확실성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 지금은 희망이 불확실성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대전환들 중 우연히 발생한 것이 적지 않다.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부정적인 일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대격변이 쓰나미처럼 덮쳤고, 행복한 일이라면 하늘의 선물처럼 내렸다. 지금 한반도의 대전환은 그야말로 하늘의 선물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연히 갑자기 찾아온 듯 보이는 일들은 사실은 배후에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독일 통일의 경우에는 정파를 초월하여 지속적이고 일관된 동방정책이 터를 닦았고, 외무장관 한스 디트리히 겐셔(1927~2016)가 서유럽 각국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소련 등으로 수도 없이 다니면서 공을 들였다. 

  헬무트 콜(1930-2017)이 통일 과정을 잘 관리했지만 이전의 수많은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의 이 상황도 배후에서 진행된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은 상당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상황의 배후에 숨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팩트가 있다. 역사에서 우연 또는 역사의 큰 손이라고도 부르는 일에 대한 신앙적 표현인데,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떤 때는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우리 일상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그렇다. 주전 8세기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세계에서 떠오르는 강국의 지도자 고레스를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신 사람으로 보았다. 21세기의 한반도 상황에서 트럼프든 김정은이든 또는 시진핑이나 푸틴이든 누가 고레스여도 좋다. 그건 하나님의 선택이요 하늘의 섭리다.

  사회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할 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체험한다. 흔히들 말하는 기도할 때란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한국 교회와 이 땅의 신앙인들이 참으로 간절하게 기도할 때다. 
/성락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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