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산책] 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7)
기독교문화예술원 안준배원장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는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라 인선은 추정을 했다. 전쟁 발발 직후 제주에서 예비검속돼 총살된 천여 명 중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뼈대로 삼아 다큐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인선의 아버지는 혼자 동굴에 숨어 지냈다. 그 11월 밤에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동굴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건천을 건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별안간 사위가 밝아졌다. 집들이 불타기 시작한 거다. 마을 공터 쪽에서 일곱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버지는 숲 사이로 지켜봤다.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개머리판을 휘둘르며 끌려가고 있는 그의 두 동생과 마을 사람들을 숨을 죽이고 보았다.
더 이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아버지는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인선의 할아버지였다.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代殺한 거였다.
겨우 일주일 만에 인선의 아버지는 붙잡혔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만으로 더 버틸 수 없어서, 타다 남은 곡식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경찰과 마주 쳤다. 시신을 매장하러 올 사람들을 잡으려고 매복하고 있었던 경찰에게 체포되어 제주읍 부두에 있는 주정공장에 보름동안 갇혀 있다가 목포항으로 실려갔다.
군과 경찰의 지휘 계통이 달라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 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다.
소개령은 해안에서 오 키로미터 안쪽에 내려졌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과 언니는 해안선 가까이 살고 있는 당숙네로 쌀, 감자를 들려 심부름을 보냈다. 두 자매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시신들은 국민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교문 건너 보리밭에서 눈에 덮여 있었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패턴이 같아, 소개하지 않은 이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였다.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씩 닦아가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정심의 오빠와 막내가 안 보였다. 달리기를 잘하는 정심의 오빠와 막내 동생을 찾기 위해 보리밭에 죽어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을, 아래에 동생이 깔려 있는지 시신들을 밀어가며 살폈다.
거기 있었어, 그 아이는.
처음에 엄마는 빨간 헝겊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대. 피에 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대.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 내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 총알이 턱뼈의 일부를 깨고 날아간 거야. 뭉쳐진 머리카락이 지혈을 하고 있었는지 새로 선혈이 쏟아졌대.
윗옷을 벗은 이모가 양쪽 소매를 이빨로 찢어서 두 군데 상처를 지혈했어.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 걸어갔어. 팥죽에 담근 것같이 피에 젖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세 자매가 집에 들어서니까 놀란 어른들이 입을 열지 못했대.