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나는 중 2 때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나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걸 “구원을 받은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영화 8번 출구는 시간이 나서 볼 게 없어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 구원이라는 개념이 담겨있을 줄 저는 몰랐습니다.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원래 이 영화의 원제목은 쇼생크구원 혹은 쇼생크구속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탈출이라는 단어의 속에는 ‘어떤 곳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탈출이라는 것은 구속의 의미가 더 큽니다. 구원을 받는 것과 구속을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른 뜻인데 우리는 이것은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그 단어의 의미가 많이 상실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쇼생크탈출에서 탈출이 의미하는 바는 구속입니다. 주인공 엔디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가 그곳을 벗어났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원이라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그냥 단순히 그곳을 벗어났다는 의미의 단어가 바로 탈출, 다시 말해 구속이라는 뜻이고 구원이라는 말의 뜻은 구속 이후의 단계까지 내포하는 더 포괄적이고 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 8번 출구라는 영화에는 구원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6하 원칙 중 주인공과 아저씨와 어린 소년(누가)과 지하철 0~8번 출구(어디서)와 어떻게 그곳을 탈출했는가라는 세 가지 원칙이 중요하게 깔리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갑니다. 주인공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저씨와 똑같이 둘 다 소년과 함께 같은 공간 안에서 출구를 찾게 있게 되는 상황에 맞딱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정이 탈출의 성패를 결정 짓게 됩니다. 그들의 결정은 그 소년의 말을 듣는가, 아님 거부하는가에 따라 나뉘는데 그 소년의 의미는 제가 볼 때 예수님으로 보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여자의 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성구에서 보듯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구속을 얻기 위해 우리가 동행하는 존재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나오는 아저씨의 경우처럼 자신의 결정에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구속을 얻을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이 아닌 종교의 힘을 빌어 수행하고 선행을 베풀기만 하면 마치 구속을 얻고 더 나아가 천국에 도달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영화의 내용처럼 한 인간을 지옥이라는 공간, 다시 말해 출구 탈출불가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게 되면 그때는 구속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이 세상을 향해 나의 몸을 던져 희생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감수하고 견대내고 마침내 나아가서는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온유한 한 사람의 몸부림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구속 이후에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삶의 여정이 되는 것이라고 할까요. 나 혼자 이루어내는 구원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사람의 실패한 존재인 아저씨의 초라하고 반복되는 형상으로 나타내어 놓은 것입니다.
작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성경말씀은 이 영화의 설정처럼 예수님은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이 가을 여러분에게 좋은 영화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몇 자 적어봤습니다./새맘출판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