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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산책 46

70년대 청년문화의 토대를 이뤄낸 최인호 소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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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2.0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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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문학을 선도한 최인호가 197295일부터 197399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경아를 대중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역촌동 자취방에서 매일 아침마다 조선일보 가운데를 펼쳐 연재소설 지면부터 읽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야 하루를 시작했었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조선일보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십사 년 동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신문지면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졌지만.

별들의 고향.jpg

                             ◇'별들의 고향'의 한 장면  좌 김문오 역 신성일 우 오경아 역 안인숙 

 

대학에 미술 강사로 나가고 있는 김문오는 간밤에 마신 술로 인하여 악몽 같은 어둠을 기어가 수돗가의 수도꼭지를 콸콸 쏟는 차디찬 물에 입을 틀어막는 작업을 대여섯 차례나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에 빠져버렸는데 날카로운 새벽 전화 벨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오후에 서대문경찰서 수사과에 출석하게 되었고 방 형사로부터 어제 시립병원 무료 진료실에서 숨을 거둔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해수욕복을 입고 물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여인이 바로 그와 한 일 년 동안 동거생활 했던 오경아였다.

그녀는 간밤에 술을 먹고 눈길을 걷다가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한 끝에 잠이 들었고 방범대원이 발견해 업어서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경아의 백 속에 김문오의 전화번호와 이름 석 자만 쓰인 메모와 낡은 사진 한 장이 있어서 김문오를 시신을 수습할 적임자로 보고 출석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문오는 시체 인수서류에 서명날인하고 나오는 길에 방 형사에게 그녀의 유품인 핸드백과 주머니 속에 있던 껌 한 개를 받아들고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향한다.

 

코트 속으로 백을 숨겨 들었고 나머지 한 손에 들었던 껌의 포장지를 무의식중에 벗겼다. 그리고 껌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껌은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게 내 입 안에서 녹아들어갔다. 그녀의 죽음이 입 속에 털어 넣은 껌으로 해서 그녀다운 장난스런 느낌으로 내게 부딪쳐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그녀다운 죽음이군.

나는 웃었다. 그러자 두어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경아의 죽음이 내게 껌 하나로 실감되는군. 그녀의 죽음과 내가 살아있음은 조그만 껌 하나로 연결되는군. 그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조그만 껌을 씹는 것과 마찬가지지. 우리는 무의식중에 껌을 씹다가 아무렇게나 투ㅡ 껌을 뱉어버린다. 더구나 껌 하나를 남겨두고 죽은 그녀의 죽음은 얼마나 그녀다운가.

 

경아는 언제나 어디서나 껌을 씹고 있었다. 어느 때는 두세 개를 한꺼번에 넣어서 씹고 있었다. 가끔 귀여운 입을 후ㅡ내불어 크나큰 풍선을 만들어냈다. 경아는 씹던 껌을 버리지 않고 벽에 붙여두었다. 부엌의 찬장 옆에, 욕탕의 거

울 위에, 화장대 크림 병위에, 변기 앞 세면도구함에, 타액을 후면에 잔뜩 묻혀 살짝 벽에 붙여 놓곤 했었다. 문오는 훗날 경아가 벽에 붙여놓은 껌을 발견해 그것들을 뜯어 씹곤 했었다.

최인호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기호로서 경아에게 일상적이다시피 한 껌을 매개체로 사용했다.

 

안준배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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